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출발하는 글쓰기 1

- 글쓰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삶과 이어지는 지점에서 교육이 시작

by 박진환

앞서 나는 어린이 글쓰기는 삶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어른들의 세계와 자본의 세계에 익숙해진 삶만이 곧 삶이라 여기며 자신도 모르게 그런 삶들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 그 어린이들에게 그것만이 삶이 아니라, 겉보기에는 하찮고 변변찮고 쓸 데 없어 보이는 자신의 작디 작은 삶이 진정 삶이어야 하고 삶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게 교육이고 그 지점에 글쓰기만한 게 없다. 많은 교사와 보호자,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쓰게 하는 까닭으로 지적인 성장을 앞서 강조한다. 그렇다보니 요즘 유행하는 '메타인지'라는 말을 글쓰기에도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물론 글쓰기가 지적인 능력을 높이는데 훌륭한 도구라는데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다. 나 또한 듣고 말하고 읽기에서 쓰기로 이행이 얼마나 어렵고 고난도의 작업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어린이 글쓰기의 출발을 이러한 인지적 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춰 시작하거나 은연 중 글쓰기 기술을 가져와 쓰거나 대놓고 강조하면, 어떤 의도든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최근에 나온 각종 글쓰기 관련 서적을 보면 '메타인지'나 '습관'과 '기술적 향상'을 강조했을 뿐 내용을 들여다 보면 이전의 글쓰기에 관한 교육방식이나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삶과 연관된 글쓰기 교육을 제기하고 교육체제와 어른들의 글쓰기에 대한 잘못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어서 서둘러 글쓰기를 시키고 습관화시켜 학력을 높이는데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삶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글쓰기 습관을 고치는 작업부터 시작해 다양한 갈래의 글을 연습시켜야 한다고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어린이들의 글쓰기를 지켜본 결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글쓰기 습관을 고쳐서 시작하는 게 아니었다. 많은 교사가 오류를 범하는 것이 내가 가르친 그때의 방식으로 가르쳐 나아진 모습을 보고 모든 아이들이 글쓰기에 대한 실력이 나아졌다고 단정하거나 착각하는 경향이 짙다.


나 또한 그러하였다. 글쓰기 교육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고 서툴게 접근했던 10년차 부근. 다른 학년으로 올려 보내고 어른이 돼 찾아온 제자 중 일부는 나중에 나를 찾아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그 시절의 글쓰기 교육방식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해 민망할 때가 있었다. 그 제자들은 그 시절 담임교사인 내가 시켜서 했지, 좋은 점도 있었지만, 글쓰기 노동 자체가 너무 힘겨웠다고 했다. 글쓰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없었던 저학년 시절을 거친 어린이들이 중고학년에서 교육방법을 바꾼다고 해서 달라지는 경우는 알고 보면 한계가 분명했었던 것이다. 글쓰기교육에 대한 공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짚지 못하면 교사도 학생도 힘들기만 할 뿐 효과가 반감되거나 일부 학생들만 수혜를 받을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글쓰기를 가르쳐야 할까? 난 학년에 따라 두 가지 접근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저학년 때부터 활자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과 읽고 쓰는 데서 성취와 보람을 느끼는 경험을 쌓도록 해야 한다. 1학년을 마흔 후반에 맡으면서 나는 그동안 중고학년에서 지도한 글쓰기 지도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오덕선생님의 글쓰기철학을 바탕으로 삶을 가꾸게 하는 교육을 했지만, 글쓰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없었던 어린이들을 온전히 돕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1학년을 맡으면서 하게 됐던 것이다. 학년을 거듭할수록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이 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 유아와 초등저학년때부터 강요된 글쓰기와 경쟁적 글쓰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쓰기를 포기하려는 '쓰포자'를 만들지 않으려면 우리네 초등학교 저학년의 언어교육은 바탕부터 달라져야 한다.


여전히 입학한 어린 학생들에게 한글을 익혔다는 전제로 읽고 쓰기를 바로 하게 하고 빨리 익혀야 한다고 강요하는 글쓰기, 받아쓰기로 경쟁적 글쓰기로 안내하는 낡은 교육방식에서는 우리 어린이들은 활자에 대한 긍정적인 경혐, 읽고 쓰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절대 할 수 없다. 학교교육과 공교육이 어린이들이 글쓰기를 거부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안타까운 이 현실은 언어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철학이 바뀌고 학습된 경험이 실천으로 나눠지지 않고서는 절대 해결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옛 러시아 연방 시절 한 지역의 교사이자 교장, 교육실천가였던 바실리 스호믈린스키. 지금은 세계적인 교육실천가로 새롭게 부각하고 있는 그의 언어교육관을 우리 공교육에서는 얼만큼 실현하고 있을까? 온전히 실현할 수는 없어도 기본적인 이러한 언어교육관은

많은 어른과 교사가 공감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어휘가 단지 물체 또는 현상에 대한 호칭이 아니라 그 안에 정서적 색깔인 낱말의 고유한 향기와 미세한 색조가 담겨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 애썼다. 어휘의 아름다움과 어휘가 반영하는 작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인간의 말소리를 전달하는 그림들, 즉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기려면 인간의 말소리를 전달하는 그림들, 즉 글자에 대한 흥미를 일깨워야 한다. 이것은 중요하다. 아이가 어휘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어휘의 미세한 섹조를 알아볼 수 있을 때까지 교사는 읽기와 쓰기 수업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 만약 아이가 어휘에 흥미를 갖기 전에 읽기와 쓰기 수업을 시작한다면, 이는 아이를 중노동으로 내모는 것이다. 아이들은 결국 어려움을 극복할 테지만, 그 대가를 생각해보라! (함영기 역,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빛나야 한다, 2019)


바실리 스호믈린스키는 아이들이 감각에 의해 전달된 정서적 경험을 통해 어휘에 대한 흥미가 높아질 때까지 읽기와 쓰기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유아교육과 초등 저학년 교육에서 언어교육은 적어도 실천의 영역에서는 빨리 읽고 쓰는데 최고의 목표를 두고 있다. 우리 어린이들이 어릴 적부터 글쓰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 확실하다는 점에서 분명 오늘날 공교육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하고 있는 낡은 글쓰기 교육 방식은 분명 바뀌어야 한다. 다음으로 소개하는 내용은 독일의 공립학교의 한 사례이다. 페이 치쉬라는 초등교사(현재는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함)가 1학년 아이들이 활자를 모두 익힌 다음 식구들을 초대해 잔치를 벌인다는 내용인데, 활자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만약에 아이들이 모든 활자를 습득했다면, 다음에 2월 사육제가 시작될 때, 우리는 그동안 배웠던 활자를 가지고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페울리네는 '앵무새(papajena)로 변장하고 활자 'p'로 만들어진 시(p-시)를 낭독한다. 우리 모두는 'p'로 만들어진 노래(p-노래)를 함께 부른다. 이런 식으로 26개의 활자를 모두 축제 분위기 속에서 연출해 낸다. 이때 아이들은 모두 이제는 읽고 쓸 줄 알게 된다. 부모들을 초청하고 맛있는 음식을 장만한다. 음식과 음료로 가득한 탁자 앞에서 우리 모두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한다. 부모들은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활자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페이 치쉬, 교실혁명, 리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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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중고학년 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글쓰기는 서둘러 삶과 가까운 소재로 글쓰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쌓도록 지도해야 한다. 문제는 저학년 시절에 글쓰기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쌓지 못하고 올라왔을 때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런 처지에 있는데, 아무래도 중학년 때부터라도 일찍 긍정적인 경험을 갖게 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1년 담임제로 해마다 담임이 바뀌는 체제에서 한계도 분명하다. 더구나 1년의 교육과정에서 글쓰기에만 무리하게 방점을 찍어 가르칠 시간조차 부족한 게 현실이다. 글쓰기 만큼이나 듣고 말하고 읽는 것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읽기가 되지 않은 어린이들이 쓰기로 이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일 년의 교육과정에서 언어가 모든 영역에서 숨어 들 수 있도록 교실환경과 교사의 학급살이를 바꿔나가야 한다. 과정에서 국어수업의 질적인 변화와 다른 교과와 통합하며 글쓰기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 일상에서는 늘 아이들에게 옛이야기, 시와 그림책, 동화가 다가가야 하고 삶과 가까운 글쓰기에 교사가 적극 반응을 해주어야 한다. 단 일 년이라도 이런 종합적이고도 통합적 실천이 어린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제공이 되었을 때라야 그나마 무관심 하거나 쓰기를 싫어했던 어린이 일부를 도울 수 있다. 이것에 관한 자세한 실천은 앞으로 연재할 내용에서 하나씩 꺼내 설명하고 안내하려 한다. 결론적으로 어린이 글쓰기의 출발과 끝은 언어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접근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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