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맑고 푸른 날에

(2023.9.7.)

by 박진환

살짝 뜨거운 햇볕만 아니면 화창한 날씨만보기엔 완연한 가을이다. 그 가을의 첫날 오늘 아이들과 나는 책읽기로 시작을 해서 하루 한 문장 쓰기를 했다. 하루 한 문장을 쓰기로 한 날도 어느덧 3주차에 들어섰다. 다음주가 되면 어느 정도 자기 생각이나 말을 글로 쓰는데 대부분의 아이는 익숙해질 단계다. 문제는 자기 삶을 얼마나 자세히 말하듯 풀어내느냐에 있다. 꽤 많은 아이들이 읽는 글처럼 글을써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를 주저하며 틀릴 것을 걱정한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에게 방금 너가 말한 것을 그대로 쓰면 그게 글이 된다고 한다. 어린이시 따라쓰기를 하면서 쉬운 글이라고 여기기만 했지, 막상 그렇게 글을 쓰기란 쉽지 않을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하루 한 문장씩 생각과 말을 써내려 가는데 익숙해지면 상당수의 아이들은 방언 터지듯 글을 써내려 간다. 오늘 00이가 바로 그런 아이였다.


"선생님, 종이가 좁아서 더 쓸 수가 없어요."

"그렇게 할 얘기가 많아?"

"네, 그래서 이렇게 작게 썼는데 더 이상 쓸 수가 없어요."

"그러면 이렇게 종이 하나를 더 붙이면 되지. 이어서 써 봐."

"아~ 네!"


그렇게 해서 써내려간 00의 글은 나름 재미가 있다.


서00가 내 옆에 앉기 전에 이00이 나한테 손톱 대보라고 했다. 근데 이00이 알약을 꺼내 내 손톱으로 알약을 긁으라고 했다. 이00석이 손톱으로 긁어 먹으라고 했다. 나는 이00이 하라는대로 했는데 이00이 먹을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먹었는데 썼다.(9/7, 고00)


한 장면을 이렇게 자세히(?) 써도 글이 된다는 걸 아이들이 깨닫게 되는 순간, 부담없이 줄줄 글을 써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그 물꼬를 어느 순간에 터뜨리냐가 문제인데, 열심히 쓰다보면 반드시 대부분의 아이들은 편하게 글쓰기를 하기 시작한다. 조금씩 달라질 아이들을 믿고 나는 <맨 처음 글쓰기>로 아이들을 안내했다.


오늘의 낱말은 세번 째로 '눈'이다. 칠판에 나는 눈을 그리고 눈의 파생어를 만들어보자 했다. 그렇게 '눈'과 관계된 파생어들을 떠올리고 쓰고 단문쓰기와 토씨표시하고 띄어써야 하는 법을 익히게 했다. 이제 어느 정도 속도가 빨라졌다. 다음주부터는 일주일에 두 개씩 나가도 될 것 같았다. 아직 글을 쓰는데 힘겨운 아이들이 셋 정도가 있다. 따로 지도해야 할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데, 조금만 더 애를 써볼 작정이다. 분명 변화 가능성은 있다. 아이들을 믿고 가는 수밖에.


오늘 3-4교시는 통합교과 '가을' 교육과정에 있는 이웃과 함께 놀고 즐기는 시간. 오늘은 이웃과 전통놀이를 해 본 경험을 이야기 해보고 실제로 윷놀이, 딱지치기를 해보았다. 나중에 사방치기로 마무리를 지었는데, 아이들이 엄청 신나했다. 안 그래도 강당과 운동장을 공사로 빼앗긴지 어언 6개월째라 몸으로 움직이는 것에 갈망이 컸던 아이들은 좁은 교실이었지만 신나게 판을 깔아 놀 수 있게 된 시간을 한껏 즐겼다. 나도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들과 윷놀이를 하고 딱지치기를 했다. 음...어떻게 됐냐면 내가 다 이겼다. 큭큭큭. 아이들 표정을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오늘 하늘은 맑았고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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