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하루

(2023.9.11.)

by 박진환

기후 변화로 세상이 힘들다지만, 아직은 계절의 변화가 사라지지 않아 다행이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지만, 기온은 조금씩 내려가며 살만한 기운이다. 주말을 잘 보내고 돌아온 아이들 표정도 그래서 그런지 밝다. 예전 1학년과 지낼 때랑 지난 2년 동안 6학년과 지내면서 가장 힘든 날 중 하나가 월요일이었다. 주말에 하루의 리듬이 깨져 온 1학년과 학교 오기 싫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들어오는 6학년과 맞는 월요일은 그만큼 힘들었다. 그런데 이번 아이들은 조금 다르다. 아이들 수가 적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훨씬 밝은 얼굴이다.


책과 시작을 하고 차를 한 잔씩 대접하고 하루 한 문장을 쓰게 했다. 이제는 아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대부분이 문장을 여러 개 쓰는 데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냥 삶을 쓰는 게 아니라 진짜 경험한 이야기를 쓰며 정성 들여 쓴다. 아직은 앞 뒤 문장이 맞지 않고 맞춤법이 틀리고 자세히 써야 할 부분을 빼 먹기는 하지만, 나랑 대화를 나누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을 고쳐야 할지 생각하며 다시 고치는 과정을 아이들이 무리없이 따라 준다. 정말 잘 쓴 아이이거나 고쳐 쓰면 좋을 글을 만날 때면 칭찬을 거듭해 주는데, 무언가 자신감을 갖는 표정들이 보인다.


오늘도 괜찮은 글들이 있었다. 그 중 두 편을 옮겨 와 본다. 좀 더 자세히 쓰게 했더니 실감나는 대사가 있어서 그건 생략한 정도가 이렇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삶을 글로 쓰는 법을 다음 달이면 비로소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우리 아이들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방향을 안내하고 쓰는 법을 툭툭 건드리듯 안내할 작정이다. 아이들에게만 맡기면 한계가 있다. 자신감도 얻지 못한다. 한 명 한 명 개별지도를 하면서 끈질지게 매달려야 한다. 그제야 조금씩 아이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글을 써내려 간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결과에 함께 기뻐하는 일이 담임으로서 가장 큰 성취감으로 다가온다.


눈물 | 거산초 1학년 000


엄마가 설거지한다고

혼자 목욕을 했다.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그때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왜 엄마가 죽은 아이처럼 우냐?"

그 말을 듣고

화도 나고 짜증도 났다.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혼자서 씻었다.(2023.9.11.)


좋지 않은 하루 | 거산초 1학년 ***


주말에 내 방에서 잠을 자려고 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싸웠다.

“시끄러워!”

하면서 베개로 귀를 막았다. 효과가 좀 있었다. 엄마가 아빠를 내 쫓았다. 나는 무서웠다. 엄마는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서 “응.”이라고 했다. 싸움이 멈추고 엄마랑 자려고 했다.


“엄마는 겨털 없어?”

“왜?”

“나는 겨털 만지고 있어야 잠이 와.”


그래서 엄마가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 나한테 넘겼다. 나는 아빠한테 내가 자려면 아빠 겨털을 만지고 자야 한다고 하면서 오라고 했다. 그래서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좋지 않은 하루였다.(2023.9.11.)


오늘 첫 시간은 <어린이 시 따라쓰기>로 시작해서 주말 과제로 나눠 준 주제어 '눈'에 관해 겪은 일 쓴 것을 살펴 보았다. 대부분이 그런 대로 잘 써와 주었다. 개별 지도를 하고 <맨 처음 글쓰기> 공책에 옮겨쓰게 하면서 글 쓰는 법을 다시 익히게 했다. 끝으로 오늘의 백희나 그림책 <알사탕>을 보여주었다. 어찌나 재미나게 보던지. 이미 이 그림책을 만난 아이들도 나랑 읽는 걸 즐긴다. 혼자 대충 본 것과 친구들과 함께 보는 것은 분위기도 그렇지만, 집중도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글만 읽고 훑어 넘겼던 지점에 그림이 보이고 해석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도 영화관에서 혼자 볼 때랑, 다른 관객과 함께 보는 것이 다르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그림책을 영화관에서 여러 관객과 함께 보는 기분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수요일에는 <알사탕> 그림책에서 떠올린 상상력으로 자신들만의 알사탕은 어떤 것이 있을지를 이야기 해 보고 직접 그려보고 책 만들기를 해 보려 한다.


3-4교시에는 100까지의 수를 읽는 시간. 오늘은 99까지의 수를 다시 읽고 쓰고 하는 법을 익히고 조작물을 놀이로 즐겁게 다루며 자연스럽게 묶어 세는 법을 익혔다. 수학나라 공책에 1에서 100까지의 수를 쓰고 읽고 세는 법을 글로 쓰게 하는 꼭지를 수행하게 했는데, 다들 나중에 팔이 아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직은 세는 법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이런 과정을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보이기는 했으나 한 번에 쓰기에는 힘들 것 같아 다른 놀이수학으로 안내하고 틈틈이 쓰게 했다. 다음으로는 묶어 세는 법을 조작물을 사용하여 나타내고 말과 글로 쓸 수 있는 연습을 놀이 과정을 거치면서 즐겁게 했다. 나중에는 교과서에 있는 놀이판으로 50이후의 수를 읽고 세는 연습을 하기도 하면서 수학시간을 즐겼다. 아이들은 저마다 놀이수학을 즐겼고 기쁘게 참여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오늘 4교시 수업을 모두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오늘 하루 수업. 이런 하루하루가 채워져 우리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겠다는 평범한 생각을 해 가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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