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가을과 빛나는 한 줄

(2023.10.10)_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81

by 박진환

마침내 긴 연휴 뒤 연휴가 지났다. 어떻게 보면 중간 방학, 가을 방학 같던 지난 2주였다. 들어서자 마자 아이들이 내미는 일기장. 이제부터 아이들 글을 만나야 하는 때가 되었나 싶었다. 1학년이라고 교과서 수준의 일기글만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큰 따음표도 가르쳐 주고 사용방법을 알려주면 매우 잘 부려 쓴다. 문제는 꾸준히 가르쳐주고 되풀히 해서 익힐 환경과 자극을 줄 수 있느냐에 있다. 이런 저런 틀을 제시해서 글쓰는 법을 익히도록 하는 교육과정과 교사들도 있지만, 난 틀 없이 자기 삶을 떠올려 자유롭게 쓰는 법을 제일로 친다.


그게 안 되는 아이들도 꾸준히 삶을 나누고 생각하게 하고 쓰게 해야 한다. 그래야 훨

씬 자유로운 글을 쓴다. 이오덕선생님의 글쓰기 철학도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언제부터인가, 조리있게 글을 쓰게 하려고 생각의 틀을 제시하는 교사들이 늘어가는데, 글쎄 나는 크게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그냥 문장을 익히고 쓰는 법을 익히는 것은 국어시간에 할 수 있지만, 자기 삶을 떠올리고 생각하여 글을 자유롭게 쓰는 경우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랑 만나 글을 즐겼던 아이들은 다 그랬다.


오늘 우리 아이들의 글도 무척이나 궁금했다. 주제도 주지 않고 글감도 자유롭고 쓰는 날과 횟수도 자유롭게 할 때, 어떤 글들이 들어올지 말이다. 무척이나 궁금한 마음으로 나는 아이들 글 하나하나 살펴 보았다. 오랜만에 빛나는 가을 하늘 때문이었나 몇몇 아이들의 날씨표현과 글 사이사이 드러나는 아이들만의 표현이 내 마음을 흔든다. 그야말로 빛나는 한 줄이 가득했던 오늘 우리 아이들의 일기장이었다.


예*

가을인데, 겨울 같다.

**가 아프면 엄마 아빠가는 나는 투명인간이고 엄마 아빠가 **이만 있는 거 같이 군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고 우리 집에 있는 대추도 달콤하다. 가을인 거 같다.


*람

아침에도 춥고, 저녁에도 춥고, 점심 때 딱 좋은 가을이다.


규*

버스를 탔다. 그런데 편한 느낌인 거 같았다. 근데 가방이 없었다.


가*

솔직히 나는 조금 통통하다. 엄마는 그 통통함을 조금 없애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처럼 채소부터 먹는다. 요 통통함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통통함이 없어지려면 무슨 방법이든 할 수 있따. 엄마가 먹는 순서가 바뀌면 통통함이 안 온다고 했다. 남자애들이 100톤이라고 놀리지만 난 그냥 장난처럼 받아준다. 어떨 때는 집에 가서 살짝 울컥했다. 처음엔 00가 100톤이라는 별명을 만들었지만 이젠 괜찮다. 100톤은 힘도 세니까 누구든 이길 수 있을 거다.


지*

형아 생일이다. 그런데 생일분위기가 아니다. 형아 생일선물은 내일 온다. 형아 혼자 생일 파티하는 게 외로울 것 같다.


지*

땀방울이 내 목을 탐험한 날


지*

마지막에는 액스포를 많이 걸어서 발에 쥐가 찍찍했다.


윤*


나와 내가 아는 동생은 맛조개를 잡으러 갔다. 나는 아빠와 함께 맛조개를 찾으러 갔다. 맛조개를 잡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는 구멍에 소금을 넣었다. '어라? 왜 안 나오지?' 맛조개는 한마디 했다.


"흥, 누가 속을 줄 알고?"


나는 다른 구멍에 소금을 넣었다. 맛조개가 나왔다. 나는 세게 당겼다. 너무 세게 했나? 맛조개는 나한테 물을 뿌렸다.


"으악! 머리카락이 다 젖었잖아?"

"고얀놈, 싹쓰리하겠다."


이렇게 아이들을 글을 일다보니 어느덧 마을교사 초청 ;다식'만들기 시간이 됐다. 즐겁게 다식을 만들고는 남은 시간에 다음주 천안으로 가서 연극 <서찰을 전하는 아이> 관람을 위해 책을 읽어주었다. 아무래도 저학년이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 미리 책을 읽어주려 하는 것. 작년 6학년할 때는 딱히 설명이 필요없었는데, 읽을 때마다 아이들이 어려운 말을 묻는다. 나도 설명해주고 하니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이 흥미를 보인다.


점심시간 이후로는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 덧셈을 익혔다. 두 자리수 + 한 자리 수에 이어 두 자리 수 + 두자리 수를 익혔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자릿값을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우습게도 세로셈을 가로셈처럼 푸는 아이가 있어서 웃었고 6+3을 아는 아이가 3+6을 몰라 헤매는 것도 웃겼다. 지난 번에 익히고 오늘도 익혔는데도 헷갈려 한다. 이러니 수학을 날마다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 아이들은 까먹는다. 잘 하는 아이들도 자주 틀리고 헷갈려 한다.


내일은 좀 더 조작물을 가지고 살펴가며 오늘 익힌 두 자리 수 + 두 자리수를 익히려 한다. 반복해서 학습할 밖에. 오늘은 지금도 밝게 빛나는 햇볕과 맑디 맑은 아이들의 빛나는 한 줄 때문에 기분이 좋았던 하루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쓴 글 중에 나는 빛나는 한 줄이 없다. 때가 단단히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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