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 떠올린 사람

(2023.7.14.)

by 박진환

한동안 마른 장마를 자주 만나다 이렇게 길게 장마가 이어지는 걸 오랜만에 만나보니 낯설다. 비를 좋아하는 나지만, 이렇게 500미터를 걸어서 출근하며 옷을 젖히는 일상은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들어가는 일은 언제나 기대가 된다. 오늘도 들어가는 교실, 책 본다고 날 본 척도 안 하는 아이들이지만, 그 모습이 난 보기 좋다. 서둘러 차를 준비하고 오늘 수업할 것에 대한 준비를 했다. 오늘은 마침내 가족문패 만들기로 우드록을 삼나무판에 붙이는 시간. 그리고 문장부호 공부까지 하려 했는데, 오늘 세 명이나 아파서 결석을 해, 문장부호 공부는 다음주로 미뤄야 했다.


첫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엔서니 브라운의 <우리 아빠>와 <우리 엄마> 그림책을 보여주었다.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아빠>는 작가의 아버님이 입고 있던 옷을 우연히 다시 보며 아버지를 떠올리며 만들었다는 그림책이다. 언제나 힘세고 많이 먹고 포근하고 크기만 했던 아버지를 떠올리는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우리들 누구나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냐며 반문한다. 그렇게 힘 세던 아버지가 노쇠해지고 자식은 커가며 이제는 힘 없고 많이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버지, 포근하게 자식이 감싸야 할 아버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면서 나도 잠시 2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렸다.



참으로 애증이 많았던 아버지. 정신을 차려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에게 아빠는 어떤 사람이냐고.



"우리 아빠도 많이 먹어요."


"우리 아빠도 힘이 세요."


"우리 아빠는 수영을 잘 해요."


"우리 아빠는 키가 커요."


"우리 아빠는 요리를 잘 해요."


"우리 아빠도 포근해요."



내게 우리 아버지는 무심한 듯 했지만 때로는 혹은 자주 지나치게 관여를 해 나와 거리가 멀어진 분이었다. 자식을 배우게 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앞만 보고 달려갔던 아버지. 나에게 아버지는 포근한 사람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그런 면을 그렇게 싫어했지만, 나 역시 아버지를 닮아 우리 아들에게 그렇게 포근하게 다가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제는 다시 보지 못할, 일찍 돌아가셨던 나이 예순을 이제 나도 코 앞에 두고 있다. 다음으로는 <우리 엄마>도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남자여서 그랬을까? 아버지에 대한 것들이 오늘 부쩍 더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오늘 사실 이렇게 두 가지의 그림책을 보여준 까닭은 가족문패 만들기의 끝지점에서 한 번 더 우리 식구들을 생각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예전에 나와 함께 했던 1학년 아이들이 만든 가족문패만들기 과정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이제는 중학교 1학년이 된 아이들의 작품제작 과정을 보며 신기해 하기도 하고 재밌어 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진을 보여주니 훨씬 더 제작과정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도 만들기를 시작하고 하나 하나 삼나무에 이름 낱자를 붙여가며 완성된 가족문패에 대한 기대를 높여갔다. 오늘은 아무래도 목공풀로 붙여 고정시켜야 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오늘 아파서 못 온 아이들이 함꼐 할 시간도 벌어주어야 해서 색칠과 디자인은 다음주에 하기로 하고 잠시 멈추었다. 기대했던 대로 우리 아이들도 잘 해주었다.


나머지 시간은 <어린이 시 따라쓰기>와 <나만의 도형 그림책>으로 시간을 보냈다. 폭풍 같았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종일 차분하게 보내는 시간이었다. 때때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간간히 틀어 놓은 재즈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이제 방학도 머지 않았다. 다음주 한 주를 잘 보낼 준비를 오늘 퇴근하기 전에 잘 해 두어야 할 듯하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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