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8.)_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32
오늘도 미리 잡혀 있던 연극시간을 잊고 책읽기를 하다 서둘러 접어야 했다. 요즘 닥치는 일들 속에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나이가 들수록 멀티를 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정말 이제 끝자락에 온 걸까. 8년이나 남았으나 아마도 절반도 채 되지 못해 난 소진되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가까운 40대 젊은 교사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했다. 감정노동과 많은 업무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강건할 것 같던 학교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 하고 수업만 하는 것도 힘든 교사들에게 부여되고 요구받는 일은 너무도 많다. 속살을 들여다 보면 결국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거나 눈에 띄는 일을 맞춰 하려다 시간만 보내고 소진되는 경우는 너무도 많이 본다. 이래서 교육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 몫으로 남는다.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혁신교육은 결국 실패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어쨌든 살 수 있을만큼 버티고 살아야 한다.
연극수업에 전문강사가 들어오지만, 1학년 아이들은 그가 담임이 아닌 걸 안다. 그래서 함부로 대하거나 말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잘 못 느낄 것이다. 느슨한 빈틈을 비집고 분출하고 싶은 감정을 때맞춰 쏟아내기 시작한 아이들 때문에 연극강사분은 힘들어하고 목소리가 높아진다. 곁에서 나도 거들며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빚어졌다. 오늘 우리 반 아이들은 <목기린씨, 타세요!>라는 온작품을 읽고 간단한 평을 나누었다. 거기서 작가의 의도를, 작가가 책을 만든 이유를 생각해보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랬더니 꽤 많은 아이들인 배려와 차이, 차별에 대한 용어를 꺼냈다. 그걸 자기 삶과 견주어 이야기를 끌어갔더니 멋적게 웃는 표정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책과 내 삶을 견주어 보는 것은 책을 읽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타인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갈 세상에서 내가 누구이고 난 어디에 누구랑 함께 사는지를 아는 것은 어른으로 자라는 길목에서 늘 살펴봐야 할 일이다. 서울대학 의대 졸업을 앞두고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게 무언지를 모르겠다며 지도교수를 찾아왔다는 얘기들은 숱하게 많이 듣는 이야기다.
책 읽는다는 것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배움의 과정 중 하나이다. 이 과정에서 읽는 법, 쓰는 법, 생각하는 법, 자기를 돌아보는 법을 익히게 된다. 이 과정이 1학년에게는 당연히 쉽지 않다. 힘들다. 그래서 아이들은 요리조리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멍 때리고 있던가, 아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던가, 아님 힘들다고 아우성을 친다. 하지만 어느 지점까지는 가는 경험도 해 보아야 한다. 끝까지 갈 데까지도 가봐야 한다. 거기서 드는 생각과 경험이 아이들을 성장시킨다. 생각만이 아니라 30년 넘게 교직생황을 해 온 나의 경험이 그렇다.
연극시간 다음으로는 온작품 <목기린씨, 타세요!>로 주요인물의 말과 행동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을 찾고 그것에 관해 말해보고 책을 만들어보는 과정을 거쳤다. 어떤 아이들은 짧은 생각을 어떤 아이들에게는 편지도 써보게 했다.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나는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을 날마다 쓰는 일기에 비유해 주었다. 일기처럼 쓰라고. 책을 읽는 경험을 쓰는 것도 일기 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일단 시작은 이래야 한다. 모든 글의 출발은 서사문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끝까지 가주었다. 기쁨의 미소를 짓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됐다. 이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