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말은 살아 있다

(2023.9.13.)

by 박진환

"구수한 냄새가 나요."

"마시지 않았는데도 마신 것 같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늘 아침에 작두콩 차를 아이들에게 따라줄 때 들었던 말이다.


"선생님, 누룽지 냄새가 나요."

"맞아, 비슷하지. 근데 콩이야."

"콩에서 누릉지 냄새가 나요?"

"그러게, 그런데 콩에서 나는 게 아니라 콩에서 누릉지 냄새가 비슷하게 나는 거지."


아이들 말을 들을 때면 때없이 맑은 목소리로 물 흐르듯 전해줄 때는 마음이 정말 편안해진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그 누구의 말에나 거친 말이 아닌 보드라운 말은 힘이 있다.


오늘 전해준 하루 한 문장 속 아이들 글은 점점 넘쳐 나서 네모난 붙임쪽지 크기를 넘어서기가 일쑤다. 한 장 더 달라는 아이가 늘어난다. 그 아이들 틈 사이로 오늘 00의 글은 또 한 편의 시다.


어제 새벽에 엄마가

수영장에 나 몰래 갔다.

내가 자고 있어서

엄마 혼자 갔다.

나는 엄마 혼자 가는 거

몰라서 그냥 잤다.

그런데 혼자 자는 건 무섭다.

엄마는 조심조심 갔다.

그래서 하나도 안 무서웠다.(9.13, 김00)


오늘 첫 시간은 <맨 처음 글쓰기> 의 '몸'편. 몸과 관련된 어휘를 말하라고 했더니 서로 먼저 하겠다고 소리친다. "다리, 무릎, 겨드랑이, 엉덩이, 발꿈치, 뼈, 팔꿈치, 목, 배, 어깨, 가슴, 등, 머리, 얼굴, 귀, 코, 입, 허리!" 이제는 익숙한 듯, 칸에 띄어써서 몸과 관련한 이름씨를 하나씩 써 넣는다. 그리고는 토씨(조사)가 붙은 단문쓰기, 아직도 조사의 역할을 헷갈려 하는 아이들이 있다. 늘 이 수업을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한 번에 익히지는 못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르치는 교사의 처지에서는 쉽지 않은 과정이다. 반복하고 되풀이 할 뿐. 그러면 결국 헤어지기 전에 대게는 다 고친다. 초등학교에서 1학년에서 어휘, 문장 공부는 교사가 끈질기게 붙어 지도해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학원 교육과 학습지에 기대어 결국 이런 기초문해력을 사교육에 맡기게 되고 공교육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어지는 시간은 모레 찾아갈 백희나 그림책 전시관에 맞춰 <어제 저녁> 그림책과 <이상한 손님> 그림책을 보여주었다. 아파트에 사는 동물 이웃들의 성격에 어울리는 사건을 배열하여 이어가는 <어제 저녁> 그림책은 단순해 보이지만, 혼자서 보면 별로 흥미가 없을 것 같지만, 이렇게 같이 보면 호기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책 속의 책으로 <어제 저녁> 그림책에 백희나의 <달 샤베트>가 있다고 소리치며 반가워 하는 아이들. 숨은 그림 찾듯 반가워 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며 나도 덩달아 처음 보는 것인양 놀라워 해주었다. 이어붙이기 기법으로 앞뒤로 만든 <어제저녁> 책의 특징을 한 아이는 지난 주에 보여준 그림책 <장날>을 닮았다고 했다. 아이들의 살아있는 말과 말이 이어져 수업이 확장되고 깊어졌다. 다음으로 <이상한 손님> 천달록이라는 아이가 땅에 잘못 떨어져 이상한 손님으로 남매를 만나 결국에는 하늘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 전시회에 가서 그림책 인형을 만나고 싶다는 아이들의 말. 한 녀석이 또 이런 말을 꺼내든다.


"선생님, 내일이 서울 가는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니다. 오늘 당장 갔으면 좋겠어요."


다음으로 이어진 수업은 수학. 오늘은 수의 크기를 비교하고 짝홀수를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50 이하의 수 크기 비교를 이미 경험했고 1학기 때 짝수와 홀수의 개념을 살짝 익힌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이 과정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한 아이가 수의 크기를 공부하는데, 하나 많고 하나 적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차례대로 읽어 가는 수는 알지만, 하나 적고 많은 걸 몰라 헤매었다. 그래서 차근차근 교과서 그림을 보게 하고 조작물로 설명을 하니 그제야 알겠다고는 했는데, 답도 잘 말 했는데, 정말 이해하고 아는 건지, 반복한 것에 익숙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좀 더 지켜 봐야 할 것 같았다. 오늘 수업에는 교구 중에서 '에그 블록'이라는 걸 사용해 보았다.


달걀판처럼 단단한 스펀지 같은 재질에 사각모양의 구멍을 10개 내 놓아 채워 묶음을 나타내어 끼워 넣고 빼는 과정을 통해 수 세기의 개념을 익히는 교구였다. 1학기 때 교구를 뒤지다 건진 것인데, 오늘 아이들에게 블록 10묶음짜리 10개를 나눠주고 조작하도록 해 보았다. 먼저 67이라는 수를 나타내기 위해 묶음과 낱개를 책상 위에 올려 나타내는 놀이를 너댓번 반복했다. 나중에는 짝수와 홀수를 익히기 위해 낱개 한 개를 빼고 넣으면서 짝수와 홀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시각과 촉각을 살려 익혀 보았다. 새로운 교구에 흥미를 보이며 재밌어 하는 것만으로도 오늘 수업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때 한 녀석이 소리를 지른다.


"선생님, 다음에 빙고 하는 거예요?"


오늘은 아이들 말이 유독 잘 들리는 날이었다. 요즘 학교 급식이 공사로 제 때 제공되지 않아 점심시간에 아이들은 외부업체에서 오는 음식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나는 이 참에 음식 좀 조절하려 집에서 도시락을 싸온다. 오늘 반찬 중에서 오이김치가 있었는데, 좀 남아서 먹고 싶은 아이들을 찾았다. 몇몇 아이들이 먹겠다고 해서 주었는데, 한 아이가 다가와서 묻는다.


"선생님, 이거 선생님이 만든 거예요?"

"그럼~"

"맛있어요. 와, 선생님은 어떻게 이런 것도 만들어요. 달고 시고 맛있다."

"하하하. 그렇게 맛있냐?'

"네, 하나 더 먹으면 안돼요?"


아이들 말은 살아있고 힘이 있다. 그 힘으로 아이도 살고 어른도 살 수 있는 것 같다. 오늘 단체 기념 사진은 <이상한 손님>의 주인공 천달록이가 방귀를 뀌면서 얼굴을 구기는 장면으로 찍자 했다. 그랬더니 또 다른 모습의 얼굴들이 보였다. 에고,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우리가 만난지 200일이 되는 날도 이제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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