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그랬냐는듯

(2023.11.6.)_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54

by 박진환

오늘은 제목을 '언제 그랬냐는 듯'으로 달았다. 아이들은 늘 내 잔소리를 들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는데, 오늘도 어김없었기에 붙여 보았다. 1학년과 11월 사는 일만큼 힘들 때까 있을까? 이제 어느 정도 학교와 학급생활에 적응을 한 아이들. 교사는 12월로 향하는 지점에서 지쳐 가는데, 녀석들은 더 힘을 내기 시작하는 시점. 교사의 목소리는 높아가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은 어느새부턴가 담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게 11월이다. 13명 아이들이고 그동안 잘 지내왔기에 걱정은 안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이 녀석들도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였다.


국어 시간에는 오랜만에 <맨 처음 글쓰기> 움직씨편, '듣다'를 했다. '듣다'의 파생어를 이제는 쉽게도 꺼내는 아이들. 단문을 연습하고 띄어쓰기 확인 뒤 곧바로 이어지는 '듣다'로 ㅆ는 글쓰기. 글쓰기의 시작은 듣기였고 말하기였다. 그리고 읽기로 드러나고 그 다음이 쓰기다. 따라서 쓰기를 위해서는 듣고 말하는 것이 반드시 앞서야 한다. 쓰기를 단순히 쓰기 영역에 한정 짓는 것만큼 큰 오류는 없다.


아이들과 오늘의 주제어 '듣다'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면 글쓰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어려움없이 주제와 관계 있는 글을 쓴다. 오늘 **안이의 글이 그랬다. 읽고 쓰는 것보다 말이 앞섰던 아이. 이제 제법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이 자신에게 주는 기쁨을 맛보기 시작했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엄청 틀리던 모습도 이제 훨씬 줄었다. **안이의 마지막 말 '듣기 좋았다'는 말이 나는 참 보기 좋았다. 내 마음을 울렸다.


학교에 갔다 집에 와서 일기를 쓰는데 엄마가 나보고 일기를 잘 쓴다고 해서 듣기 좋았다. 나는 내가 일기를 못 쓴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내가 잘 쓰는 걸 알았다.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너 나이 때 이렇게 잘 써본 적이 없어."

"그래?"


나는 엄마가 신기했다.


"너 그거면 완전 잘 쓴 거야."


또 한 번 듣기 좋았다. 다 써서 책가방에 넣으려 하는데 엄마가 갑자기 일기를 본다고 해서 보여줬다. 엄마가 다 보고 나서 나한테 말했다.


"너, 진짜 잘 썼어."


듣기 좋았다.(거산초 1학년 **안)



이어진 수학시간. 오늘 수학은 덧셈과 뺄셈(2). 세 수의 덧셈과 뺄셈을 익히는 시간이다. 조작활동을 위해 수세기 칩을 준비하고 색연필로 수학나라 공책에 기록하며 구체적 조작에 이은 그림....그리고 추상의 가정을 차근차근 다시 밟으려 했다. 책상을 큰 것을 사서 했지만, 아직 우리 아이들이 정리해 가며 수업에 임하기에는 서툴고 시야가 좁다. 습관도 아직 들이지 못한 탓에 어지러워 보였지만, 그럼에도 내가 안내해준 길을 잘 따라주는 편이었다. 이따금 집중력을 놓치고 딴짓을 하는 아이들때문에 잔소리를 해야 했다. 뒤늦게 입이 아프도록 주절거리며 나는 오늘 수업을 안내했다. 몇몇 녀석들에게는 좀 더 큰 소리를 냈는데, 이내 미안해서 다시 돌아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딴 짓을 하거나 웃고 있다. 에고 에고....


두 수를 더하여 또 한 수를 더해 세수의 덧셈을 완성해 가는 첫 시간. 제일 큰 수에서 한 수를 뺀 답으로 또 다른 수를 하나 떠 나가는 세수이 뺄셈 과정을 아이들은 조작물과 그림, 문제로 계속 반복하여 익혀 나갔다. 속도의 차이가 있고 집중력의 차이가 있었지만 나의 부지런함과 잔소리 덕에 꾸역꾸역 오늘의 목표로 다가갈 수 있었다. 오늘 점심을 먹고 난 뒤, 한 아이가 울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가 한 말 때문이었는데, 나중에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지낸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처럼 살면 어떨까 싶다. 다툼이 없는 세상이 어딨고 미움이 없는 세상이 어딨겠냐 말이다. 싸우고 다투고 미워하다가도 우리는 결국 살아가기에 툴툴 털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퍼부은 내가 참으로 못나 보이는 날이기도 했다.


그래 그러자, 나도 언제 그랬냐는듯 오늘도 그렇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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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11월 4일 토요일

날씨: 낙엽비가 우수수 떨어진 날

제목: 엄마를 화나게 하는 방법


전화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엄마를 화나게 하는 10가지 방법' 책을 읽어 달라고 했다.


"엄마가 전화 끝나고 읽어줄게."

"지금 읽어 줘, 지금 읽어 줘...."


징징대듯이 계속 엄마에게 졸랐다.


"엄마가 전화 다 하고 읽어준다고 했지? 기다려!"


엄마가 화를 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는데도 엄마를 화내게 하는데 성공했다.

'엄마를 화나게 하는 10가지 방법'을 보니 우리 엄마가 괴물이 된 이유를 알것 같았다. 내가 집을 어지렵혀서 정글을 만들었다. 난 정글탐험가가 된다. 탐험을 하면서 집안 구석구석에 내 흔적을 남긴다. 탐험하느라 바빠서 엄마 말도 듣지 않고 늦게 잔다. 지금 일기를 쓰면서도


"엄마 물 마시고 올게."

"엄마, 레고 한 번만 보고 올게."

"(내가 잠옷 속에 들어가며서) 엄마 나 달팽이 껍질 속에 들어갔어."

"엄마... 잠깐만..."을 계속 말하니까 엄마가 더 무서운 괴물이 되었다.(거산초 1학년 황**)


날짜: 2023년 11월 5일 일요일

날씨: 아침에 햇빛이 살짝, 비췄고 저녁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제목: 아빠 생일


오늘은 음력으로 아빠생신이다. 아빠생신이 음력이어서 매년 아빠 생신이 바뀐다. 그래서 매년 아빠 생신을 까먹는다. 아빠생신을 양력으로 바꾸면 맨날 기억할 수 있는데 하필이면 아빠가 생신을 음력으로 해서 매년 까먹게 됐다. 아빠한테 당장 생신을 양력으로 바꾸라고 큰소리로 말하고 싶다. 아빠 생신카드도 썼다. 아빠 생신카드에 아빠 생신 좀 양력으로 바꾸라고 쓸 걸 그랬다. 다음에는 꼭 아빠 생신 카드에 양력으로 바꾸라고 쓸 거다. (거산초 1학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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