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는 무게

(2023.11.3.)_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57

by 박진환

"자, 오늘은 246번째 우리가 만난 날. **이가 돌을 넣어줄래?"

"자, 그런데 이 숫자를 보니 어떤 특징이 있는 것 같아?"

"두개씩 올라가고 있어요."

"아, 맞다 짝수예요."

"맞아, 딩동댕."

"오늘은 3일이고 11월이까 홀수날이다."

"그것도 맞는 말이네."

"우리가 헤어지기 전 57일에서 57은 홀수예요."

"야, 이제 우리 1학년 똑똑해졌네. 홀수짝수도 다 알고."

"근데 선생님, 저거 들어봐도 돼요?'

"뭐"

"우리가 돌 넣는 통이요."

"왜?"

"얼마나 무거운지 들어보고 싶어서요."

"그래? 어디 볼까? 야, 무겁다. 무거워. 246개의 돌이 들어 가 있으니."

"저도요!"

"저도 들어 볼래요!"


어느새 아이들이 앞으로 나와 우리가 만난 걸 기념하며 하루에 하나씩 넣었던 마노자갈 통을 서로 들어보고 싶어 난리통이 됐다. 무겁다며 난리다. 문득 시간의 무게라는 말이 떠올랐다. 246일 살아온 만큼 마노자갈 통은 쌓여갔고 그 통속에 들어간 돌만큼이나 시간이 쌓이고 쌓인 시간만큼이나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자랐다.


글자를 읽는 것도 서툴렀던 아이들이 이제 제법 글밥이 많은 책도 술술 읽어 나간다. 글 한 편 쓰는 게 어려워 끙끙 앓던 녀석들이 이제 제법 자기 생각과 삶을 글로 잘도 써낸다. 1학기만해도 입을 닫고 말도 잘 안 하던 녀석은 이제 거침없이 자기 생각과 의견을 말하고 표현한다. 모두가 시간이 준 힘이고 시간이 준 무게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똑 같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가 관건이기는 하겠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시간은 차곡차곡 쌓아가는 집의 벽돌 같다.


어떻게 쌓는냐에 따라 집의 모양새가 달라지고 똑같은 시간에 어느 정도의 집중력과 몰입으로 쌓느냐에 따라 집을 완성하는 지점이 달라진다.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얼만큼의 시간으로 무엇을 어떻게 배우게 할 것인지에 따라 아이들의 성장과정과 속도, 결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그 변화의 시점에 나는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라고 표현을 하며 몸이 건강한 아이들의 모습을 상정해 둔다.


자유롭게 경험만 많이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는 걸 지난 내 아이를 보며 알았고 내가 아이가 다닌 대안학교의 아이들을 보며 확신을 해고 내가 다닌 교직 30년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학교라는 곳이 온갖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의 집합체이고 자기 새끼 지상주의에서 못 벗어난 부모들의 욕망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학교에는 교육적 논리와 과학적 접근을 가로막는 저해요소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이다. 이걸 깨뜨리지 않고는 변화와 혁신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래서 요즘 더욱 희망을 부르짖기가 어려운 시절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첫 수업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텃밭으로 나갔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떨어진 길바닥을 걷는 풍경이라니. 나를 따라오던 아이들 뒤편에서 귀여운 말들이 쏟아진다.


"야, 노랑색 길이야."

"야, 노랑색 물감이 풀어진 것 같아."

"야, 똥색이다. 똥색!"

"야~ 선생님....00가 또 똥이야기 해요."


그렇게 텃밭으로 나간 아이들에게 60일이라는 시간동안 자란 무를 관찰하게 했다. 60일이가는 시간의 무게는 그 작고 작았던 개미 크기만한 씨를 커다란 무로 자라게 했다. 아이들은 텃밭에 무를 보자마자 "와~~~~"를 외친다. 그동안 지나치며 살짝살짝 보기만 했지 오늘처럼 자세하게 보지는 않았기 때문인 듯 했다.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무를 관찰했다. 무성한 무청 아래로 불쑥 올라온 무를 관찰하며 신기해 하는 아이들. 그것을 그대로 그림으로 그린 아이들. 그림을 그리다 아이들은 엉덩이가 아프다며 평상에서 글을 쓰면 안 되겠냐 했다. 그러라 했더니 마구 달려간다.


그러다 잠시 뒤. 아이들의 환호성이 떠졌다. 무언가 했더니 커다란 학교 은행나무에서 은행잎들이 바람에 흔들려 마치 비오듯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올린 듯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폴짝폴짝 뛰며 은행잎을 반기는 아이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이라는 시간의 무게는 노랑잎으로 우리 아이들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오늘은 새삼 시간의 흐름과 무게를 생각해 보는 찰나가 순간순간 자주 일어났던 날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과 남은 57일의 시간을 알뜰쌀뜰 챙겨가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진 11월 늦가을의 우리 새싹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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