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아이들

(2023.10.18.)_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_ D-73

by 박진환

오늘은 천안으로 <서찰을 전하는 아이> 연극 공연을 보러 가는 날. 아침 일찍 출발해서 10시 반에 공연을 시작하고 12시에 마치는 일정이었다. 지난 주 일부 책을 읽어주고 나머지는 줄거리를 얘기해주는 수준에서 이 작품을 만나게 했다. 1학년 아이들이 만나기엔 아직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훌륭한 연극 자체를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90분 내내 집중하는 1학년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다. 아직은 우리편, 내편, 착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구분하여 인물을 바라 보는 수준이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인물의 특징과 성격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니 딱히 지적할 필요는 없었다. 앞선 시절에 우리나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갔는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연극을 6년 내내 즐길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경험이기도 했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연극 봤던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학교로 돌아와 학교 급식을 맛나게 먹으며 수다를 떠는 아이들. 모든 것이 가을풍경과 딱 맞아 떨어지는 시간이고 공간이었다.


마지막 시간마저 없는 하루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아침에 하다만 책읽기와 기록 작업을 마무리 짓게 했다. 나는 그동안 아이들 일기와 <맨 처음 글쓰기> 공책을 살폈다. 아이들 글쓰기 수준은 이제 일정한 지점까지 올라왔다. 이제 어떻게 이 지점을 꾸준히 유지하고 높여 가느냐가 중요한데, 2학년 이후 학교 교육과정과 교사들의 꾸준한 공부와 실천이 동반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어쨌든 우리 학교가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이곳에 내가 있을 때까지 해야 하는 스스로 정한 임무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 일기를 펼치는데, 첫 번째 편 00의 일기가 나를 너무도 놀랍고 기쁘게 했다. 읽기를 너무 잘하던 아이, 하지만 글쓰기가 쉽지 않았던 아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도 그렇고 제한된 시간 안에 과제 해결을 하지 못하고 느린 편에 속했던 00. 이 아이가 너무도 통쾌하고 멋진 글을 써 주었다. 말로는 하지 못했던 걸 글로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너무도 멋진 글이었다.


날짜: 2023년 10월 17일 화요일

날씨: 낮에는 보통이고 저녁에는 쌀쌀하다.

제목: 글쓰기


난 글쓰기가 싫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게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시간이 걸리는 게

“빨리 쓰면 되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빨리 쓰는 게 보통으로 쓰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글쓰기가 어려운 거다.


00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너무도 옳고 맞다. 글쓰기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기란 매우 어렵다. 애초에 쓰기는 사람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월터 옹이 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를 최근 다시 읽고 있다. 10년 전 읽고 나서 큰 감명을 받았더랬는데, 잊혀질만한 지점에 tvn 알쓸별잡 프로그램에 출연한 물리학자 김상욱교수가 이 책을 언급하며 쓰기가 뇌와 사람에게 주는 영향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다시 주목하게 됐다. 문자는 애초에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이 문자를 받아들이고 쓰기를 인간의 세계로 받아들이기까지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다. 구술에서 문자로 읽기에서 쓰기로 이어지면서 사람의 뇌는 비로소 논리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후대에게 문명을 제대로 전수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어린 아이들이 쓰기를 배우는 것은 구술의 세계에 머물러 있던 아이들을 읽기의 세계로 뿐만 아니라 쓰기의 세계로 안내해 비로소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인 것이다. 생각하는 일은 엄청 큰 에너지를 동반하기에 어린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다. 그래서 쓰기 도구를 어느 정도 갖추게 되면 생각으로 가는 길이 쉬워지게 되고 사는 것에 자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단지 입시교육을 위한 쓰기 교육이 아니라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쓰기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오늘 00의 일기 덕분에 다시금 이러한 이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 우리 아이들은 연극이라는 구술의 세게와 문자의 세계를 모두 경험한 날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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