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9)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_ D-72
날씨가 흐리다. 비가 올 것 같은데... 교실로 들어서니 00가 나에게
"2학년 언니 오빠들이 너무 시끄럽게 해요."
"그렇네. 알았어. 잠깐만."
2학년을 진정 시키고 돌아와 음악을 튼다. 오늘은 유튜브에서 재즈 피아노 선율이 나오는 찾아 틀었다. 교무실에 가서 물을 담아 차를 탔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교실로 들어온다. 이제 이렇게 만나는 풍경도 72일 밖에는 누릴 수 없는 지나가고 또 지나가는 시간이다.
첫 시간은 늘 하던 루틴을 되풀이 오늘도 되풀이 했다. 다른 것도 할 것이 많지만, 이 또래 아이들때 읽고 쓰는 일이 힘들어지면 초등학교 중고학년과 중고등학교에서 개인적인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 사회적으로도 관공서에서 나오는 문서라던지, 각종 매체에서 보이는 글에 대한 비판력을 키우지 못해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다른 것을 조금 미루거나 줄이더라도 이것만큼은 제대로 해서 다음 학년으로 보내려 한다. 오늘도 책 읽고 수첩에 기록하기, 시따라쓰기, 맨 처음 글쓰기로 첫 블록시간을 보냈다. 오늘의 글쓰기 주제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었다. 파생어를 완성했다 싶은데, 한 두 아이가 소리친다.
"선생님, 생각 났어요. 눈이 무너져 내리는 눈사태!"
"그렇네. 산사태랑 비슷한 눈사태."
"또 있어요!"
"뭐?"
"첫눈!"
"와, 맞네. 첫눈을 빼 먹었네."
그러고 보니 첫 눈을 내릴 날도 머지 않은 듯하다. 부쩍 날이 쌀쌀해졌다. 이제 <맨 처음 글쓰기> 공책도 들어서는 것만 같이 하고는 아이들에게 겪은 일 쓰기를 과제로 내주어도 될 만큼 우리 아이들은 시간을 먹고 자랐다. 아침에 일기 한 편도 시간을 먹고 자란 또 다른 아이의 글이었다.
날짜: 2023년 10월 18일 수요일
날씨: 아침에는 그럭저럭 하고 공연이 끝났을 때는 싸늘했다.
제목: 서찰을 전하는 아이
오늘 아침 엄마가 "학교가지 말래?" 하고 물아봤다. *람이는 "싫어!"라고만 대답하고 나는 마지막으로 "오늘은 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보러 간단 말이야!"했다. 그러자 엄마가 "아, 맞다!"하고 바로 일어났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처음에는 흥미진진 하다가 마지막에 녹두장군(전봉준)이 끌려 가는 게 제일 슬펐다. 00는 눈물을 약간 흘렀다. 나는 하품 눈물만 흘렸다.(*빈)
두 번째 블럭 수업에는 최덕규 작가의 <거북아, 뭐하니?>로 시작을 했다.
책 표지부터 속표지를 거쳐 그림책을 만나기까지 아이들은 정말 모두가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이어질 이야기를 추측해가며 함께 웃고 놀라고 신기해 했다. 자존심이 강한 거북이가 뒤집어 진 채 자기 딴에는 꾀를 부려 뒤집어 진 게 바보 같은 상황이 아니라 즐기는 상황임을 증명해 보이려 애쓰지만 뒤집어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 마침내 애걸 복걸 하자 두더지의 도움을 받아 부끄러움을 안고 빠르게 도망친다는 이야기. 오늘은 이야기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갔지만, 다음에는 이 이야기로 어떤 생각들이 떠올랐는지 생각해 보려 한다. 마무리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책만들기도 하면서 세 번째 그림책을 만나려 한다.
이어지는 수업으로는 오랜만에 텃밭을 찾아 심은 무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관찰하려 해려 했다. 나가기 전에 날짜와 관찰할 것을 쓰고 현관 앞에 나가 있으라 했는데, 살짝 걱정했던 비가 마침 내리는 게 아닌가? 아이들은 그래도 나가자 하여 현관 앞에 있는 다른 학년들의 우산을 빌려 들고 쓰고 텃밭으로 갔다. 텃밭에 불편한 우산을 쓰고 앉아 무를 관찰해 그림을 그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자리에 옹기종기 앉아 우산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참으로 귀여운 모습이었다. 더구나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아이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선생님, 비 소리가 너무 좋아요."
"선생님, 비 소리가 무슨 클래식 음악 같아요."
"와, 클래식 음악 같다니.... 정말 멋진 표현이네."
"야, 정말 좋지. 비 소리."
그랬다. 정말 좋았다. 비 내리는 가을날 텃밭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모습. 정말이지 클래식 음악이라도 틀어 놓으면 더할 나위 없는 평화 그 자체로 보였다. 소리는 잘 들리지 않지만,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 놓고 아이들 사이 사이를 돌며 사진도 찍어주었다. 아이들은 2023년 가을이라는 시간을 또 먹으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또 나도 오늘이라는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