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장마로 비 오는 날에

(2023.8.29)

by 박진환

"뭐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던데..."

"앗, 그렇게 멀리서 들리더라는 거니?"

"설마 선생님 혼자 먹으려고 하는 건 아니겠죠."

"하하하. 왜 그러면 안 돼?'

"안돼죠~"


이제는 00이랑 많이 친해진 것 같다. 나한테 농도 걸고 자기 생각도 아직은 수줍어 하지만 용기내어 말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귀엽다. 아침에 교무실에 내가 좋아하는 간식을 가져다 놓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챙겨 교실로 들어왔다. 사실 아이들에게 간식 주는 걸 요즘 조심스러워 한다. 밥도 잘 안 먹는 것 같고 간식에 길들여지는 모습이 그다지 보기 좋아 보이지도 않아서 그랬다. 그런데 마치 새 먹이를 가져다 주는 어미새처럼 저마다 작은 입 벌리며 하나씩 달라고 할 때는 어떻게 주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씩 과자를 물려 먹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럴 작정으로 가져왔는데, 00가 보고서는 탐을 내기 시작했다.


"아무도 안 올 때 너랑 나랑 빨리 먹자."

"네!"

"아, 해봐."

"애들이 오는 것 같아요. 아~"

"하하. 아~"


입에 들어간 먹이를 티 안 나게 오물거리며 먹으려는 00의 모습을 멀리서 보려니 우습기도 하고 뭔 상황인가 의심스러워 하며 교실로 들어서는 아이들 모습도 우습기도 하고 오늘 또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10분 정도 책을 만나고 하루 한 문장을 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 중에 **의 글이 재미있다. 아이들은 본디 시인이라는 이오덕선생님의 말씀은 무조건 옳다. 이렇게만 글을 써 주면 좋을 텐데.


어제

오른쪽은 고개를 숙이고

왼쪽은 고개를 올리고 있는 벼를 보았다.

오른쪽이 햇볕이 더 잘 다드나 보다.


오늘 첫 수업은 백희나 그림책 <나는 개다>를 만나기 전에 지난주 마무리 짓지 못한 <맨 처음 글쓰기>의 맨 마지막 부분, 문장으로 쓰기 부분을 다루었다. '손'이라는 이름씨로 쓸 수 있는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을 다친 경험, 손에 무엇이 묻었던 경험, 손으로 무엇을 했던 경험 따위의 기억을 되살리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에 글을 쓰게 했다. 맞춤법, 띄어쓰기는 애초에 틀릴 것이 뻔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말고 선생인 내가 고쳐주고 도와줄 테니 맘껏 써 보라 했다. 쓰는 공책은 10칸 공책. 띄어쓰기와 맞춤법 등 글쓰기 지도가 된 다음에 <맨처음 글쓰기>에 옮겨 쓰게 하기 위해서였다.


충분한 연습이 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잘 따라 주었다. 주목하는 세 아이 중 한 아이는 토씨 처리가 안 되고 낱자의 획순도 많이 틀려 다시 지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늘 신경 쓰는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도 한 문장을 쓰려 해서 나와 친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한 문장을 완성했다. 남은 아이는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은 뒤에 내가 써 준 것을 따라 쓰게 했다. 아직 읽은 것을 떠올려 글자와 문장으로 써내는 일이 힘든 아이들이 두 세 아이가 있다. 남은 넉달 동안 애써야 할 일이다. 다들 한 편의 글을 완성한 것을 끝으로 백희나 그림책으로 넘어갔다.


오늘의 그림책은 <나는 개다>이다. 백희나 특유의 인형 같은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흥미를 끌어내는 그림책이다. 주인공 개 구슬이가 한 가족이 된 사람 식구들과 사는 이야기. 흔한 도시 아파트에서 사는 개가 맞이하는 외로움과 간간히 식구들과 지내는 풍경들, 그 사이로 진한 애잔함. 하지만 어린 가족 동동이의 배려와 사랑으로 한 식구로 살아간다는 이야기. 아이들은 저마다 귀여운 강아지와 귀여운 아이 동동이의 매력에 푹 빠져 이야기를 즐겼다. 자기들도 엄청 귀여우면서 누구 보고 귀엽다고 하니 어이가 없는데, 요즘 '귀여워~'가 마치 일본어 '가와이~'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얼까 생각도 해 보았다.


남은 시간은 수학시간이다. 규칙 찾기의 의미를 새기는 시간으로 보냈다. 삶에서 규칙은 어떤 모습이고 삶에서 규칙은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철학 아닌 철학으로 풀어내 놓았는데, 아이들은 그딴(?) 게 왜 이 수학시간에 다뤄지나 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더니 비슷한 점을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반복적이고 어긋나면 이상해 보이고 불편한 것이 규칙이라는 것. 그래서 규칙을 정하면 지쳐야 하고 반복해서 확인해야 하고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 삶이 얼마나 어그러질 수 있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져 보았다.


이후로 오늘은 수 배열표를 보고 규칙을 발견하고 읽어내는 연습을 하였다. 교과서로 확인하고 100칸 수배열판과 투명 수세기 칩을 제공하여 수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쉽게 접근하여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아이들은 수 배열판을 마치 무늬 규칙의 또 다른 양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의 아이들이었지만, 처음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설명을 충분히(?) 했는데도 왜 이러지? 수업을 다 마지고 생각한 것은 아직 100까지의 수와 수와 수 사이의 간격과 차이를 제대로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수업에 들어가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지점이었다. 일단 이 번 주로 마감을 하고 다음에 한 번 다시 충분히 100까지의 수와 덧셈과 뺄셈을 익힌 다음에 수 배열판을 만나게 해 보려 한다. 그때는 조금 다르게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 문제가 아니라 교사인 내 문제를 돌이켜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 내일은 아랭이골에 가서 생태놀이를 하는 날이다. 비가 내려 걱정이다. 어떻게 그래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가보려 한다. 비야 비야 내일 오전만 살짝 멈춰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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