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받는 기분이 들었던 날

(2023.03.09)

by 박진환

옛이야기 '금달걀을 낳는 암닭' 으로 시작한 하루. 오늘은 수업꼭지마다 이야기가 있었고 좀 더 달라질 거라는 희망도 보였다. 이제 8일째라서 더욱 그렇다. 사실 어제 돌봄교실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퇴근 직전 잠시 교실로 들어서자 한껏 어지러운 바닥을 돌봄선생이 열심히 치우고 계셨다. 발톱을 빨리 드러내기 시작했다며 어지러워진 상황을 설명해주셨는데, 난 이미 엊그제 경험했던 터라 그냥 웃어 넘겼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어제 상황을 이야기 하면서 주의를 주었다. 그 가운데 규현이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참 좋은 선생님이네


"이거 선생님 거지요."

"네."

"남의 것은 만질 때 어떻게 해야 해요?"

"물어보고 해야 해요."

"맞아요. 그런데 마음대로 만지고 가지고 놀아서 잃어버리고...이러면 될까?"

"..."

"오늘 중간놀이 시간에 반성해야 하니까 나가지 말고 기다려요."

"...예..."


그리고 중간놀이 시간이 되어 규현이 앞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더니 남의 물건 안 만지고 선생님 것도 물어보고 할 거라고 해서 그럼 됐다고 나가서 놀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규현이가 교실 문 앞에서 윗옷을 입으러 가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참 좋은 선생님이네."

"뭐라고?"

"참 좋은 선생님이라고요."

"누가? 내가?"

"네. 선생님 참 좋아요."


하고 웃는다. 알만한 우리 학교 직원들은 규현이가 인상을 쓰다가도 웃으면 다들 넘어갈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미소를 지니고 있다는 걸 안다. 오늘 규현이가 또 그랬다. 잘못은 지가 했는데, 마치 내가 용서 받은 기분이랄까? 아무튼 하루종일 규현이는 '선생님 좋아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흑흑...잘 못 그려서요...


오늘 한 아이 00는 선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울었다.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흐느끼며 울길래, 주위 친구들이 놀렸나 싶어 물었다.


"왜 울어, 00야."

"...."

"누가 놀렸어?"

"아니요? 흑흑... 그냥 그림을 잘 못그려서요."

"아, 난 또 뭐라고."

"흑흑..."

"00야, 못 그래도 돼, 너 못 그린다고 선생님이 혼내지도 않았잖아. 그리고 이렇게 그리면서 느는 거야. 봐봐. 주위 친구들도 다 잘 그리는 건 아니잖아. 너랑 비슷해."

"..."

"잘 못해도 돼요. 다만 열심히 그리면 돼요. 나중에 일 년이 지나면 지금 그린 그림보다 백배는 잘 그릴 거야. 다른 친구들 잘 못그려도 울지는 않잖아. 어서 뚝!"


아이들 중에 잘못하는 것에 압박을 받는 아이들이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런 트라우마나 압박감을 받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일종의 성격으로 자리 잡으면서 곤란을 겪는 때가 있다. 오늘 다른 한 아이도 노래와 율동을 하지 않아 물어보니 미술 말고는 자신이 없어서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못해도 해 보려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면 안 해 버리는 아이도 있다. 일단 이야기를 통해 못해도 상관없고 모든 사람이 다 잘하는 것은 없고 선생님도 피아노를 치고 싶지만 못한다고 그래도 해보려 한다고 이야기는 해주었다. 자신도 그러겠다고 했는데, 두고 봐야 할 것 같고 지켜 봐야 할 것 같다.


이거 하기 싫어요. 안 할래요.


우리 반 00는 곧잘 '이거 하기 싫어요.' '난 책 읽는 거 싫어해요.' '난 00 못해요.' '난 그거 안 할 거예요.'라며 부정적인 말을 주로 많이 쓰는 아이가 있다. 학기초 주의를 주고 본인도 알아 듣는 것 같아 넘어가곤 했는데, 오늘 노래와 율동을 하는 시간에 한참 하다가 또 그런 말을 뱉기 시작했다.


"나 이거 하기 싫어."

"00아, 그럼 안 해도 좋아. 자리로 가세요."


뜻 밖의 냉담한 반응에 녀석은 쭈뼛쭈뼛 제 자리로 갔다. 아이들에게는 다시 연습을 시켰고 나는 그 아이에게 가서 물었다.


"왜 하기 싫은 거야? 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이유를 이야기 해야하지. 무턱대고 소리 지르면서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

"힘들어서 그랬어요."

"그래? 그럼, 힘들다고 해야지. 그건 하기 싫은 거랑 다른 거야."

"다음부터는 안 하겠다 거나 하기 싫다고 하지 말고 이유를 선생님에게 말해서 이렇게 힘들면 잠시 쉬거나 힘들어도 참고 해 보는 것도 좋겠어. 어때?"

'네, 앞으로는 그렇게 할 게요."

"그래, 00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00는 어제보다 훨씬 좋아졌는데. 자, 좀 쉬었으니 이제 연습해 볼까?"

"네!"


사실 이렇게 대화가 되면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어떤 아이는 막무가내로 말하지 않거나 울기만 하는 아이도 있다. 이런 경우에 더 힘들고 위험하고 걱정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을 만날 때면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어휘 부족이라고 느낄 때가 적지 않다. 자신을 표현할 어휘가 부족하니 입을 다물거나 떼를 쓰거나 욕이나 주먹을 먼저 써 버린다. 어른이나 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이 사실은 실제로 연구 통계로 나온 결과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언어를 제대로 익히고 풍성한 어휘를 습득하는 것은 아이들의 정서발달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무조건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다. 가정에서 안정되고 살가운 언어가 차곡차곡 몸에 스며들어 자기 것이 되었을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 어렸을 적에 책을 읽히는 목적과 대화를 나누는 목적과 방향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성장 폭이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해 우리 아이들이 학교 안팎에서 풍성한 삶의 언어를 습득하길 바랄 뿐이다.


결석 안 하고 싶어요


학교 공사로 교실이 돌봄교실이 되어 오후가 되면 이삿짐을 싸들고 나와야 한다. 만날 이럴 형국이니 떠돌이도 이런 떠돌이가 없다. 자료를 찾으러 매번 교실을 들락거리는 것도 일이다. 그러던 오늘 교실에 들어서는데, 돌봄선생님이 씩 웃으시며 한마디 하신다.


"결석하기 싫다고?"

"하하하. 애가 결석하기 싫다네요."

"네? 무슨 말이죠?"

"아, 도윤우가 학교가 재밌다고 결석하기 싫다네요."

"아~ ㅎㅎ.. 도윤우! 학교가 좋아서 결석하기 싫어?"

"네, 학교에 오는 게 너무 좋아요. 재밌는 게 많아서요."

"선생님 하고 지내는 것도 좋은 거네, 그럼?"

"네, 재밌어요."

"에고 고마뭐라. 다행이다. 엻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놀아."

"네."


평상시 표정이 묵뚝뚝해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웃어달라 주문을 자주하는 윤우. 그런데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앞으로 이어지는 4-5월은 공부양이 조금씩 많아지면서 피곤해져 갈 상황이 많다. 예전에도 상당수 아이들이 4-5월에 피곤함을 호소했다. 3월의 그 화려한 분위기가 누그러지면서 4월부터 조금씩 학습량이 많아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나 어느 시기에나 고비가 있기 마련이다. 이 고비를 넘기면 다시 아이들은 상황에 익숙해져 간다. 그것을 못 견딘 부모님이 오히려 아이의 성장을 막았던 경우도 있다. '아이가 힘들어 하니 내버려두세요' 하는 순간, 아이는 그 시점에서 정체되고 더 이상의 노력도 하지 않은채 시간을 즐기기만 하는 것이다. 나중에 이것은 학습의 격차와 관계의 격차까지 만들어 내기도 한다.


공교육이라는 곳이 대안학교와 달리 마냥 기다려줄 수만은 없다는 특성을 아이와 부모도 함께 알아야만 한다. 기다려 주되 피드백을 꼭 해주어 이 다음 학년에서 무리 없이 학습과 관계망을 넓힐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공교육의 기본 책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하루도 참으로 다양한 경험을 한 하루였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두 세 명의 아이가 돌봄교실을 떠나 나를 찾으려 온다. 귀여워서 사랑스러워서 미치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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