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이니까 참는다

(2023.10.26.)_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65

by 박진환

"가0이 한테 그러지 마세요. 존댓말을 하셔야죠."

"왜?"

"가0이는 여왕이란 말이이에요."

"맞지 맞아. 여왕이지. 반찬투정하는 투정여왕, 불만이 많은 불평여왕."

"아니에요. 으이구. 내가 샘이니까 참는다."


세상에는 참을 일이 참 많다. 한 직장에서 30년 넘게 살다보니 이제 참는 것도 습관적으로 적응될만 한데, 여전히 힘들다. 오늘도 참지 못한 일로 아침부터 꿀꿀했다. 그 꿀꿀함이 살짝 아이들에게도 미친다. 다시 정신차리고 가다듬고 아이들을 본다. 6학년 00가 찾아와 아이들 귀엽다며 한 바퀴 돌며 나간다. 그러고는 한 마디 한다.


"선생님!"

"왜?"

"내년에 꼭 2학년 맡으셔야 해요."

"왜?"

"제가 졸업하면 이 귀엽고 사랑스런 아이들 소식을 못 들으니까요. 특히 ** 소식을 특히 듣고 싶은데 선생님이 2학년을 맡으셔야 저한테 연락을 주시죠."


아이고, 아이고... 오늘도 책 읽고 따라쓰기 하는 루틴을 따랐다. 그리고는 다음주에 우리 교실을 찾을 최덕규선생님의 마지막 작품 <거북아, 어디 가>?를 했다. 이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표지에 주목한다. 표지에서 작가가 던져주는 메시지를 읽어내려 애를 쓴다.


"선생님, 이거 물음표 같은데, 꼬리 같아요."

"맞아, 그게 누구의 꼬리인지 알아보자."

"선생님, 이 책도 이래요. 속표지 제목 앞에 먼저 뭐가 있어요."

"맞아, 우리 영화도 보면 일단 시작하고 나중에 제목이 나오는 경우, 그렇게 해서 영화가 시작되기도 하는데, 이 책이 그런 것 같아."

"지난 번에 거북아, 뭐하니?"도 그랬어요.

"선생님, 속표지 제목 보세요. 똑 같아요."

"맞아, 엊그제 0우가 공룡대백과라고 표지를 그려보는 연습을 해서 선생님에게 보여주기도 했지?"


아이들과 표지 하나 속표지 하나 그림 하나 하나 가지고도 이제 이야기를 할 수 있께 됐다. 아이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소리 높여 외친다. 여전히 그림책을 펴서 글로 먼저 눈이 가는 아이들이 있지만, 조금씩 그림책을 다시 만나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 그림책을 다 읽고 나서 저마다 주인공 거북이에 대한 아쉬움을 말한다. 하지만 그 모습이 자신들 모습과 닮아 있다는 건 잘 읽어내지 못하는 듯하다. 온갖 불평에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거북이의 모습이 자기들 모습인 걸. 하하하.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거북이만 탓하는 녀석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쩌면 나일수도 있다. 책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그래서 쉽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주에는 이 책으로 자신들만의 그림책을 만들 예정이다. 최덕규 작가님을 맞을 소박한 준비이기도 하다. .


오후 시간은 <맨 처음 글쓰기> 움직씨 주제어 '먹다'를 했다. 이제 '먹'을 중심에 두고 파생어를 만들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오늘은 자연스럽게 13가지까지 나왔다. 아울러 '머그니' 처럼 연음현상에 대한 지도를 해주었다. 그냥 '먹'자의 'ㄱ'이 뒤로 이사간다는 개념보다는 소리와 글자가 다르다는 점. 소리로는 이해하는 말이 글자로 만들어지면 글자 자체는 소리가 없기 때문에 때때로 뜻을 나타내는 글자로 쓰여야 하다는 것. 그래서 우리 말에서 이 점이 어렵다는 점을 말로 풀었다. 나름 쉽게 풀려 애를 썼는데, 아이들이 어느 정도 이해했으려나. 앞으로도 두고 두고 다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뒤따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잘 이해해 주었다는 느낌은 들었다.


끝으로 극본읽기. 학급 마무리 잔치 때 하려는 두 편의 낭독극 중에서 예술제에 올릴 한 편을 고를 연습을 해 보았다. 오늘은 처음으로 자기 자리가 아닌 앞으로 나와서 읽어보게 했다. 아직 연습이 부족해서 그렇지 다들 웬만큼은 해주었다. 아이들마다 목소리가 극본과 함께 교실에 펴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첫 번째 두 번째 팀 모두 잘 해주었다. 지금은 그냥 읽는 단계다. 다음주에는 좀 더 소리 높여 리듬을 가지고 상황에 맞게 읽게 하려 한다. 2주 뒤에는 연극강사가 발성연습도 시켜 줄 것이니 거기에 맞게 아이들이 달라져 주길 기대한다. 1학년 아이라면....이라는 것은 없다. 때마다 다른 아이들 상황에 맞고 성장속도에 맞는 지도가 되는 게 우선이다.


글을 마무리 하려는데, 저쪽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 중 **이가 큰 소리로 말하는 게 들린다.

"야, 우리 평생 사마귀 잡고 살자."

요즘 우리 반 아이들 마치 사마귀를 멸종이라도 시킬 것처럼 잡고 다니며 산다. 풀어주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날마다 잡아서 즐기며 산다. 하다하다 나중에 저런 말까지 한다.

에고, 에고... 내가 이런 애들이랑 산다. 정말 내가 선생이니까 참는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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