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괴물들과 보낸 하루

(2023.10.12.)_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79

by 박진환

"선생님^^ 아이들 글이 꾸밈없이 순수합니다. 작업하는 시간은 힘들었지만, 힐링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 감사합니다.^^ "


우리 아이들과 헤어질 때 나눌 문집작업 도우미로 함께 하신 한 어머님의 보내주신 메일에 담긴 글. 8월말부터 10월초까지 붙임쪽지에 쓴 약 한 달 보름간의 문장쓰기 공부 결과를 타이핑 해달라는 부탁에 기꺼이 나셔주신 분들이 무려 여섯 분. 그 첫 작업을 완성해서 보내주시며 힘들었지만 힐링할 수 있었다는 말씀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예전 1학년 보호자 분들도 똑같은 말씀이었다. 자기 아이의 글이 아니어도 다른 아이들의 글을 보면서 마음이 깨끗해지고 맑아졌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만큼 우리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 즉 삶이 담긴 글을 만나셨기 때문이리라.


오늘 아침도 예외는 아니었다. 요즘 날마다 우리 반 아이들 글 중 함께 나누고 싶고 잘 쓴 글은 꼭 한 두 편씩 읽어준다. 그러면 아이들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말과 표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더 좋은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술적으로 좋은 글이 아니라 정말 그 아이의 삶이 보이는 글. 거기다 내가 가르쳐 준 대로 써오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오늘은 좀 더 많은 아이들의 글을 옮겨 와 본다. 글에는 삶이 보여야 한다. 그 아이만의 개성과 기질이 상황과 겹쳐 만들어내는 그들의 만의 삶이. 그것을 글로 쓸 수 있을 때라야 아이들은 생각이 커지고 마음이 자란다.


날짜: 10월 11일 수요일

날씨: 햇빛도 나면서 바람이 불었다.


제목: 산수유가 빨갛게 물들었다


아침에 간단하게 베이글에 크림 치즈를 발라서 먹었다. 버스를 타러 가는데 엄마가 같이 가주고 있었다. 원래는 나 혼자 길을 걸어 가는데 오늘은 엄마가 함께 가줬다. 저기 빨강 열매가 엄마 눈에 보였나 보다. 엄마가 말했다.


"저기 있는 빨간 열매 뭐게"

"앵두?"

"아닌데, 저거 산수유인데."


엄마가 말하면서 산수유 세 개를 따줬다. 산수유를 손위 쥐고 있는데, 뭐가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손에 쥐고 있떤 산수유를 보니 산수유 한 개가 빠져 있었다. 그래서 산수유 두 개만 있었다. 다음에는 주머니에 산수유를 넣고 다닐 거다.(*은)


날짜: 2023년 10월 11일 수요일

날씨: 아침엔 시원했다가 저녁엔 춥다.


제목: 내가 시녀가 된 날


나는 오늘 일기를 뭐라고 쓸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생각날 때까지 기다렸다. 근데 엄마가

"오빠가 놀이터에서 기다리니까 내려가 봐."

하셨다. 나는

"응."

이라고 했다. 옷을 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조금 있으니 엄마와 동생이 왔다. 나는 미끄럼틀에서 '사람 살려'라는 놀이를 했다. 오빠는 줄넘기를 했다. 집에 와서 나는 완전 시녀가 됐다. 엄마가 내가 책 보는데, '옷 치워라, 목욕했냐?, 머리 빗었냐?' 등등. 그!런!데! 오빠까지 시킨다.

"나도 할 거 너~~~~~~무 많은데 꼭 나한테 다 시켜?"

나도 일기, 북스타트, 와캠. 나도 힘들다고! 나두! 나두! 난 그거 때문에 일기가 늦어졌다. 다음엔 사정을 얘기할 거다.(_영)


날짜: 2023년 10월 10일 화요일

날씨: 오늘은 해가 떴지만 바람이 안 불어서 안 추웠다.


제목: 창의과학을 하고 아빠가 온 날


창의과학을 다 했다. 내가 나가서 보로노이 빛 상자를 태양에 비추었다. 보로노이 빛 상자 안에 그 코팅지 같은 걸 내가 창의과학할 때 선을 긋고 색칠한 게 반짝여서 조금 신기했다. 아빠가 놀이터 의자에 있었다. 나는 아빠가 좋다. 창의과학도 좋다. 그래서 화요일이 좋다.(0현)


날짜: 2023년 10월 1일 수요일

날씨: 아침에는 춥고 낮에는 덥다.


제목: 수요일


수요일은 바쁘다. 왜나하면 수요일은 6교시고 또 음... 축구도 가고 아파트 영어도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마뱀 칼슘제도 줘야 한다. 그래서 수요일이 바쁘다고 한 것이다. 수요일은 바쁘지만 배우는 것이 좋다. 하지만 금요일이 더 최고다. 왜냐하면 게임을 한다. 킥킥(ㅇ우)


날짜: 2023년 10월 1일 수요일

날씨: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니까 추웠고 이따가 되니 안 추웠다.


제목: 내 이를 엄마가 뺐다.


오늘은 웃긴 날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오늘 버스에서 김주안한테 이를 빼 달라고 했는데 진짜로 김00이 이를 밀어서 이가 빠지려고 했다.


"김00! 내 이를 좀 빼줘."

"알겠어. 빼줄 게. 삑!"

"아, 그만! 이가 빠지려고 하잖아."

"미안해. 너무 쎄게 밀었나 봐."

"그러니까! 조심 좀 해.!"

"너 피나."


김00이 내 이를 이렇게 아프게 밀었다. 버스에서 내렸다.

"엄마, 나 이 빼 줘."

"엄마가 손으로 뽑아줄까?"

"응."


이를 뽑았다. 그런데 뭔가 바보 같았다. 그래도 아프진 않았다.(*석)


우리 반 아이들 글을 보고 있자니 정말 나도 마음이 편해지고 흐믓하다. 나머지 아이들도 모두 좋은 글을 써주었다. 오늘 올린 글은 재밌는 소재와 아이들 마음이 잘 드러난 삶이 담긴 글을 올린 것이다. 이래서 내가 아이들 글쓰기 지도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어제 새로 구입해 도착한 북스타트 관련 책을 교실에 늘어놓고 아이들에게 책상자에 있는 책을 바꿔 보도록 안내했다. 약 50권에에 가까운 책을 펼쳐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고를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겨우 맞춤형 책을 아이들에게 나눠 읽게 할 수 있었다. 어서 빨리 도서관이 완성되어야 하는데, 내년 4월에나 열 수 있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새책을 책 상자에 넣고 책을 읽는 아이들 표정은 사뭇 더 진지해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오늘은 어제부터 읽은 최덕규의 <나는 괴물이다>를 더 보기로 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겪은 것인양 말이 많아졌다. 나도 그랬다거나 내 동생이 그랬다며 말썽꾸러기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하기 바빴다. 그러면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괴물'의 정체를 아이들은 눈치 채기 시작했다. 주인공 '최여름'가 뒤집어 쓴 종이가방에 그린 가면을 떠올리며 괴물을 지목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에 보이는 괴물 가면을 우리도 만들어 보자 했다. 그랬다니 좋겠다고 그러고 싶었다고 난리다. 시끌벅적 아이들은 내가 그려 준 틀에 더 꾸며 가며 자신만의 괴물 가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서로 보고 킥킥 웃고 누가 더 괴물 같은지를 이야기 하는 아이들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나중에 다 만들고 난 아이들의 가면 그림은 정말 그 아이와 닮아 있었다. 가면을 쓰고 나니 처음과 달리 낯선 모습에 당황하기도 하고 잘 맞지 않아 답답해 하기도 하고 쓰고 나가 뛰어 노는 아이들도 있는가 하면 더 이상 못 쓰겠다고 투덜 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모두가 우리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냥 그냥 귀여운 괴물들이었다. 중간놀이 시간 뒤에는 <맨 처음 글쓰기>의 주제 '길'로 시간을 보냈다. 다 쓴 아이들은 어제 못한 글감 '신'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느 덧 자기 삶을 글로 쓰게 된 아이들. 조금씩 힘들어 하지만 글을 쓰는 재미를 조금씩 깨닫는 아이들. 이런 모습들이 6학년까지 아니 어른이 되어서도 쭉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하루도 귀여운 괴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제 우리 아이들과 지낼 날도 8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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