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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Dec 05. 2021

순둥이의 반항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흰색으로 휘감은 한 노인이 학교 중앙현관에 등장했다. 크지 않은 키에 하얀 모자를 눌러쓰고 하얀 구두까지 여간 신경 쓴 게 아니다. 아주 오래전 드라마 ‘왕룽일가’에 나온 인물이 떠올랐다. 뜨거운 사막에서 일하고 왔다던 쿠웨이트 박. 드라마의 인물처럼 현실에서는 만나기 힘든 캐릭터를 본 듯했다.

노인은 손에 종이를 소중한 듯 쥐고 왔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학교 출입 시 반드시 점검을 하게 되어 있다. 아침마다 교사가 순번을 돌며 아이들 체온 체크와 외부인 출입을 점검하며 철저히 관리한다. 열화상 카메라로 중앙현관에 들어서는 아이들의 열 체크를 한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보다 온도를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과의 시작이다.

  간혹 아침 시간에 외부인이 오면 출입자 명부를 작성하게 하여 위험을 최소화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만성 피로로 벌건 눈을 하고 있는,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는 선생에게 호통치는 보건 교사의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어르신! 어떻게 오셨어요?”     


라는 말에 노인은 주춤하며 자신을 3학년 학부모라고 소개를 하며 담임을 보러 왔다고 했다. 실수를 한 듯해 아차싶어 부드러운 태도로 말을 건넸다.

     

  “여기 출입자 명부에 작성해 주셔야 해요!”


 잠시 담임만 만나고 금방 올 테니 그냥 올라가겠다고 한다

.

  “안돼요! 아버님. 학교는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관리해야 해요. 아버님 자녀분이 위험하면 안 되잖아요.”


  그러자 한발 물러서며 노인은 볼펜을 잡는다. 빈칸에 뭔가를 써넣어야 하는데 살짝 떨리는 게 보인다. 가까이서 그를 보니 모자도, 양복도, 신발도 모두 낡았다. 편하게 오셔도 될 텐데 이리 불편한 복장을 굳이 입고 오신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볼펜을 쥔 손이 머뭇거리고 애꿎은 볼펜만 돌아간다.

갑자기 머릿속에 섬광이 번뜩거린다.  

   

 “불러주세요. 제가 받아쓸게요”     


라고 하니 얼른 볼펜을 놓고 슬쩍 안도의 모습이 역력했다. 정보를 다 쓰고 손에 쥔 서류를 들고 성큼성큼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며 사연이 궁금했다.      

 아이들의 등교 지도가 끝나고 교무실 내 자리로 돌아왔다. 흰색 양복 노인과 담임은 계속 대화중이었다. 누구 아버님인지 호기심이 강하게 들었다. 잠시 후 인사를 나누며 돌아가는 아버지의 미소가 환하다.

우리 학교 소문난 순둥이 남자아이의 아버지였다. 학생들에게 배부되는 교육회복지원금 신청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한 걸음에 달려오신 거라고 했다. 담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신청서 다음 주까지 제출하라고 이야기했어요. 기간이 넉넉하니 챙겨오라고 했거든요. 아이에게 전달하거나 전화하셔도 되는데 돈과 관련된 것은 매번 이렇게 찾아오세요.”     


 최근 학생들에게 급식 물품이며 교통비 등의 신청서를 가정통신문으로 안내하는 일이 잦았다. 이 학부모님은 방안에 돌아다니는 가정통신문을 보고 아들에게 이게 뭔지 읽어 보라고 했고 기한이 늦을라 깜짝 놀라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60대 후반.

  늦은 나이에 외국인 여성과 결혼을 했고 원하던 아들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집에 있다. 일을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지극정성이라고 했다. 아이 기가 죽을까 깨끗하게 옷을 입히고 단정하게 보내지만, 3년 동안 입은 교복이 짧아지고 작아지고 있는 것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도 깨끗한 옷을 입고 있지만 작아져 위아래 교복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하다. 학교에서 사복을 입을 수 있게 해 주었건만 순둥이는 늘 작은 교복 차림이다. 교복에 사복을 입고 다니면 바르게 입고 다니라고 아빠가 호통을 친다고 순둥이가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더 놀라운 것은 순둥이는 인스턴트를 안 먹는다는 사실이다. 아빠가 인스턴트는 몸에 나쁘니 절대 입에도 대지 못하게 했다 한다. 편의점에서 간편 조리식품을 먹으면 탈 난다고 했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동네를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며 집으로 일찍 귀가하도록 가르쳤다. 아버님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순둥이가 너무 성실하게 따르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중학교 시기의 아이. 정체 모를 반항심과 불만으로 또래와 정서를 교류하며 혼란스러움을 겪어 내는 시기. 이리저리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아이는 성장한다. 부모의 그늘로부터 조금씩 떨어져 나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표현하면서 자립심을 키워나가 어른으로서 성장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이는 심성으로 말할라치면 너무 좋지만 학습이나 관계 면에서 위태롭다. 특히나 순둥이는 코로나를 맞이하고 학습에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게임으로 빠졌을 텐데 하루 종일 곁에 있는 아버지로 인해 그럴 수도 없었다. 아이는 그냥 착하디 착하게 살고 있다.  순둥이를 위해 기초학력 프로그램, 다문화 학생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코로나 상황은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 아이를 더 순둥이로 살아가게 만들고 있다.  

  등교지도 아침에 벌어진 에피소드는 내 머리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가르치고 도와주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가 운영하는 동아리에 순둥이가 있다. 오감을 깨우는 연극 수업인데 강사님이 오셔서 진행을 다. 순둥이는 수줍어해서 뒤에서 바라만 보고 있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그 날 이후부터 나는 순둥이를 위해  계속 대표로  활동하게 했다.     


 “에이~! 선생님 저 안 할래요! 시키지 마세요! 왜 맨날 저만 시키는 거예요?”


 순둥이가 소리를 지르며 반항을 했다.  오호~! 아이의 반항이 너무나 반가웠다.   반항하는 아이가 이렇게 이뻐보이다니...


순둥이를 교무실로 불러 다독이며 말을 했다.  


 “ 알았어.  다음에도 싫으면 싫다고 꼭 말해야 된다! 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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