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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Jan 17. 2022

고수를 꿈꾸며

도포자락을 살포시 바람에 날리되, 쓱쓱 바람소리가 나야 한다. 

행동이 가볍고 유연하되 절도가 있어 매우 정확하고

표정은 단호하되 부드럽고 여유가 있어서

무거운 상대도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나는 무림의 고수를 꿈꾼다. 

대나무 사이를 내공으로 날아다니고 자유로이 다니며 멋지게 비상하는 모습을 말이다. 


아니다.

영화처럼 꼭 그렇게 멋진 장면을 연출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펑퍼짐한 아줌마인줄 알았는데 한 번 화가 나면 사자후(獅子吼) 같은 소리를 내어 어마어마한 존재였음을 각인시켜주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어설퍼보이는 그런 사람이어도 괜찮다. 실력자이지만 초야에 떠돌며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그런 사람. 


정확하게 말하자면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무림의 고수 같은 교사이고 싶다는 바람을 늘 가지고 산다. 

                                                                                                           

그러나 2년 동안의 코로나 상황에서 나는 원격 수업과 대면 수업에서 고군분투했다. 내 생에 처음 만난 이 희한한 사태에서 일말의 교사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배우고 또 배웠다. 하지만 원격 수업 준비를 하면 할수록 더 대단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화상 수업에서 카메라를 끈 아이들을 어쩌지 못해 사자후 같은 소리를 내질렀지만 음소거 버튼 하나에 무력해졌다. 수업 흥미를 끌기 위해 방송국 아나운서 처럼, 혹은 애들이 좋아한다는 음악방송진행자처럼, 또는 카톡 선물 보내기도 해 보았으나 닭살스럽고 과한 행동에 스스로가 부담스러워 참 고민스러웠다.

  코로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고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경험과 연륜이 있으니 올바른 교육관만 가지고 연마를 해나간다면 일상의 초인이 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도 했다. 

 원격 수업이 시작된 이래로 장시간 컴퓨터에 노출된 눈은 충혈되고 눈곱이 끼고,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 통증이 더해졌고 다리가 저릿저릿해 왔다. 마스크를 끼고부터는 호흡이 딸려 늘 헉헉 거리기에 사자후란 기대할 수도 없다.  그렇다. 나는 노화가 진행되고 있는 사람이기에 젊은 사람처럼 기계를 대하면 안 되었다. 다초점과 블루라이트 차단 기능이 있는 안경을 끼고 허리 보정 밴드를 착용하고 10분마다 다리 운동을 해줘야 했다. 약수터로 가는 사람들이 하듯 팔을 뻗어 앞뒤로 박수를 치며 온몸을 풀어줘야 늦은 시간 원격 회의까지 소화할 수 있었다.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디지털 교육 도구를 접하면서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지고 별 볼일 없는 40대 아줌마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하수'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어쩌지?


 방학을 맞이하고 다시 고수 회복 작전에 돌입하기로 했다. 그래도 2년 동안 축적해 놓은 온오프 수업 노하우가 있으니 찬찬히 디지털 도구들과 접목하여 운영할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이다. 다만 전과 다르게 한 가지 항목을 더 추가해 본다. 건강 말이다.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점검하고 잘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수가 어마어마한 역량을 발현하는 것은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쿵후 판다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지 않았던가. ) 긴 겨울방학을 맞이하며 학교 안팎으로 일상을 잘 살기 위한 것들을 챙기고 정리하며 계획을 세웠다. 


 제일 먼저 다시 공상을 하며 슬그머니 기대감을 가져 본다. 


도포자락을 살포시 바람에 날리되, 쓱쓱 바람소리가 나며,

행동이 가볍고 유연하되 절도가 있어 매우 강해 보이며

표정은 단호하되 부드럽고 여유가 있어서

무거운 상대도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다.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여 가장 최적의 무술을 선보인다. "


안경을 고쳐 쓰고 허리 밴드를 조이며 멋지게 디지털 수업과 관련된 연수를 고수다운 풍모로 공부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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