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에 대해

(2023.12.7.)_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23

by 박진환

오늘 일기를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했다. 날마다 일기를 쓰는 건 1학년을 맡고나서 4년째 하는 일이다. 해마다 이런 고비가 몇 번이나 있다. 더구나 이번 주처럼 출장에다 몰아서 교육과정 평가를 연거푸 이틀에 걸쳐 밤 10시가 되도록 회의가 이어지면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이건 무슨 병인지 난 또 이 밤중에 컴퓨터를 켜고 이러구 있다. 간단히 메모형식으로 쓰자고 했다가 또 이렇게 쓰기 시작한다. 나도 내가 이럴 땐 싫다. 무엇에 집착하는 것. 집착이 독이 되고 자신을 옥죄고 타인을 힘들게 하거나 때로는 죽일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 보호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참으로 유익하다 싶으면서도 일부 다른 모둠의 '집착'에 가까운 전언들은 한숨을 넘어 걱정이고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나야 이 학교 떠나면 그만인 공무원이다 하지만, 쓸데 없는 집착이 어떤 결과를 내 놓을 지를 생각하면 그나마 살아왔던 이 학교에 대한 정때문인지 그저 한숨만 나온다. 집착에서 벗어나 용기를 내어 열린 마음으로 진정 모든 학생과 학교를 위한 길에 교사와 보호자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모으는 과정에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듣고 싶은 혹은 저절로 퍼지는 이야기가 비로소 만들어진다. 이전의 거산은 바로 거기서 만들어진 것이다. 어쨌든 올해 한 고비 넘겼는데 앞으로 2년이 무척 중요하다. 내가 맘과 몸을 바칠 마지막 2년일것이다. 부디 누구에게 보이는 교육이 아니라, 오직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매진하는 이야기로 절로 다른 이들의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그런 실천과 지원과 응원이 거산 공동체에서 구축되길 바란다. 딴죽 혹은 비난과 아쉬움으로 나날을 보내기에는 진정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은 <쿵푸 아니고 똥푸>의 차영아 작가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하루를 보낸 날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동화였지만, 생각해 볼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보는 시간이었다.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 똥을 싸는 일을 이제 부끄러워 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 우리 학교에도 있는 다문화 가정 어린이이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 것, 자신들에게도 똥푸 같은 인물이 곁에 있었으면 하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기대와 상상이 버무려지면서 책으로 또다른 세상과 인물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차영아선생님은 들어오시자마자 멋진 손짓으로 아이들의 환호를 이끌어 내었고 자신이 왜 방송작가에서 동화작가가 되었는지를 이야기 하며 '나 스스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전해주려 애를 썼다. 두 시간 동안 티없이 맑고 큰 호응으로 반겨준 아이들에게 정말 고마웠다며 모든 아이들에게 정성껏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나는 지난해 김남중 작가에게 한 부탁처럼 이번에도 아이들이 국어시간에 공부할 때 썼던 공책에도 사인을 부탁드렸다. 부디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의 사인에는 '이 우주에 딱 한송이 000꽃'이라는 멋진 문구가 담겨 있었다.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은 오늘 그렇게 작가와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반대로 나는 오늘 무척이나 힘든 일정을 소화했다. 다행히 몸살기운은 거의 사라졌다. 이 와중에도 몸이 나아갔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지속가능은 우리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 또한 학교를 떠나 교사 박진환이 아닌, 인간 박진환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박진환의 지속가능성은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가 사뭇 궁금해졌다. 앞으로 4년 안에는 찾아야 한다. 아이들의 교사이기 전에 난 그저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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