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 지는 것을 넘어서길 바라며

(2023.03.08)

by 박진환

오늘운 아침 일찍 만난 세 아이랑 책을 읽었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으로 만든 퍼즐조각 맞히기 판을 시*이가 가지고 놀 수 없냐 물었다. 그래서 그 퍼즐이 있는 책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를 읽으면 해주겠다 하니 그러자 한다. 그래서 책을 읽어 주려하자 다른 아이 두 녀석도 함께 달려 들었다. 그렇게 아침에 아이 셋이랑 책을 가지고 서로 소통을 했다. 참 좋았다. 정말 좋았다.


"선생님, 오늘 둔갑해주세요."

"맞아요. 변신해 주세요."

"선생님, 저 안 웃을라고 먼저 울어버리는 연습했어요."

"저도 안 웃을 자신 있어요. 해주세요."


변신하고 둔갑하는 마법을 가지고 있는 154세 도사라 뻥친 댓가를 요즘 톡톡히 보고 있다. 내가 도사라는 게 안 믿겨지고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지만, 딱히 거짓말 같지도 않아서 계속 요구를 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 앞에서 웃기는 도술 시범은 아마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오늘 첫 시간은 약속을 지키자는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담긴 내용으로 시작을 했다. 교과서대로 하면 나무도 만들어야 하고 딱히 무엇을 약속하자는게 잘 다가오지 않아 참고는 하되, 적당히 내용을 바꾸어 보았다.


그래서 만든 게 손바닥에 우리들이 만든 약속을 붙이고 서로 확인하고 마음을 다지는 정도로 마무리를 지었다. 손바닥을 대고 색연필로 그리는 게 처음에는 낯선지 주저하던 아이들도 이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의외로 그림 그리기에 자신이 없거나 못한다는 말을 곧잘 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차츰 차츰 자신감이 없는 말수가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만든 손바닥 약속을 칠판에 붙이고 약속을 확인했다. 적어도 자신이 만든 손박닥의 약속은 지키자고 확인을 하고 또 확인했다.


오늘은 중간놀이 시간이 딱히 없는 시간이라 고만큼 정리하고 다음시간을 준비했다. 다음 시간은 운동장 놀이시간이었다. 학교 운동장이 공사 중으로 극히 일부만 이용할 수 있어 운신의 폭이 넓지 않지만, 그렇다고 교실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준비한 놀이는 1학년 아이들이 가장 많이 즐긴다는 '달팽이 놀이'였다. 교실에서 충분히 설명한 뒤에 교실 밖으로 나섰다. 몇몇 아이들은 이 과정을 알고 있기에 좀 더 쉽게 놀이가 이어질 수 있겠다 싶었다.


먼저 놀이터로 아이들을 보내놓고 나는 새롭게 들어온 콘테이너에 가서 라인기를 꺼내 운동장 한쪽에 줄을 그었다. 달팽이 놀이를 할 수 있는 선을 그은 뒤에는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잔뜩 기대에 부푼 아이들이 남녀로 나뉘어 놀이를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남자아이들의 승부가 이어지고 나중에는 섞어서 놀이를 했는데, 그것도 한 쪽이 일방적으로 승부가 이어졌다. 그러자 몇몇 여자 아이들이 놀이하는 내내 지기만 했다는 것 때문에 오늘 달팽이 놀이는 하나도 재미없었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신나게 놀아놓고 단지 졌다는 이유만으로 재미가 없다는 아이들.


이 놀이가 이기고 지는 경기가 아니라, 규칙을 지키며 놀이에 참가하며 즐기는데 있다고는 하지만, 어릴 수록 승부에 집착하고 승부에 열의를 보이는 경향은 한결 같다. 이런 성향을 누그러뜨리고 져도 즐거울 수 있고 꼭 이기지 않더라도 과정을 즐기는 법을 터득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을 바꾸는 시간이 필요하고 어른들과 본인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오늘 나는 어쩌면 정말 재미있는 놀이를 누군가에게는 정말 재미없는 놀이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본다.


오늘 점심시간은 처음으로 1학년 아이들 스스로가 밥을 받아 교실로 들어오는 것을 직접 해 보는 날이었다. 가기 전 음식을 받기 전 인사와 받고 난 뒤에 인사를 여러번 했다. 지난 2년 6학년을 지내면서 이곳 고학년 아이들의 가장 큰 아쉬움이 바로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에의였다. 자유롭게 자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예의는 어릴 적부터 몸에 베이게 하고 익숙해지고 당연한 것이라 여기게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어서 앞으로도 게속 연습을 시킬 작정이다. 다행이도 아이들이 가르쳐 준대로 잘 따라주어 고마웠다.


마지막 5교시는 오늘부터 시작하는 '선그림' 그리기. 지난해 우연히 알게 된, 발도르프 공부를 하신 분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작은 배의 여행'이라는 선 그림책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가 있는 선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시간. 사각 밀랍 크레용을 사용하기에 아직은 서툰 아이들이었지만, 첫 시간 치고는 그런대로 아이들이 그림을 그려 준 것 같았다. 규*이가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하니 어려웠다며, 그래도 재밌었다고 했다. 내일부터 꾸준히 2주간에 걸쳐 이야기와 선으로 하나가 되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 오늘은 어제와 달랐고 어제보다 오늘은 좀 더 나은 하루였다. 이것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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