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향기 Dec 12. 2021

나무 닭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공자의 나이에 따른 깨달음을 상기할 때마다 나는 내 속좁음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어릴 적 나는, 나이에 따라 인격 성숙도 자연스럽게 함께 성장한다고 생각했다. 훌륭한 교육계 선배들이 현장에 오래 있다 보니 그렇게 되었나 보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요즘 한 살 한 살 더해지는 것과 차곡차곡 마음의 넓이와 깊이가 더해지기는 것과 별개인 듯 하다.  내가 마주한 상황 속에서 어떤 목소리를 키워갈 것인가 고민하지 않는다면 경험만 많은 꼰대가 될 수 있다.

      

   올해 6개월 동안 연수원으로 파견 근무를 했다. 공부하고 연구하며 토론하면서 개인적인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고 교사로서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2학기가 되어 다시 학교로 오면서 내게 문제가 생겼다. 후배가 부장이 되어 내가 해왔던 일을 진행하고 있었고 나는 계원으로 보조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후배 부장은 초반에 매우 힘들었다고 했으나 돌아와 곁에서 지켜보니 열심히 성심을 다해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고 내가 해왔던 것보다 더 발전된 형태로 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흐뭇했지만 한쪽으로는 ‘존재’의 위태로움을 느꼈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존재감을 어떻게 보여야 할까를 고민하며, 잘하고 있는 부장에게 샘이 났다.      

 유치하게도 몇 달 동안 내 안에서 시기하는 자아와 이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초자아가 갈등을 일으켰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퇴근 시간 차 안에서 내면의 싸움은 치열해졌다. 끊임없이 질투에 가득 찬 자아는 운전대를 잡은 나를 질책하며 시기를 부추기는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면 그럴수록 다른 한쪽으로는 좀 더 넓게 바라보며 넉넉할 수 없냐는 따끔한 외침도 더 아팠다.



  투계(鬪鷄⸱ 닭싸움)를 좋아하는 왕이 어느 날 기성자라는 조련사에게 자신의 닭을 최고의 싸움닭으로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열흘 후 왕이 물었지요.

 “닭이 이제 싸울 수 있겠는가?”

기성자가 아뢰었습니다.

 “아직 안됩니다. 강하긴 하지만 교만합니다. 허세를 부리면서 제 힘만 믿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서 물었습니다.

 “안 됩니다. 교만함은 줄었지만 너무 조급해서 진중함이 없습니다. 다른 닭을 보거나 울음소리만 들어도 당장 덤벼들 것처럼 합니다.”      

열흘이 지나 재차 물었습니다. 

“아직도 안됩니다.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이어서 최고의 투계는 아닙니다.”      

또 열흘이 지나 40일째 되는 날 왕이 묻자 기성자는 “이제 된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다른 닭이 소리를 질러대고 도전해도 움직이지 않아 마치 나무로 만든 닭 같습니다. 싸움닭으로서의 덕이 갖추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어떤 닭도 감히 덤비지 못하고 도망칠 것입니다.”     

                                                                                                                    <장자>  달생편     


 장자는 최고의 투계는 목계라고 하였다. 남의 소리와 위협에 쉽게 반응하지 않으며 마음의 평정심을 얻어 나무와 같은 상태. 

 잘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보여주며 상대를 제압하려 하는 교만이,  내 능력을 과대 포장하려 하는 마음이 나의 눈을 가려 위험으로 몰아가고 있다.

  차곡차곡 나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내가 더 큰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마음의 평정부터 다시 정비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기에.

작가의 이전글 순둥이의 반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