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것 없는 답답함에 대하여

(2023.10.11) _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80

by 박진환

어제는 학교 밖 교사모임을 했었다. 국어과 모임이라 요즘 국어수업 전반에 대해 각자 이야기 해 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충남 서쪽에서 근무하는 오랜만에 모임을 찾은 선생님은 요즘 자기 반(5학년)상황에 대해 언급해 주었다. 그런데 듣고 있자니 너무도 불편하고 가슴 아프고 절망적이기만 했다. 작은 도시의 작은 학교. 코로나 시기를 거쳐 아이들은 읽기와 쓰기가 무너져 있었고 수업태도를 교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앞 선 학년들에서 수업시간에 영화를 자주 보여준 아이들은 새로운 학년의 담임이 영화를 보여주지 않아 불만이고 공부를 시킨다고 불평이란다.


동료교사들도 수업 밖 업무에 매달려 있고 수업은 교과서 중심으로 진도 나가기에 급급하단다. 업무 위주로 학교생활을 하는 교사들과 수업에서 소외된 아이들이라는 화두는 20년 전부터 비판의 대상이었고 개혁의 대상이었거늘, 과거에서 살고 있는 풍경들은 그저 시골이라는, 촌이라는 걸로 퉁치고 넘어가며 쓴 웃음만 짓게 만든다. 일부 보호자들은 내 자식 먹고 살것 마련해 놨으니 애써 공부시키지 말고 스트레스 주지 말라고 한단다. 지난 30년간 교육을 바꿔 보겠다고 애써 온 나로서는 참으로 절망적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모임선생님은 애써 아이들 생활글을 지도하려 하는데, 낮은 문해력과 글쓰기 능력 때문에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했다. 들으면 들을 수록 답답함과 갑갑함이 몰려들었다. 학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교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교육청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아이들 삶이 학교에서조차 무너지고 있었다. 혁신학교 운동 10여년을 넘기고 있지만, 일반 학교의 상황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서 하는 걸 본따 하는 정책과 지원은 있지만 현장성찰을 끌어내지 못하고 적확한 지도와 안내, 활동가들을 길러내고 끌어내지 못하니 겉으로 보이는 결과만 드러나고 내실은 없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혁신교육의 짙은 그늘. 그늘은 갈수록 짙어가고 커가며 노을빛만 가득한데 기관은 생뚱맞고 현장도 모르는 미래교육을 이야기 한다. 학교는 내가 발령 받은 30년 전이랑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는데 말이다. 또 다시 무너진 학교, 무너진 수업, 무너진 어린이들의 삶 이야기를 듣다 오늘 우리 반 아이들의 글을 만나니 그나마 기운이 난다.


아침에 꺼내 놓은 아이들은 글의 일부를 옮겨 와 본다.


정*

난 동생의 울음 소리가 싫다. 근데 이제 화를 푸셨나 보다. 난 동생과 엄마가 안 싸웠으면 좋겠다. 미래엔 싸움이란 게 없어졌으면 좋겠다.


윤*

혓바닥이 날름~ 날름~ 참 귀엽다. 도마뱀을 싫어하던 엄마도

"귀엽다!"

라고 하셨다. 탈피한 것이 안 보인다.

"어디로 갔지?"

10월 안에는 찾았으면... 진짜 찾았으면 좋겠다.


시*

펑펑 불꽃이 터지는데 불꽃 터지는 소리가 너무 커서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런데 내 손이 작아서 손가락 사이로 불꽃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엄마한테 귀를 막아 달라고 했다. 엄마가 귀를 막아줬다.


예*

나는 오빠(가운데) 손가락이 불쌍하다. 왜냐하면 오빠 손가락 빼고 다 접으면 욕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욕은 외국에서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오빠 손가락은 잘못이 없습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특히 00이 한테 더 많이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난 저번에 욕을 몰랐다. 그래서 실수로 00이한테 해 버렸다. 00이는 내가 실수로 한 거도 모르고 나를 도둑신세로 대했다. 그래서 지금도 화가 난다.


가*

렌즈를 끼고 일기를 쓰면 눈이 아프다. 왜냐하면 눈을 계~~속 뜨고 있으니까 눈에 있는 렌즈가 건조해져서 눈이 내려갈 때 뻑뻑해서 눈이 따갑기 때문이다. 눈이 따가우면 쓰기가 어렵다. 만약에 내가 지금 렌즈를 끼고 일기를 쓴다면 내가 "엄마, 눈이 따가워." 라고 해서 엄마가 일기 쓰지 말고 자라고 했을 거다. 다음엔 일기를 집에 들어오자마자 쓸 거다.


요즘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삶을 흉내내는 것, 닮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걸 자신의 삶이라고 착각하고 산다. 어린이의 삶을 어른들에게 다 빼앗겼는데도 그게 자기 삶으로 여기고 산다. 우리 반 아이들처럼 자기 생각과 느낌을 담아 자기가 겪은 삶을 돌아보는 일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글쓰기가 단지 글쓰기에 머물지 않고 잃어버리고 사라지는 삶을 붙잡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어린이들의 삶을 지키는 데도 매우 중요한 도구이다. 이 도구를 유용하게 배우려면 어릴 적부터 기초문해력을 차근차근 쌓아가며 책을 만나야 한다. 요즘 어린이들이 그러지 못하고 영상에 빠져 사는 게 가장 문제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에 도무지 관심이 없다. 오로지 돈 돈 돈이다. 안정적이고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추구하기 위한 사교육을 시키거나 내가 가진 재산을 되물림해 살게 하는 것을 행복한 것이라 가르치고 있다. 참으로 참으로 안타깝고 절망적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맘을 달래고 달래며 오늘 우리 아이들의 국어수업 루틴을 거치고 난 뒤에 수학시간을 이어갔다. 오늘은 (두 자리 수 + 두 자리 수)를 수 모형을 가지고 자릿수 개념을 되새기며 문제를 푸는 과정을 반복했다. 연습을 시키면서 더디고 실수를 자주 하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 보이고 00이가 보인다. 과정을 잘 거치면 도울 아이들을 찾을 수 있다. 오늘은 도우미 교사가 오셔서 힘들어 하는 아이들 집중해서 도와주셨다. 교육이 이래야 한다. 교육청과 학교는 어린 학생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교사는 이런 지점을 요구하고 수행 방법을 찾는 교육철학과 안목을 지녀야 한다. 직업교사란, 월급만 받고 교과서 대로 수업하는 교사가 아니라 어린이를 도울 수 있는 안목을 가지며 직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에 저항하며 교육과정과 수업에 대한 전문성으로 부단히 실천하는 이를 말한다. 진정한 직업교사로서 살아가는 일에 교육청과 학교, 보호자와 교사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 이야기를 30년 전부터 했는데, 별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변화는 곳곳에서 보이지만 바탕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오후 국악시간과 오카리나를 함께 부르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오늘은 아니 요즘은 그저 막하고 절망적인 생각들만 가득하다. 지난 30년간 내가 할 수 일은 다 한 것 같아 이제 떠날 준비를 하는데, 뒷끝이 영 개운치 않다. 따듯한 가을 햇볕이 오늘은 무척이나 짜증스럽게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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