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7)
오늘도 교실에 들어서자 어제 조용했던 00가 혼자 교실에서 서성 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책을 권했더니 내가 오기 전에 벌써 봤단다. 그러냐 했더니 뒤이어 쌍둥이 둘이 들어와 칠판놀이를 시작하자 덩달아 같이 움직이며 힘을 냈다. 내 이름으로 놀기 시작하는데, 자기들끼리 웃고 난리다. 이후 아이들이 교실로 밀려들고 나는 또 장난을 쳤다.
"어제 선생님 보고 싶어서 밤새 울고 그랬죠."
"아니요, 난 안 울었어요~~~~"
"아냐, 거짓말 하지마. 어제 아마 엄청 울었을 거야."
"아니라니까요?"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장난에 아이들이 달려드는 형국이라 못 이기는 척 하고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기지개도 펴고 노래도 부르고 옛이야기도 들어주었다. 오늘은 '하루사이에 백발'이라는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백발'이라는 말 자체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면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무서운 이야기였지만, 하루 사이에 엄청난 경험을 하면서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 이야기를 맺으면서 한 마디 던졌다.
"너희들도 선생님 힘들게 하면 하얀 멀리가 자꾸 생겨. 그러니 선생님 말 잘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그랬더니 말은 다 그렇겠다고 하는데, 오늘 하루 종일 아이들이 아주 빨리 제 발톱을 들어내서 입학식 이후로 처음으로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가 높아진 하루였다. 했던 말 또 하게 만드는 1학년의 전형을 오늘 제대로 보여주었는데, 그 발톱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제 그 녀석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오늘 첫시간은 아이들과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학교일을 하시는 분들을 만나 인사 드리고 각각의 위치를 알고자 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2학년 교실을 스쳐 유치원 교실로 가서 다시 교무실로 들어갔다. 교무실에서 교감, 교무, 보건, 행정주무관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워낙 작고 귀여운 녀석들이라 환대를 받는 것은 기본이었다. 우유냉장과 확인과 쓰레기 버리는 곳을 확인시키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서는 교장선생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고 3학년에서 6학년까지 거치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나중에 모듈러 공간에 가서 과학실을 둘러보고 행정실에서 실장님 계장님의 얼굴을 익히는 것으로 일정을 마쳤다. 다시 돌아와 교실에서 보고 난 인상을 이야기 하고는 퀴즈를 내어 장소와 일하시는 분들의 이름을 맞히게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단번에 할 수 없는 과정이라 다음주에 한 번 더 할까 생각 중인데, 웬만한 건 아이들이 빨리 습득해기도 하고 작고 좁은 학교라 심부름이나 일상에서 자주 만나고 겪게 하는 것으로 대신해도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중간놀이 시간에는 어제 약속한 팝콘을 튀겨 주었다. 지난해 6학년 행사 때문에 준비한 팝콘 기계로 튀겨 준 팝콘은 온 학교를 감싸 난리도 아니었다. 짐작은 했지만, 눈치 보이며 만들어낸 팝콘으로 우리 아이들은 한동안 행복했다. 팝콘 기계에서 튀겨 나온 팝콘을 지켜보며 정말 멋잇다는 표현을 쓰는 규0이 같은 아이도 있고 재밌다며 팝멍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냥 재미였다. 하루를 보내는 또 다른 재미. 이후로는 각자 자기 이름을 자기가 직접 만든 삼각대에 적는 활동을 했다. 생각보다는 삼등분의 비율을 잘 맞추어 접었다. 결국 만들어잰 명패는 귀여웠고 그 아이를 닮은 듯했다.
점심식사 뒤로 5교시에는 두 가지 게임으로 친구이름 익히고 맞히기 놀이를 했다. 첫 번째 놀이는 00 뒤에 00. 00옆에 00 이런 식으로 13명 모든 아이들의 이름을 이어가며 맞히는 놀이였다. 결국 다 맞힌 아이는 3-4명 정도였다. 아직 친구들에게 익숙해지지 않은 시점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게임은 검은 막을 사이로 두 팀으로 나눠 한 명씩 일어나 서로 마주 보자마자 상대방의 이름을 맞히는 놀이였는데, 이 또한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듯한 아이들이 많았다. 다들 흥미롭고 재미있어 했지만, 원활하게 이어가지는 못했다. 이번 주에 이 두 가지 놀이를 번갈아 해가며 친구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알아가는 한 주로 삼고자 했다.
그렇게 단체 사진 한 장을 찍고 6일째를 기념하는 마노자갈을 투명한 통에 넣고는 하루를 마감했다. 수업을 마친 뒤로 교무실에서 연락이 온 일을 마무리 할 즈음...규0이 녀석은 내게로 몰래 다가와 확 하고 나를 놀래켰다. 내가 놀라지 않자 머쓱한 듯 특유의 기절할 미소를 보여주고는 교실 밖으로 나간다. 일을 마치고 교무실로 가서 교감샘에게 알리러 가자 뒤따라 들어온 몇몇 아이들이 나한테 줄 간식 빵을 들고 들어와 먹으라고 한다. 6학년 때는 맛보지 못한 감동이었다. 역시 나를 알아주는 아이들은 1학년 아이들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돌봄시간 쉬는 시간에 다시 교실로 들어가 작업할 게 있어 들어갔는데, 효0이가 사브작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선생님, 책 읽어주세요."
효0이는 아직 한글을 채다 익히지 못한 아이다. 그런 효0이가 내게 다가와 책을 읽어달라니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래, 와~ 효0이가 책을 읽어달라니 읽어주어야겠다. 저쪽에서 책 하나 가지고 올래?"
기쁜 듯 통통 뛰어가던 효0이가 글밥이 많은 동화 쪽에서 서성이길래. 그림책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거기 말고 이쪽 그림책에서 한 권 골라 볼래?"
그리고는 그림책 <까만 크레파스>를 가지고 왔다. 효0이에게는 딱 맞는 그림책이었다. 어쩜 이런 책을 골랐을까 싶어 의자를 끌어와 옆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려 했다. 그때 마침 가0이가 샘을 내듯 다가와 자기도 함께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림책 보여주기를 시작했다. 이 그림책은 크레파스 통에 갇혀 있던 여러 색 크레파스들이 뛰쳐 나와 도화지에 꽃과 이파리, 땅과 하늘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까만 크레파스는 따돌림을 받기 시작했고 곁에 있던 샤프가 와서 다독이며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는 다른 크레파스 친구들이 욕심을 내어 서로 더 많이 그림을 그리다가 도화지 그림이 엉망으로 그려지는 상황이 됐다. 그때 샤프가 까만 크레파스에게 저 공간에 가서 까만색으로 다 칠해버리라는 조언을 하고 까만 크레파스는 용기를 내어 망가진 그림 위를 자신의 몸이 다 닳도록 새까맣게 칠을 한다. 원망하는 다른 크레파스 친구들 뒤로 샤프가 나타나 날카로운 촉으로 마치 불꽃놀이를 연상한 듯한 무늬를 도화지를 긁어대며 만들어낸다. 그제야 비로소 까만 크레파스의 가치를 깨닫고 서로가 함께 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는 이야기.
"이게 무슨 글자일까? 읽어볼래?"
"...."
"이거는 까라고 해. 따라 해볼래? 까."
"까. 이건 알겠어요. 망."
"와 알아챘네. 비슷했어. 이 글자는 '만'이야."
"까만 크레파스라는 그림책인데, 뭐가 보이니."
"노랑, 파랑, 크레파스가 보여요."
"그렇지..."
하며 함께 그림책을 읽는데, 그때 또 한 아이. 지0이가 등장을 했다. 마냥 서서 지켜 보길래. 그렇게 있지 말고 함께 보자고 했다. 그렇게 함께 다 읽은 아이들에게 제안을 했다.
"이제 너희들도 한 번 그려 볼래."
"뭐로요?'
"너희들 가지고 있는 크레파스 있잖아. 집에서 가지고 온 거."
"아~ 종이는요?"
"그건 선생님이 줄게."
그렇게 세 아이는 각자 그림책으로 만난 그림을 자기 나름대로 그리기 시작했다. 지0이는 책의 내용처럼 까맣게 칠해 긁어내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책을 읽어 주면 좋겠다고 나타난 효0이에서부터 시작해 가0이, 지0이까지 이어진 상황이 각자 한 편의 그림까지 만들어낸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 난 참 좋았다. 이렇게 모든 공부와 수업이 자연스러우면 얼마나 좋을까. 올해 내가 이런 상황을 만들어내는 수업을 자주 만들 수 있도록 기획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6일째 되는 날. 생각보다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떤 지점에서 보완을 해야 하고 어떤 지점은 더 유심히 관찰해야 하고 어떤 점은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보인다. 아직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을 불편해 하는 아이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허리가 굽어지고 옆으로 누어 있거나 의자 뒤편으로 눕듯이 자세를 취한 아이들도 보인다. 마냥 그렇게만 놔둘 수 없어 교정을 해 가며 시간을 보내는데, 이런 과정이 한 달은 더 이어져야 겨우 자리에 앉아 수업을 하는 게 익숙해져 갈 것이다. 아이들이 이 불편함을 부디 잘 이겨내길 바랄 뿐이다. 이렇게 하루도 마감을 했다. 날씨가 부쩍 따듯하다. 낮에는 마치 초여름 같다. 막 몸으로 뛰던 아이들은 덥다고 난리다. 모든 게 자리 잡아 가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믿음, 노력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