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3.)_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 - 71
"선생님!"
"왜?"
"전 나중에 글 써서 출판사 문을 두드릴 거예요."
"왜?"
"그러면 유명해지잖아요."
"출판사 문을 두드리면 유명해져?"
"네!"
"하하하. 너 요즘 글쓰기를 잘 해서 드는 생각인 거야?"
"네!"
"하하하."
가르치고 배우고 배움에서 기쁨을 얻고 거기서 꿈이 생기고 하고 싶은 게 생기는 거. 이런 과정과 결과가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10여 년 넘게 교육청과 학교, 교사모임과 학자, 교사들이 부르짖던 '배움'이란 걸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단지 칭찬만으로 아이들에게 배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칭찬의 지점에 아이들의 뜻과 하려는 의지, 생각의 지점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단지 글 한 번 잘 썼다고 칭찬 받아서 꿈이 생기지는 않는다.
오늘 00는 그동안 자신이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애를 쓰고 그동안 읽었던 동화나 책에서 감각을 잃지 않고 그대로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글을 써내려가며 자신감과 배움의 가치를 새롭게 깨달은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나 심지어 어른조차 이 과정을 쉬이 밟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단 그 지점을 넘어서면 훨씬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길 바랐다.. 오늘 그런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참 좋았다. 오늘 이 아이의 글은 그래서 더 반가웠고 고마웠다.
날짜: 2023년 10월 22일 일요일
날씨: 보기에는 맑았는데 나가면 조금 덥다.
제목: 저녁은 싫어!
나는 저녁이 싫다. 왜냐하면 저녁은 숙제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맨날 저녁이 도면 "빨리 숙제 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숙제를 한다.
"숙제 빨리하고 놀아."라고 하지만,
"양치해라."
"치실했냐."
"컵에 물 적당히 담아라."
"뽀글 뽀글 골구루 해라."
"불 끄고 물 마셔라."
"쉬 싸라."
"배게 정리해라."
"거실에 불 쁘고 안방도 불 꺼라."
"문 닫아라."
"화장실도 문 닫아라."
"이불 덮어라."
"춥다. 9시다. 얼른 자라."
숙제 덩어리, 잔소리 폭탄... 아니 우리 반 엄00한테도 잔소리를 들었지? 그러니까 메가 잔소리 폭판 덩어리. 이젠 숙제 덩어리에 잔소리 폭탄까지. 나는 하늘을 보며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았다.
"제발 저녁 없는 세상 될 수 있게 해 주세요~"
참 그러고 보니 저녁이 없으면 잠을 못자잖아?
"저 방금 한 말 취소 할 게요."(*우)
이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다들 저마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라는 것 같아서 요즘 정말 기분이 좋다. 크게 떠들기도 하고 장난도 치지만, 우리 아이들이 작정하고 마음 먹으면 한 가지 활동에 몰입하며 일정한 결과를 내 놓는다. 하기 싫고 어렵다는 반응이 앞서던 녀석들이 이제는 다르다. 그만큼 시간을 먹고 자란 탓이 크다. 나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 준 것도 고맙다.
오늘 수업 중 <맨 처음 글쓰기> 첫 단원 '이름씨'도 마무리를 지었다. 이제 내일부터는 '움직씨'로 넘어간다. 파생어에 대한 감각, 단문에서 토씨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익힌 상태라 서술어 부분에 대한 감각까지 익히며 훨씬 아이들의 생각을 글로 쓰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감각의 서술 속에는 삶이 보여야 한다. 삷이 보이는 글이어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 오늘 삶이 보이던 아이들 글 세 편을 더 가져와 본다.
날짜: 2023년 10월 22일 일요일
날씨: 엄청 맑다. 산책하기 좋은 날
제목: 산책
오늘 이모와 산책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이모가 키우는 개와 산책을 했는데 그 개가 사람 나이론 여덟 살인데 개 나이론 마흔 살이다.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산책하는 길에 카페가 있어서 거기로 들어갔다. 근데 개는 출입금지라서 차에다 놓고 왔다. 그런데 목표는 카페 우에 있는 식당이었다. 식당 메뉴는 뭐로 시켰냐면 해산물 토마토 스카게티로 골랐다. 음식을 맛있께 먹고 나왔다. 그리고 산책을 또 하고 집으로 갔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었다. 내가 사달라고 했떤 걸 안 사줬기 때문이다. 그 상품의 이름은 까먹었다.(*후)
날짜: 2023년 10월 22일 일요일
날씨: 낮에는 따뜻했고 저녁에는 별이 없었다.
제목:왕감자
우리 동네에는 나보다 큰 왕감자가 있다. 왕감자는 복슬복슬한 흰 털과 꼬리가 달려있다. 더 신기한 점은 감잔데 나보다 훨씬 크다는 거다. 사실은 왕감자가 아랫집 강아지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감잔데 감자가 커서 나는 왕감자라고 한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강아지는 감자다. 오늘 왕감자가 산책하다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여전히 감자는 컸다. 역시 오늘도 왕감자답게 왔다. 왕감자지만 귀여웠다.(*은)
날짜: 2023년 10월 21일 토요일
날씨: 황금 들판이 보일 정도로 가을이 진~하게 왔다.
제목: 설레임
내가 좋아하는 시은이와 외암마을에 갔다. 냇가가 보이자마자 물에 들어가고 싶었다. 시은이와 둘이 처음으로 냇가가 열려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쿵쿵 뛰고 싶을 만큼 신났다. 고동을 잡았다. 시은이한테 고동 몇 마리를 주었다. 마음이 설레었다. 시은이한테 비밀이다. 그리고 송사리랑 술래잡기를 했다. 물에서 뛰어 놀고 싶었다. 그래서 신발을 벗고 냇가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끼에 미끄러져서
"으악~ 깜짝이야."
라고 했다. 하마터면 못 놀 뻔했다. '하~~~ 다행이다.' 추웠는데 많이 놀고 싶어서 엄마가 "지훈아, 추워?"하고 물을 때 나는 "아니, 안 추워."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외암마을에서 많이 못 놀았다.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훈)
오후 시간은 덧셈과 뺄셈(1)을 마무리 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수학익힘책의 문제와 수학교과서의 문제를 풀고 살피는 과정이었다. 당연히 실수하며 머리를 쥐어 짜는 아이들이 있다. 다 맞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아이들의 눈에는 실망한 눈빛이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다시 하면 되니까. 아이들이 요즘에도 묻는 말, "선생님, 틀려도 돼요?" 그렇다. 당연히 틀려도 된다. 틀리면서 바로 잡고 고쳐 잡고 앞으로 가며 자기 삶을 가꾸고 만들면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