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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Dec 27. 2021

나의 눈에 보이는 나

    

‘선생님 무슨 일이 있나요? 요즘 단톡방에서 왜 말이 없어요?’ 

    

카톡에서 크리스마스 인사로 바쁜 와중에 누군가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한 친목 모임에서 10년 동안 총무를 맡아왔다. 돈 계산을 잘하고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총무라도 맡아야 모임에 끼워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묵묵하게 회비를 걷고 계산을 하고 정산을 반복했는데, 몇 년 전부터 처음과 다르게 자꾸 불편한 마음이 든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총무를 바꿔주겠지 했는데 아무도 나서 주지 않아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혼자 남몰래 회원들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내가 이 모임을 정리해야겠다고 느낀 건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이다. 50이 가까운 여자가 사춘기 소녀같이 ‘소외’, ‘아싸’와 같은 단어를 운운하는 건 웃기지만 실상이 그렇다.    


 삼삼오오로 회원들이 회식을 하거나 근교에서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약속과 회식을 총무인 내가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문제는 간혹 그들이 전체 단톡방에 사진들을 올려놓을 때다. 

나도 모르게 이루어진 그들의 단체 모임은 나를 참 불편하게 했다. 


 올해 가을, 갑자기 전체 단톡방에 단풍놀이를 함께 한 회원들의 사진이 줄줄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들의 즐거운 대화들이 대화창에 가득 찼다. 상한 마음을 느꼈으면서도, 고운 단풍 사진과 한껏 계절을 누리는 회원들의 포즈 칭찬을 먼저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언제 다녀오셨느냐’라고 물어보았다. 찬물을 끼얹은 듯 그다음 단톡 대화는 뚝.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우유부단한 성격과 항상 모임에는 책임으로 일조해야 한다는 성향이 나에게 있다. 대부분은 장점으로 작용하기 마련인데, 이 친목 모임에서는 단점이 되었다. 적절한 시기에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나를 낮추지 않고 편하게 일하고 말했어야 했다. 


 마음이 통해서 편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내가 그들의 소통과 공감의 관계망에 속하지 못한 게 속상하지만 정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저 총무를 그만하려고 해요! 자원해 주세요. ’


 그간 고생했다는 고마움의 말이 몇 번 오갔지만 몇 주 동안 하겠다는 사람은 없다. 기다리다 괘씸함까지 올라온다. 쪼잔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단톡방에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올해 말까지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회비를 1/n으로 나눠 돌려줄 생각이다.  이 정도 칼자루는 휘둘러도 되겠지?  

    

요즘 나의 눈에 보인 나는, 소심함, 소극성, 쪼잔함 3종 세트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창피하고 부끄럽다. 

그래도 피하지 않고 마주한다. 이 3종 세트는 나의 소중한 부정적 감정이다. 나는 자꾸 너그러운 척, 이해하는 척, 괜찮은 척을 하면서 3종 세트를 까마득히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이제 그냥 내 마음에 머무르게 하며 나답게 '관계'를 맺어보자고 다독여 본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1795~1821)는 어린 시절 지나치게 내성적인 성격으로 남들과 어울릴 수 없었고 청년 시절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영국이 자랑하는 최고 시인이 되었다. 그의 다채로운 언어와 상상력이 오늘날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위대함의 비결은 자신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자신의 찬란한 삶을 위한 지렛대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는 남들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실이나 이성을 성마르게 추종하지 않고 불확실하고 신비하고 의심스러운 상태에 의연하게 거했기 때문이다. 인생은 우리가 경험한 불완전한 삶에 대한 질문을 끝없이 발굴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인내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내 마음 안에 있는 ‘꺼지지 않는 가시덤불’은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그 소리에 응답하는 자가 자신만의 별을 창공에 다는 사람이다. -배철현 [심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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