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3.)_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78
어제 밤 늦도록 상담을 마치고 날 목놓아(?) 부른다는 지난 학부모님들이 섞인 독서모임을 찾아 또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갔던 탓인지 아침에 몸이 좀 무거웠다. 그래도 금요일이라 그런지 마음만은 가벼웠다. 교실로 들어서며 아이들을 맞았는데, *빈이가 한 마디 한다.
"오늘 선생님 인사하는 목소리가 왜 그렇게 높아요?"
"응? 선생닝님이? 아닌데, 평소에도 이랬는데?"
"아닌데요."
"아니거든요?"
정말 내가 그랬나 싶기도 한데, 그러고 보니 뭔가 내가 아침 에너지가 막 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마도 아이들을 만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늘 자주 말하지만, 그렇게 힘든데도 아이들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몸을 움직이게 된다. 이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일까?
어제 상담을 한 아버님 중 한 분이 내가 하도 열심히 열정을 보여 교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줄 아셨다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니라 했다. 나도 한 때는 교직이 천직인 줄 알았는데, 요즘은 점점 그런 생각이 옅어져만 간다. 그저 열심히 사는 사람일 뿐. 사회가 바뀌고 교육이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일 뿐.
나는 요즘 교직이 천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때때로 아이들 때문에 힘들 땐,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도 많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직도 내 적성에 맞는 직업을,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지는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면 뭐 하나. 내가 지금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교사일 뿐인 걸.
첫 시간은 북스타트로 시작해서 맨 처음 글쓰기 확인, 시따라쓰기 확인의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는 오늘의 일기 중 좋은 글을 읽어주었다. 두 아이의 글은 너무도 좋았다. 1학년 아이들을 네 번 만나고 있지만, 올해 아이들의 글이 제일 맘에 든다.
날짜: 2023년 10월 12일 목요일
날씨: 이제 춥고 더운 게 끝났으면 좋겠다. 가을이다.
제목: 어른들은 이상해
어른들은 이상하다. 이렇게 이상하다. 어떻게나면 뜨거운 걸
"아, 시원~하다."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이 제~~일 이상하다. 또 이렇게도 이상하다. 우리한테는 차 탈 때
"창은 밖으로 손 내밀지 말아라."
라고 말하는데 어떤 어른들은 창문 밖으로 손을 내민다. 이상하다.
그리고 또 신호등이 초록불인데, 어른들은
"파란불이다!"
라고 말한다. 너~~~~무 이상하다. 엄마한테 물어 봤는데 엄마도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도 그런데 말이다. 하지만 아빠는 어린이 돼서 그 마음을 느껴 보라고 하셨다. 빨리 느껴보고 싶은데 시간이 빨리 가서 내가 한 번 느껴보고 그 다음에 돌아와서 클 때까지 크고 싶다. 진짜로 그랬으면 좋겠다. 진짜로!(*람)
날짜: 2023년 10월 12일 목요일
날씨: 아침에도 따뜻했고 점심에도 따뜻했다.
제목: 무서운 대추
4교시가 끝나고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선생님이 대추를 줬다. 밥을 다 먹고 대추를 깨물었는데 갑자기 이가 뿌러진 느낌이 났다. 그래서 빨리 입에 물고 있던 대추를 뺐다. 이가 원래 조금 흔들렸는데 많이 흔들렸다. 이가 아파서 대추를 잘못 씹었다. 이가 흔들린 후부터 대추별명이 생겼다. 바로 '무서운 대추' 무서운 대추가 내 눈 앞에 다시는 안 나타나면 좋겠다. 저녁에 맛있는 김밥도 이가 흔들려서 못 먹었다. 속상했다.(*은)
다음으로 통합교과 가을 활동 중 하지 못했던 가마태우기 활동을 했다. 두 아이가 가마를 만들어 인형을 옮기고 돌아오는 놀이. 교실에서 하는데도 어찌나 열을 내던지. 정말 이 작은 녀석들이 무슨 경쟁심이 그렇게 강한지 모르겠다. 곧바로 남은 시간에는 가을 노래를 함께 불렀다. 오랜 시절 시골학교 4학년 천금선이 썼던 '가을'이라는 시. 여기에 노랫가락을 붙인 백창우의 멋진 음을 덧붙인 곡을 함께 불렀다.
가을 | 천금선
하마 가을이 왔다.
철둑가 코스모스
쫄로리 서서 웃는다.
엄마는 코스모스를 보고
날씨가 추워서 우예 사꼬 한다.
"선생님, 하마가 뭐예요?"
"선생님, 철둑가가 뭐예요?"
"선생님, 우예가 뭐예요?"
"선생님, 사꼬가 뭐예요?"
질문이 많을 나이와 시절의 아이들. 이 아이들도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을까? 질문이 없다는 것. 사는 것에 아무런 질문을 할 게 없다는 것만큼 불행한 것이 있을까?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할 아이들. 지난 2년 내가 만난 6학년 아이들은 질문도 의문도 없었다. 그저 하루를 어떻게 재미나게 놀 것만 생각하고 배우려 하지 않은 아이들이 상당수였다. 그런데 바로 그 아이들도 어릴적은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해대었으리라. 질문을 사라지게 만든 어른과 학교, 교육은 어쩌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질문에 꼬박 꼬박 답을 해주며 나는 이 아이들이 보낼 6년 뒤에도 꼭 질문을 잊지 않고 삶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살아가 주길 바랐다.
*우가 내 곁에 와서 묻는다.
"선생님!"
"선생님도 금요일이 좋다면서요."
"저도 금요일이 좋아요."
"넌 왜?"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할 수 있거든요."
"그렇군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