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6)
어젯밤 늦게 발동이 걸려 새벽이 넘도록 책을 읽다 자서 그런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에 눈을 떴다. 하지만 미적거리다가 늦게 출발해 월요일이라 교통지옥을 뚫고 겨우 출근시간을 지켜 교실로 들어갔다. 마침 00이가 자리에서 떠날 줄 모르고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책이라도 보라고 하니 고개만 젓는다. 다른 아이 둘은 막 움직이며 재잘거리고 책을 읽는데 00은 마냥 의자에 앉아 있다. 이런 저런 아이들의 기질과 성격을 읽어내는 일이 앞으로 한 달간 해야 할 일이다. 잘 지켜 보고 기록하고 정리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자, 이제 다 왔죠?"
"네~"
"주말은 잘 보냈어요?"
"저는 저녁에 가족끼리 카페에 가서 게임을 했어요. 그런데 엄마랑 아빠랑 했는데, 내가 다 이겼어요."
주말에 있었던 일을 몇몇 아이들이 이야기 하는데, 아직은 서툴기만 하고 수줍어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 구체성이 떨어지고 했던 것만 이야기를 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이 대부분 이렇다. 듣기가 충실히 되지 못한 이유도 있다. 듣기보다 보기가 앞서고 듣기보다 읽기가 앞서다 보니 들어서 몸에 스며 들어야 할 말하기가 균형을 잃어버린 탓이다. 그래서 나는 옛이야기를 최적의 듣기교재로 활용한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은 날마다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말하기와 읽기, 쓰기 능력을 키워 나갈 것이다.
오늘의 옛이야기는 '둔갑한 쥐'였다. 절간에 묻혀 공부로 외롭게 살아 간 선비의 손톱과 발톱을 받아 먹다가 선비와 똑같이 둔갑하여 선비 집에 가서 주인 노릇하다 혼줄이 난다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은 있다지만, 우리 아이들의 관심은 온통 '둔갑'에 쏠려 있었다.
"선생님, 도사라면서요."
"그래서?"
"도사면 둔갑할 수 있어요?"
"그럼, 할 수 있지."
"그럼, 해 봐요?"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닌데. 너희들 처음 만났으니 해줄까?"
"와~"
"뭘로 둔갑해 줄까?"
"수*로 둔갑해줘요."
"좋아, 그럼 선생님이 지금 수*로 둔갑할 게. 그런데 조건이 있어."
"조건이 뭔데요?"
"음...선생님이 둔갑하려 할 때, 너희들이 웃으면 안 돼."
"왜요?"
"그럼 선생님이 너무 힘이 빠져서 둔갑에 실패하거든. 둔갑하려면 굉장한 힘을 써야 하는데, 너희들이 웃어버리면 그 힘을 쓸 수 없어."
"좋아요. 그럼, 해봐요."
아이들은 안 웃으려 입을 손으로 감싸기도 하고 고개도 숙이기도 하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안 된다고 했다. 똑바로 봐야만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엄청나게 웃기는 자세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웃느라 난리였다. 뭐 난 이걸 노린 거다. 아이들은 내가 도사가 아닐 거라는 생각과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뒤섞여 있다. 이 자체가 담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기대와 바람으로 이어져 관계를 높여가는데 효과적이다. 나는 이것을 1학년을 삼년 동안 하면서 깨달았고 오늘도 내일도 나는 마법(?)을 사용할 작정이다.
옛이야기 이후에 지난주에 가르쳐 준 아침 열기 노래를 함께 불렀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잔뜩 피곤해 하는 아이들의 몸을 펴주려 기지개 펴는 몸짓 율동을 간단히 하고는 박고경의 시 '첫봄'을 들려주며 함께 낭송을 했다. 그리고 그것도 율동으로 표현하게 했다.
첫봄| 박고경
땅바닥을
텅
내려디디면
물숙하니
들어가는
힘나는 첫봄
다음으로 봄을 이야기 하고 싶어 교과서 '봄'을 꺼내게 했다. 그리고는 교과서에 이름을 적게 했는데, 생각보다 잘 쓰지 못했다. 일반 학교 아이들과 한글 익힘 정도가 달랐다. 나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이 나와 헤어질 12월에 멋지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쓸 줄 아는 아이들로 키워가고 싶은 마음이 잔뜩 들었기 때문. 그렇게 봄 교과서를 훑어 보면서 봄에 하고 싶은 것들을 늘어 보았다. 그랬더니 진달래 꽃전 잔치, 미술관 방문, 소풍, 감자심기, 씨앗 심기 등 하고 깊은 이야기를 쏟아 내었다. 다 교육과정 범위에 있는 거라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이렇게 봄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그림책을 보여주었다. 오늘의 그림책은 김윤정 작가의 <친구에게>였다. <엄마의 선물>의 후속작이었던 이 작품을 보여주자 다들 신기해 한다. 중간놀이로 이어질 시간이어서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도록 안내하고자 하는 뜻도 있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사소한 다툼은 이어졌다.
중간놀이 시간에 이어진 3-4교시는 학교 건물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현관부터 출발해 텃반을 거쳐 이제는 철거가 된 학교 본관 터 뒤편 산책로를 돌아 한 바퀴를 도는 일정이었다. 가는 곳곳마다 위험한 곳이 무엇이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는 우리 학교 논도 보여 주고 싶어서 교문을 거쳐 횡단보도를 건너에 있는 논으로 안내했다. 논을 한동안 지켜 봤다. 지후가 논에 물이 없다며 아는 척을 했다. 학교 곁에 무엇이 있느냐가 아이들의 배경지식을 풍성하게 하게 다양하게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 농사는 물론 상태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지식으로 생태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돌아온 뒤 교실에서는 간단히 돌아본 느낌을 나눈 뒤에 가장 인상적인 풍경, 가장 기억에 남는 풍경을 그리도록 했다. 그림을 잘 못 그린다는 아이, 방금 이야기를 나누었는 데도 무엇을 그려야 할 지 모르겠다는 아이가 상당수 있었다. 일반학교에서 만나지 못했던 풍경이어서 살짝당황했지만, 이내 안내를 하여 겨우겨우 작품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작품들이 하나 같이 귀엽다. 일반학교에서 만났던 아이들보다 그림의 모양새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무엇을 그리려 했는지 알고 나서는 너무도 재밌고 흥미로웠고 그 아이가 다시 보였다. 그러면서 이 아이들에게 그림도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학교에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기가 생각한 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는데, 이번 아이들은 주저하거나 자신 없어 하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이 아이들과 해야 할 것 하나가 더 생겼다. 나에게도 또 다른 도전이다.
그렇게 네 시간을 끝내고 점심을 시끌벅적 먹고는 하루를 마감했다. 하루를 마감할 때, 지난 이틀과 오늘을 합쳐 세 개의 마노자갈을 투명한 통에 넣어 입학식 이후 우리가 만난 5일째를 기념했다. 그리고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단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입학식 이후 문득 만날 단체 사진 한 장씩 찍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부터 시작한 것. 지난 금요일에 찍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을 만큼, 오늘은 단단히 챙겨 한 장을 찍었다. 잔뜩 긴장했던 입학식 때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들이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돌봄 시간이 되었는데, 시간이 됐는데도 아이들이 들어오지 않아 한 아이에게 부탁을 하니 쏜살 같이 달려 나갔다. 그런데 웬걸 한동안 시간이 흘렀는데도 부르러 간 아이마저 들어오지 않았다. 이윽고 들어온 아이는 내게 투덜댔다.
"아무리 들어오라고 해도 안 들어와요."
"선생님이 들어오라고 했어?"
"네, 그런데 내가 말하면 나한테 화만 자꾸 내요."
"하하하. 그래, 알았어. 선생님이 나가 볼게. 기분 풀어."
하~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마감했다. 이 아이들과 지내는 일이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내일은 또 무슨 말과 무슨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첫봄'인 듯 날이 참 따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