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딱 걸렸다

(2023.12.8.)_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22

by 박진환

지난 여름과 가을, 가혹하리만치 교사의 삶과 학교의 존재를 뒤훑고 지난 상흔이 오늘도 여기저기서 보인다. 교육직종에 일하는 교사가 차마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되고 수업이야기도 하지 못하게 되기 시작하고 있다. 오로지 안전한 자기 삶만 보존해야 한다는 풍조가 팽배해지는 현실을 그저 바라만 그저 피하기만 그래서 내가 살아내야만 하는 시절이 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어제 밤 10시까지 치러친 거산 학부모_교사 공개토론장은 바깥 사람들이 보면 딴 세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교육전문 격월간지 '오늘의 교육'의 이번 11-12월호 특집 제목이 '학부모 협오와 교육공동체 불가능성'일 정도니 말이다.


모여 이야기하는 것만에 의미를 두면 정작 검토하고 해결해야 할 사항은 다시 묻어둔 채 몇년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나는 어제 회의 이후가 더 치열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럴러면... 벌써부터 힘이 빠진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만나기도 어려운 시절인데, 내가 이 학교의 미래까지 짊어질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이곳에 오기 전까지도 이유가 있었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요즘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를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나 혼자 감당하기에는 나 스스로 더 이상의 명분을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집에 도착한 '오늘의 교육' 11-12월호를 주말에 읽어볼 생각이다. 물론 거기에는 답이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어제는 토론회 2022.새교육과정 전달연수장에 갔더랬다. 국가는 여전히 교육과정에서 숫자놀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외국교육풍조와 경제개발기구의 주장과 논리를 본따 교육과정을 짜깁게 해서 교사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걸 전달하는 타지역 강사는 이른바 자료집 같은 책 네 권을 낸 명성(?)으로 불려와 바뀐 교육과정 어렵지만 어렵지 않다고 효과적으로 구성해서 시행하는 팁을 알려주었다. 새교육과정을 만든 이는 시대상을 반영했다 하는데, 그것을 전달해 주는 강사는 선생님들의 눈높이에 맞춰 주겠다며 결국에는 수행 요령을 강조했다. '참 쉽죠 잉~' 이러는 듯 말이다.


지난 주에는 글쓰기 강의를 부탁 받아 인천으로 불려갔다. 그분들은 구조적(?) 글쓰기를 교육청 지원을 받아 연구를 하신 분들이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살아야 나올 수 있는 일상의 글쓰기를 엄청 새롭게 여기면서도 막상 자신들의 현실에서는 힘들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새교육과정에서 다루는 국어과 쓰기영역의 성취기준들을 어제 보면서도 참으로 뜬그름 잡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교사들의 현실은 어린이 글쓰기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나 연수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실천의지조차 없느데도 말이다. 하긴 교육과정을 만든 그들도 어린이 글쓰기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거나 실천을 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아마도 전부.


이오덕선생님의 글쓰기교육 이후로 삶을 가꾸는 글쓰기이야기 맥은 소수 마니아 교사들로 한정되는 느낌이다. 그만큼 아이들 삶도 좁디 좁아 이제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이들이 떠난 자리를 일부 교사들이 동화와 동시로 채우는 듯한 인상이 든다. 동화와 동시의 존재할 이유에 대한 오류와 잘못을 교사들 스스로 저지르고 있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동화 동시로 돋보여야 할 대상이 아이들이 아니라 교사가 되고 있는 형국이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삶만을 위해 교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동화와 동시를 위해 아이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합당해 보이지 않다.


오늘 아침 아이들에게 받은 일기 가운데 살아있는 몇몇 아이들의 글을 보며 나는 왜 교사여야 하는가, 왜 교사일 수밖에 없는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참, 어렵다. 힘이 든다. 괴롭기까지 하다. 힘을 내야 한다는 생각마저 옹색하고 명분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야 하는데, 어떡해야 할까? 불안하고 걱정스런 나날이 계속 되고 있다. 누구에게 보이는 특색있는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서 학부모들을 유인하는 교육이 아니라, 진정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고민하는 학교와 교사들이 모여 흥겹게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지난 날의 교육이 필요하다. 그 시절이 참으로 부럽다. 그렇게 갈 수 없는 시절이기에 더욱 부럽다. 그 시절로 가기엔 나도 이미 노쇠했고 주변은 깨끗하지 못하다. 이게 현실이다.


참, 오늘은 내년 학생다모임 대표를 뽑는 날이기도 했다. 조막만한 손으로 기표를 하고 투료를 했던 우리 1학년 아이들. 질문도 가장 많이 했다. 왜 그런 공약을 걸었냐고 질문하는 것도 1학년이 유일했다. 진짜 교육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다시금 보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3-4교시에는 미처 무대 위에 올리지 못한 아이들의 낭독극 연습과 지난 번 무대 위에 올렸던 아이들의 연극연습을 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다들 제법한다. 지난 번 일기 제목이 이제 하산을 해도 된다고 했던가. 이번 1학년은 정말 내 지도를 정말 잘 따라준다. 오늘 아침 나는 아쉬운 소식을 들었다. 우리 반 시*은이가 내가 도사가 아닌 걸 알아챈 거다. 현실은 정말 이렇게 냉정하고 냉혹하다. 그저 아이들 글이 유일한 위안이었던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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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3년 12월 7일 목요일

날씨: 깜깜한 밤이 되지도 않았는데, 동글한 별 한 개가 하늘에 떠 있었다.

제목: 박진환 쌤은 도사가 아니다


급식실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있는 선생님한테 박진환선생님 나이를 알려주고 싶어서

"선생님, 박진환선생님은 150살이에요."

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 김00이가 끼어들어서

"야, 박지환선생님 150살 아니야. 56살이야."

라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충격 받았다. 내가 얼~~~~~~~~마나 박진환선생님이 도술을 보여주길 기다렸는데.... 56살은 도사가 아니다. 백살이 넘어야 도사가 된다. 어쩐지 도술을 보여준다고 하고 웃긴 행동을 해서 우리가 웃으면

"너네들이 웃으면 나도 웃게 되니까 도술을 못 보여주잖아."

라고 말했다. 도사가 아니니까 도술을 하는 척 하면서 일부러 웃기게 만드는 것이다. 나한테 딱 걸렸다.(거산초 1학년 한**)


날짜: 2023년 12월 7일 목요일

날씨: 음... 잘 모르겠다.

제목: 팔이 아파요...


"엄마, 팔이 아파..."

나는 지금 팔이 아프다. 아~~무것도 안 아팠는데 갑작스럽게 아프다. 에휴~ 이제 7시여서 일기 써야 하는데. 어쩌면 좋지? 음... 하기 싫어서 아픈 건가? 그건 아닌데? 잠깐! 난 왼팔이 아프잖아? 일기는 오른 팔로 쓰는 거잖아. 에이~ 괜히 생각했네~~(거산초 1학년 도**)


날씨: 2023년 12월 7일 목요일

날씨: 쌀쌀하다.

제목: 좋은 추억


오늘 엄마한테 슬픈 소식을 들었다. 1학기 때 같이 생태 나들이 갔던 목사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였다. 엄마는 장례식장에서(병원에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나도 많이 슬펐다. 난 목사님이 병에 걸려서 돌아가신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가 장례식장에서 하나를 배웠다고 했다. 많이 살면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게 된 거 같다고 했다. 나도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 거다.(거산초 1학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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