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30.)
"선생님, 이거 집에 가서 세 개 네 개 더 하고 싶어요."
위 말은 어제부터 시작한 00이의 <어린이 시 따라쓰기> 소감이었다. 그동안 난 어린 아이들에게 필사 시키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필사보다는 듣고 말하고 읽는 게 더 중요하고 우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만난 아이들이 쓰기에서 그다지 문제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아이들은 100일 정도 지나고 이런 저런 활동을 하며 손에 힘도 기르게 하면서 달려왔지만, 여전히 무언가 글과 그림이 흔들리고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하는 기분 이 들었다. 2학기부터 차츰 시작하면 되겠다 싶었지만, 두 아이만 빼고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읽기 상태가 괜찮아, 1학기 국어 교육과정에 나오기 시작하는 낱말과 문장 공부를 위해 조금 더 앞당겨 시작해야 할 것들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게 <어린이 시 따라쓰기> 였다.
동시 위주의 시 만남이 주로 이뤄지는 지금의 모습들이 정말 1학년 아이들에게도 적합한지도 생각해 볼 여지가 많았던 터에 우연히 선물로 받은 이 책이 우리 아이들 문장과 시 공부에, 그리고 바르게 글씨쓰는 공부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시도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다. 오늘도 새로운 '꽃'이라는 제목의 2학년 아이가 쓴 어린이 시로 따라쓰기를 해 보고 시도 외워 보게 하고 낭송해 보게도 했다. 나중에는 그렇게 쓴 글씨를 공책에 쓰면 어떤 모습일까 싶어 10칸 공책에다 옮겨 써보게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글씨가 이전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균형이 잡히지 않던 글씨체가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을 보였던 것.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 이 과정이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이번 참에 내가 아예 내 수업에 맞는 어휘와 문장공부 따라쓰기 교재를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공부가 될 듯하다.
다음 시간은 아이들이 그렇게 기대하던 감자캐기 시간. 요즘 비가 내려 때를 기다리다 예정했던 오늘. 감자를 심은 지 딱 석 달이 되는 날. 나와 아이들은 지난 석 달을 가꾸며 기다렸다. 감자의 약속을 기다리며 읽었던 그림책을 떠올리고 노래를 다시 부르면서 그리고 오늘이 감자를 심은 지 석달인 것을 표기하고 텃밭으로 나갔다. 어제 비가 온 뒤 텃밭은 우리가 오는 걸 알았는지, 이미 익어 올라온 감자 몇개가 초록빛을 띠며 반겨주고 있었다. 초록빛 감자를 빼고 하얀 감자를 모두 캐자는 안내를 따라 아이들은 맨손으로 텃밭에 들어갔다. 난 아이들에게 일부러 흙을 만지게 하고 싶어서 맨손으로 감자를 캐게 했는데, 몇몇 아이들은 손에 흙을 묻히기 싫어 주저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다가 싶어 그래도 용기를 내라고 했다. 조금씩 조금씩 만지기 시작하고 움직였지만, 조금은 아쉬웠다. 이렇게 시작하는 거라는 생각으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재밌고 웃긴 건 감자 캐러 간 1학년들이 감자를 캐다 개미에 더 관심을 더 보이며 집중력을 잃어 가더라는 거다. 어쩔 수 없는 1학년. 다시 정신 붙잡게 해서 땅을 파면 팔수록 쏟아져 나오는 감자에 더 집중하도록 독려했다. 가지고 간 상자 셋 가득 감자를 채워나가다 나중에는 줄기와 멀칭을 치우는데까지 고래고래 소리치며 개미와 벌레에 더 신경을 쓰며 관찰하는 아이들을 챙겨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청소하시는 여사님이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서 힘드시겠다고 걱정 하신다. 애들이 원래 그렇다는 말을 건네기는 했는데, 이래저래 시끌벅적 감자캐기는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됐고 아이들과 나는 세 상자를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교실로 들어와서는 비닐봉지에 각각 세 개씩 감자를 챙겨가게 했다. 집에 가서 주말에 감자요리를 해 먹으라고 말이다. 그러자 더 웃긴 건 아주 실하고 탐스러운 감자들만 모두 챙겨 가더라는 것. 요 녀석들도 보는 눈이 있었던 것.
이제 마무리 활동은 텃밭 공책에 거둔 감자의 그림을 그리고 오늘 관찰한 것을 쓰고 느낌과 생각으로 정리를 했다. 예상은 했지만, 시간이 부족해 충분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한 줄의 글로 마무리를 짓거나 주문한 내용과 상관 없는 글을 써 주었다. 그래서 이래저래 다시 안내에서 쓰게 했는데, 조금 나아진 것은 있으나 앞으로 아이들에게 자세히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쓰게 하는 일이 이 아이들에게 더욱 중요할 것라는 생각만 들었다. 바닥에 있으니 이제 채워 올려 보낼 일만 남았다. 충분히 잘 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우리 아이들이 텃밭에서 부르짖던 몇몇 소리가 다시금 떠오른다.
"선생님, 감자가 약속을 지켰어요."
"그러네, 정말 감자 한 두개만 심었는데, 10배가 넘게 나왔네."
"정말 많아요."
"선생님, 저 손이 흙이 됐어요."
"야, 정말 그 표현 좋다. 손이 흙이 됐다는 말. 손이야 씻으면 되겠지? 오늘 00수고했어."
"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
"맞아, 선생님 봤어. 잘했어. 수고했어."
오늘 석 달 만에 다시 만난 감자가 약속을 정말 지켜주어서 고마웠다. 아이들이 실망하지 않게 풍성하게 나와준 감자가 참 고마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