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체와 어린이 글쓰기

- 1학년 어린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발견한 것들

by 박진환

2016년은 내게 엄청난 경험, 충격, 아픔, 반성을 준 해였다. 교직에 들어선지도 25년째만에 처음으로 1학년을 맡았던 해였다. 2학년은 두 번 정도 해 봤지만, 1학년을 맡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아무리 초등학교 교사를 했더라도 갓 입학한 어린이들과 하루, 주, 달을 거쳐 1년을 채워 사는 일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정말 국가교육과정 대로 거치면 어린이들이 말과 글, 수와 셈을 제대로 익힐 수 있을지, 어떻게 몸으로 예술을 표현할 수 있을지. 솔직히 두려웠다. 하지만 찾아간 새 학교는 빈곳이 1학년 밖에 없다며 나에게 24명의 어린이들을 맡곁다. 처음에는 발톱을 감추던 아이들이 2주가 지나면서 서서히 자기 모습들을 드러내며 학교 안팎을 헤집고 다녔다. 정신없이 늘 긴장한 상태로 하루살이처럼 그날그날의 수업을 챙겨가며 살던 그 시절의 나에게 고민과 의문을 안겨주는 모습들이 이후로도 3년에 걸쳐 1학년을 맡은 뒤로 매번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점은 3월이었고 내가 발견한 것은 아이들 손이었다.


연필을 쥐는 손이 틀렸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연필을 쥐는 아이들 손이었다. 20명이 넘는 어린이 가운데 교과서에 나온 사진처럼 연필을 바르게(?) 쥐는 모습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상당수의 어린이들이 연필을 움켜쥐고 힘들게 연필로 글자를 쓰는 모습이 보였다. 바르게 쥐라고 해도 그 순간만이지 내가 뒤돌아서면 대게 어린이들은 익숙한 자세로 돌아가 있었다. 그래서 언제부터 이렇게 연필을 쥐고 썼냐고 물으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부터였다는 게 한결 같은 답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누리교육과정에서 쓰기교육은 말이나 생각을 글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자신의 이름과 주변의 친숙한 글자를 써 보는 수준, 자신의 느낌, 생각, 경험을 글자와 비슷한 형태로의 글자로 표현하고, 쓰기도구의 바른 사용법을 알고 사용하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 수준을 넘어서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읽기와 쓰기를 앞서 가르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3년동안 내가 경험한 도시 학교 1학년 입학생 24명 가운데 한글을 모르고 입학한 어린이는 2-3명에 불과했다. 2-3명의 어린이가 한글을 모르고 입학한 까닭은 보호자의 소신 때문이었다. 한글은 학교 가서 익혀도 되고 실제로 교육청에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책임교육을 시키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2-3명의 보호자도 불안과 걱정을 보이기 시작한다. 출발지점부터 격차를 보이는 상황 때문이다. 반면 이 2-3명은 한글지도에 긍정적인 경험을 쌓게 하는 교사들을 만나면 제대로 지도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연필을 쥐는 자세부터 글씨를 쓰는 방법까지 처음부터 차근차근 익혀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한글을 익히고 들어온 어린이 가운데 상당수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연필을 쥐는 자세가 잘못돼 있고 글씨체가 망가진 채로 수업시간을 보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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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가 아니라 과학이 필요해


<공교육 천국, 네덜란드>(정현숙, 2019)라는 책에는 네덜란드의 공교육에서 문자를 만나는 시기를 초등학교 시기로 늦춰 이전의 학습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문자에 친숙하지 않고 아직 뇌의 발달이 미숙한 어린 학셍들에게 비과학적인 언어교육으로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철학과 논리로 공교육의 언어교육 체계를 마련하고 있었던 것. 우리 또한 이와 비슷한 교육체제를 갖춰가고 있지만,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입시교육의 짙은 그늘이 언어교육을 왜곡시키고 어린이들의 언어학습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과학적이지 못하고 경험의 축적이 되지 못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익혀온 방식대로 가르치고 있는 오래되고 낡은 초등학교 1학년 국어수업 문화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초등학교 뿐인가. 이전 유아교육기관에서 빠르고 일찍 학습시키려는 목적아래 한글을 빠르게 익혀 읽고 쓰는데 집중하다보니 소근육이 발달되지 못한 손을 가진 꽤 많은 아이들은 연필을 쥐는 잘못된 자세와 글씨체를 가지고 1학년 교실에 앉아 있었다.


2021년 나는 오랜만에 나이 54에 6학년 어린이와 살고 있다. 이제 졸업을 앞둔 아이들과 지내면서 또 발견하게 되는 것도 어린이들의 글쓰기 상태와 글씨체이다. 1학년을 3년 경험하고 다시 만난 6학년들의 언어습득 상태를 보면 절반에 가꾸운 어린이들이 어릴 때 잘못된 학습과 경험으로 읽기와 글쓰기가 해당 학년 수준에 어울리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연필 쥐는 자세는 이제 고치기 어려운 시가가 되었고 잘못된 글씨체도 본인이 알고 있으면서도 대단한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바꿀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정말 곤란한 상태로 보였다. 흔히 악필 혹은 날치기 필체를 보이는 아이들은 생각하기를 싫어 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을 짙게 보이고도 있었다. 뇌연구에 따르면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은 뇌를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어쩌면 글쓰기는 모든 학습의 바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글쓰기가 어린이들에게 삶의 도구이지만, 학습의 바탕이기도 하니 소홀히 볼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UCLA의 심리학자 Pam A. Mueller와 Daniel M. Oppenheimer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컴퓨터 키보드보다 손글쓰로 노트한 쪽이 수업 뿐만 아니라 테스트에서도 더 잘 기억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잡지 "Futurity"에 실린 워싱턴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손으로 글쓰기를 한 어린이가 컴퓨터 키보드를 사용하는 어린이보다 보다 빠르고도 잘 쓴다는 결과를 내 놓기도 했다. 실제로 현재 맡은 6학년 어린이 들 중에서도 글씨체가 비교적 바르고 알아볼 수 있게 쓰는 아이들의 읽기, 쓰기 능력과 생각하는 힘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10년 동안 고착하된 어린이들의 글씨체와 연필 잡기 자세를 바꾸기란 1년 맡은 담임교사의 능력으로는 애당초 가능하지 않았다. 따라서 1학년 때부터 아니 그 이전 유아교육 때부터 강요된 언어학습이 아닌 즐겁고도 스스로 필요함을 느끼는 자유로운 과정에서 쓰는 과정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매우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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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성찰이 필요한 어린이 글씨체


돌이켜 보면, 1학년을 맡은 3년동안 우리 반 교실을 방문한 교사들이 한결같이 언급한 것이 있다. 어린이들의 글쓰기 왜 이렇게 바르냐고 말이다. 5, 6학년보다 잘 쓴다고 말이다. 자랑이기도 하지만, 글씨체에 대한 심각한 걱정과 의문을 가지고 내 곁에서 살아간 어린이들이 바르게 쓸 수 있도록 끊임없이 강조하고 또 지도했기 때문이었다. 새삼 늘 수업마다 어린이들에게 말하던 "천천히, 예쁘게'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찌됐든 글씨체의 문제를 염두해 두고 꾸준히 지도한 결과 적어도 나를 거쳐 간 아이들은 모두 누구나 알아볼 수 이는 학습결과물을 가지고 다음 학년으로 넘어갔다. 끝으로 한마디만 더 강조해 말을 붙여 보려 한다. 어린이 글쓰기의 잘못된 출발을 조장하는 한글 조기교육과 강요하는 글쓰기 문화에 대한 어른들의 깊은 성찰이 절대 필요하다. 이런 성찰없이는 오래되고 낡은 글쓰기에 대한 잘못된 관행과 실패를 앞으로도 오랫동안 되풀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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