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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Feb 28. 2022

3월을 기다리며

  우리 집에는 주워 온 화초들이 산다.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함께 살았다. 

  예전에는 학생들에게 학급 환경미화를 위해 의무적으로 하나씩 사 오라고 시킨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학생들의 인성을 위해 원예 활동을 교육청 예산으로 실시하거나 혹은 환경친화적 학급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학교에서 나눠주기도 한다. 처음엔 예쁘고 싱싱한 자태에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지만 그 시간은 짧다. 아마도 아이들의 생동감과 싱싱함이 식물을 넘어서기 때문일 것이다.      

학년 말이 되면 거의 시들하여 중환자 수준의 식물들만 남게 되는데 마음이 약해 단호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나는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리고 같이 살기 위해 탐색의 시간을 갖는다. 나는 언제 물을 주어야 할지, 어느 장소에 두어야 할지 관찰하고 우리 집에 온 식물은 자신의 의견을 잎의 색깔과 개수로 답을 한다. 식물은 적당하게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차지했을 땐 윤기 나는 잎을 내보이며 내 쪽으로 손을 뻗는다. 그렇게 식물들과 밀당을 하며 함께 산다.      


 나도 20~30살 적에는 식물에 관심이 없었다. 이름이 뭔지도 잎 모양이 어떤지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면서 교실에서 키울 화분을 사서 보냈는데 겨울방학에 잘 자란 녀석을 데리고 왔다. 12년 동안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이 녀석은 키도 크고 잎도 무성해서 큰 화분으로 몇 번이나 갈아야 했다. 창가 앞에 제일 좋은 곳에 자리 잡아 반짝이는 초록잎을 내보이며 웅장하게 자신을 과시하는, 꼭 20살 갓 어른 된 청년의 모습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버리고 간 효향란은 커피 향이 나는 식물이었다. 꽃이 피어야 향기가 나는데 요 녀석은 3년이 지나도록 꽃을 피우지 않고 무섭게 성장만 해서 겁이 났다. 꽃을 피우려면 적당히 추운 시기를 보내야 하는데 늘 따뜻한 실내에서 키우다 보니 자신의 할 일을 잊은 것임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았다. 알게 된 정보를 토대로 기온이 차가운 베란다에 두었다. 그 해 5월, 4년 만에 우리 집에서 꽃을 피웠다. 찬바람이 세게 불면 추워 보이는 효향란이 안쓰럽지만 제 몫을 다하게 키우려면 나도, 요 녀석도 견뎌야 한다.


 우리 집에는 엄마 식물과 자녀 식물도 있다. 5년 키운 스파티필름이 너무 무성해서 포기를 나누어 심었더니 잘 자라고 있다. 주방 한편 다정하게 마주 보며 누가 더 잎이 풍성한지 자랑하는 모녀 같다. 

 또 이름도 모르는 난 화분. 남편이 동사 직전의 난을 주워와 기사회생시켰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 난은 잎이 축축 쳐진데다 쭈글거려 힘겨워 보인다. 난 화분을 물에 담글 때도 소화력이 약해 빨리 먹지 못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몇 년간 애지중지 살펴주었더니 언젠가부터 옆으로 조그마한 잎이 생겼다. 포기 나누기를 하여 다른 화분에 옮겨 주었더니 조금씩 커가며 어미를 닮아가고 있다. 오늘보니 어미와 새끼 화분에서 꽃대가 올라왔다. 어린 녀석은 한 번도 꽃을 피운 적이 없었는데 이제 어른이 되었나 보다. 올해는 건강해진 어미와 어른이 된 새끼 식물의 꽃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작년 여름에 뜨거운 폭염에 우리 집 휘토니아는 그 무성하던 잎이 다 녹아 버렸다. 생명을 다한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남편이 버리자고 했는데 말라비틀어진 줄기가 다시 살아나길 바라며 지켜보기로 했다. 지금은? 예전보다 더 예뻐진 모습으로 성형을 했다. 작년 한 해 나에게 가장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던 아이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모든 것을 깡그리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나에게 ‘변화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지난 8월의 모습
현재의 모습

3월 개학을 앞두고 만날 아이들을 상상한다. 꽃은 제 스스로 피운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이들이 꽃을 피울 수있도록 관찰하고 기다림을 해야 한다. 꽃대를 슬며시 올리는 난을 보며, 지난해 성장통을 앓았던 휘토니아를 보며 마음을 다진다. 조급해 말고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선생이 되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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