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_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59
네 번째 1학년을 맡지만, 어린 아이들의 삶을 담은 글을 이렇게 날마다 기대하고 받았던 적이 있었나 할 정도이다. 날마다 평범한 일상에서 보고 듣고 겪은 걸 이렇게 꿈틀꿈틀 살아 있는 글로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열 명 아이들 중 다섯 명은 내 기준 최고의 글을 보여주었다. 다른 아이들의 글도 일반학교 아이들 수준 이상이지만, 오늘 이 다섯 아이들의 글은 더할 나위 없이 나를 흐뭇하게 해주었다.
점심 급식을 먹다가 뜬금없이 날 배불뚝이라고 놀리는 *은이는 1학기만 해도 어떤 표현도 잘 하지 않던 침묵의 아이였다. 지금은 너무도 수다쟁이가 됐다. 나한테도 마찬가지로. 그 아이가 평소에 말하고 생각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어 너무도 좋았다.
날짜:2023년 10월 31일 화요일
날씨: 모르겠다.
제목: 엄마, 아빠 어렸을 때
학교에서 점심 먹을 때 친구들한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 아빠 어렸을 때는 핸드폰 없었대."
그 순간 친구들이 입을 떡 벌리고 숟가락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꽤나 놀란 것 같았따. 선생님은 맞다는 듯 밥만 열심히 먹었다. 역시 선생님은 배불뚝이 일등이다. 누가 가장 밥 많이 먹나 대회에서 금메달 딸 거 같다. 아니 어쨌든 친구들이 놀란 표정이었다. (*은)
*현이가 화장실에서 똥 싸는 시간을 짧게 느끼게 만드는 젓가락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마구 상상하게 만들어 준다.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하지만 이렇게 1학년이 그것을 붙잡아 재미나게 글을 써주니 너무도 기특하다.
날짜: 2023년 10월 31일 화요일
날씨: 오늘 따듯해서 기분이 딱 좋았다.
제목: 똥 싸는 시간
응가를 싸러 갔다. 안방 화장실을 썼다. 내가 비데 물티슈를 빼고 응가를 쌌다. 똥쌀 때 젓가락 게임을 했다. 나혼자 말이다. 혼자할 때 왼쪽 팀이 이겼다. 오른쪽 팀도 몇 번 이겼다. 똥쌀 때 젓가락 게임을 하는 건 최고다. 똥 싸는 시간이 금방 간다.(*현)
어제 이 하나 흔들린 것으로 우리 반 모두의 시선과 관심을 끌게 했던 아이. 기여코 이가 빠져 시원해 했던 아이. 그 아이가 그것을 잊지 않고 글로 써 주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 글을 쓰는 일을 우리 아이들은 일찍부터 잘 해주고 있다.
날짜: 2023년 10월 31일 화요일
날씨: 나한테 추웠다.
제목: 이 빠진 날
오늘 급식으로 LA갈비가 나왔다. 나는 LA 갈비에 뼈까지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툭!"하는 소리와 함께 이가 털컥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학교에 와서 보건실에 갔다. 나는 보건실에서 이빨을 안 빼고 싶었다. 그런데 가영이가 빼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수업해야 돼가지고 이빨을 못 뺐다. 내가 수업할 때 이를 자꾸 만져 가지고 "특"하는 소리와 함께 이가 빠졌다.빠지는 순간 느낌이 놀랐다. 흔들린지 오래 됐다. 오늘 빼니 시원했다. 혼자 이를 빼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다고 치카 안 하면 안 되지. 내 이는 소중하니까!(*아)
만날 귀여운 짓을 한 없이 해대는 *훈이. 자기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을 어려워 하는 아이. 늦잠으로 늘 학교 1-2교시를 멍 때리며 흐릿한 정신으로 보내는 아이. 그래서 학교에서 글을 쓸 때는 힘도 내용도 약했던 아이. 그런 아이가 집에서 쓰는 글은 더할 나위 없이 자신의 기질을 잘 드러내는 글을 써 준다. 정말 *훈이다운 글이다.
날짜: 2023년 10월 31일 화요일
날씨: 따뜻한 햇살이 내 추위를 가져갔다.
제목: 앗! 따끔!
아빠가 일을 안 하고 일찍 피아노 학원 앞으로 데릴러 왔다. 아빠가 반가웠지만 두려움이 몰려왔다. 주사를 맞는 날이기 때문이다. 내 피부가 악어처럼 딱딱했으면 좋겠다. 주사 바늘이 튕겨 나갈 것 같다. 주사가 무서워서 의사 선생님이 무서운 늑대처럼 보였다. 주사 바늘이 내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앗, 따끔! 어? 별로 아프지 않네?' 내가 주사 맞기 전에 소리 질른 건 비밀이다. 난 씩씩한 **훈이니까.(*훈)
우리 반 일기쓰기로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우는 오늘도 멋진 글을 써주었다. 평소에도 재치있고 기발한 생각과 말을 해주는데, 그런 모습이 글에도 너무도 잘 담겨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글을 쓰기 정말 어려운데, 어른도 어려운 일을 *우는 너무도 편하게 잘 해주고 있다. 물론 이렇게까지 하는데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긴 했다. 그 시간도 줄어들고 어느덧 글쓰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날짜: 2023년 10월 31일 화요일
날씨: 아침예는 쌀쌀했다. 점심에는 딱 좋았는데 점점 더워졌다.
제목: 오줌데이
오늘 하교할 때 **석이 내리고 차량선생님이 귤을 주셨다. 나는 귤을 먹었는데 귤에 수분이 많았나 본데 오줌이 갑자기 마려워졌다. 나는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네.' 라고 생각하고 꾸~~욱 참았다. 그런데 갑자기 오줌이 엄청 마려웠다. 버스에서 내리고 엄마에게 말했따.
"엄마, 나 오줌 급해."
"그래? 그럼 뛰자."
"안돼! 그러면 오줌이 나오잖아."
나는 관리 사무소 화장실에서 오줌을 쌌다. 속이 시원했고 내 오줌이 탱크 미사일 같았다. 오늘 오줌을 1,2,3...일곱번을 쌌다. 오늘은 할러윈데이가 아니로 오줌데이 같다. 오늘보다 오줌을 많이 싼 날은 없을 거다. 크크크~~(*우)
이렇게 아이들 글로 시작을 했던 하루. 북스타트 아침 활동과 시 따라쓰기 이후에 오랜만에 <맨 처음 글쓰기>를 해 보았다. 오늘의 주제어 움직씨는 '보다'. 이 주제어의 파생어를 발견하고 이내 '보다'를 주제로 재미난 이야기를 써 주는 아이들. 하나의 주제어로 일주일을 거쳐야 했던 아이들이 이제 한 시간 정도면 해내는 아이가 있고 두 시간이면 충분히 해내는 아이들이 돼 주었다. 누구나 하는 만큼 늘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다. 더구나 즐겁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데, 우리 아이들이 그걸 해내고 있어 그저 대견하고 가르치는 보람이 있다.
다음 시간은 내일 최덕규 작가님을 초대해 우리 교실에서 거산 독서 한마당을 펼치는 준비를 해보았다. 월요일에는 <거북아, 뭐하니?>로 책등팝업을 했고 오늘은 <거북아, 어디가?>로 무대 팝업을 만들어 보았다. 처음에 한 번 해 보았다고 정말 이걸 해낸다. 만드는 방식은 똑 같다. 책 등 팝업 형식으로 붙이고 뒤집어 무대를 배경으로 주인공 거북이가 튀어나오게 하는 팝업북. 아이들은 만들면서 되게 신기해 한다. 다 만들고 난 뒤 무대 바닥에 느낌과 생각을 쓰고 인상 깊은 문장도 써 보게 했다. 그러면서 이 책의 내용을 다시 돌아보며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11월 첫날은 이렇게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의 보람을 느끼던 하루였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