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2.)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도자기를 빚는 수업시간이 있는 날이다. 첫 시간 아이들과 책 읽고 하루 한 문장 쓰고 난뒤, <어린이 시 따라쓰기>를 해 놓고 서둘러 마을교사를 맞이하였다. 2학년 7명 아이들도 우리 교실로 들어오고 시작한 도자기 수업은 도자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구워지는 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1학년 아이들이 듣기에는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그 과정도 필요한 것이긴 했다. 오늘은 자기 찻잔을 만드는 시간이었는데, 기존의 잔을 만드는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고 흙을 적당히 떼어내어 바닥을 깔고 길게 다듬은 흙을 둘러 얹히고 바깥과 안을 다듬어 주고 맨들하게 깎아내는 것까지.
아이들 손으로 빚어내기에는 물론 서툴고 아쉬운 지점은 있었다. 같은 설명을 하고 같이 시작을 하고 똑같은 재료를 주어도 각기 다른 아이들의 경험과 손놀림의 성장속도, 남다른 감각을 가진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 아이들이 그랬다. 빠른 손놀림과 찰흙에 대한 감각으로 마을교사가 설명해 준 방식을 잘 습득해 빚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보였다. 말하고 듣고 읽고 쓰고 하는 활동과 그저 노는 모습과 다른 지점에서 아이들이 보였다. '00는 저게 안 됐구나, **는 이렇게 하면 되는데 저러고 있네.' 등 저마다 집중력과 손놀림에서 차이를 보였다. 오늘은 다행히도 세분의 강사가 오셔셔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아이도 어릴적부터 보이는 재능이 각기 달랐다. 바둑이나 퍼즐에서는 힘들어 했고 만들기도 잘 하지 못했다. 책은 5학년 때까지는 그나마 읽었지만, 이후로는 다른 활동이 겹치고 대안학교에 가면서 아쉽게도 멀어져갔다. 그마나 그 시절까지라도 안정된 문해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크게 문제 없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까지만 해도 우수한 학력을 보여주었지만, 이 아이의 주된 관심은 음악 쪽이었다. 잘 하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들이 관심을 보이는 영역이었으니 믿고 지지하며 갔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재능은 뜻밖인 곳에서 도드라졌다. 자기가 하고 싶은 한 가지를 파고 끝장을 보는 것. 그리고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이들과 맺는 인간관계형성 측면이었다. 이런 부분은 어릴 적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매번 무엇을 끝까지 해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그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지점이었고 그래서 고등과정에서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한 시점에서 나 또한 잠시 학교를 떠나있을 시점에 둘이 제주 올레 한 바퀴를 돌았다. 우리 아들이 처음으로 무엇을 끝까지 해냈던 시절이었는데, 대안학교의 경험과 이런 경험들이 맞물려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만나면서 달라지게 된 것 같았다.
아이들이 모든 걸 다 잘 할 수는 없다. 저마다 관심과 흥미, 기질과 재능이 모두 다 다르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센델의 후속작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그는 한 사회에서 기대하는 일정정도 이상의 위치까지 가는 사람들은 대게 자신들의 능력으로 그 자리에 왔다는 착각을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것을 공정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밝혀 본 결과 대부분은 가정 배경의 격차 뿐만이 아니라 뜻밖에도 '운'이었다는 점. 수많은 경우의 수를 인간들이 만나게 되면서 관계를 맺고 그런 인연 속에서 기회를 잡고 또 다른 성과를 얻게 되며 일정한 위치에 간다는 '운'. 우리 아들도 내가 보기에는 음악에 대한 실력과 운이 결정적인 관계를 맺으며 성장해 온 것 같았다.
참! 오해가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운'이란, 일반으로 생각하는 운명적인 운과는 다르다. 내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경제적으로 뒷받침 받지 못해 경쟁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 재능이 있는지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 특정한 관계를 맺지 못해 인연과 기회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 사회적인 환경 때문에 처음부터 배제된 사람들 같은 지점에서 생긴 '운'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른바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배경에는 이런 기제가 작동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오롯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일정한 자리에 있다는 착각과 오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얻은 혜택과 기회를 그러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려는 의지는 매우 소중하고 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은 사회는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기회와 운이 많아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직선적 성과주의나 성장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들의 각기 다른 재능과 능력으로 쉽게 재단하여 미래를 함부로 예측할 수 있겠지만, 이런 관점으로는 감히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의 미래를 재단할 수는 없다. 다방면의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이 자신의 기질에 맞고 도전해 보고 싶고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 매진해 보는 경험을 쌓게 하는 일은 그래서 우리 어른과 학교, 사회가 지속적으로 제공해 주어야 하는 역할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초등에서는 기초교육이 강조될 수 밖에 없는데, 오늘 우리 아이들이 찰흙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단지 잘한다 못한다 부족하다는 지점이 아닌 좀 다른 지점에서 보면 아이들이 좀 더 달라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은 시간에는 어제 읽은 <알사탕>으로 책 만들기를 했다. 나는 어떤 알사탕을 가지고 싶고 먹고 싶은지, 누구의 마음을 알고 싶은지, 그 마음을 알아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먼저 이야기 했다. 동생의 마음, 형의 마음, 선생님의 마음, 멸종한 생물의 마음, 나무의 마음, 아빠의 마음 등 아이들도 저마다 알고 싶고 기대하고 싶은 마음을 사탕에 담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 보았다. 그렇게 해서 지난 번에 만든 백희나 그림책으로 만든 책만들기 작품에 이어서 붙이게 했다. 아이들마다 진지하게 참여해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즐겼다. 이제 남은 작품이 서너 작품이다. 모레까지는 모두 만나고 서울로 가야하지 싶다. 서울 가서 뮤지컬을 관람하고 전시회를 관람하는 모습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또 다를 것이다. 다른 지점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그런 과정에서 돕는 과정이 교육이어야 하고 교사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늘은 여기까지. 끝으로 오늘 00의 하루 한 문장을 옮겨와 본다.
어제 학교가 끝나고 내 동생을 데러러 갔다. 그런데 찜통 같은 더위였다. 너무 더워서 엄마한테 물을 사주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 가방에 있는 따뜻한 물을 마시라고 했다. 따뜻해서 안 좋았다. (9/12, 이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