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소리만 들어도

(2023.12.13.) _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17

by 박진환

"선생님이다!"

"야, 야, 선생님 와."

"너희들 걸음소리만 들어도 선생님인 거 알아?"

"그럼요, 당연하죠."

"집에 오는 가족 반겨주는 집강아지 같다 야."

"선생님 이거요."

"뭔데? 선생님 먹으라고?"

"네."


어느새 애들도 내 발걸음 소리를 알게 된 모양이다. 걷는 걸음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아는 집강아지마냥 이제 애들과 나도 식구가 됐다. 그렇게 식구가 된 듯하니 이제 아이들과 곧 헤어지게 됐다. 공교육은 기본적으로 1년 담임제라서 어쩔 수 없는 만남과 이별의 반복. 해마다 반복된 만남과 이별이라 익숙해질만도 한데, 이때 쯤이면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바쁜 학년 업무로 정신이 없다가도 이렇게 아이들과 지내며 수업을 하다보면 불쑥불쑥 스며드는 감정 때문에 때때로 우울하다. 6년 전 1학년과 학교를 떠나는 이별 때는 아이들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당시 친했던 보호자로부터 떠나는 것도 아쉬운 데 애들까지 울린다면서 어찌나 뭐라고 하던지.


그렇게 시작한 오늘 하루는 책 읽고 어휘 글쓰기 공부하고 곧바로 겨울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처 하지 못하고 겨울 수업을 들어갔던 지라 소피 쿠샤리에의 <겨울> 그림책으로 겨울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나누었다. 저마다 경험한 느낌과 어디서 얻은 지식들로 한동안 겨울 이야기를 나누었

다. 하지만 아이들 입에서 겨울은 이별이라는 낱말도 있다는 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에 수학시간으로 이어졌다. 오늘 수학시간에는 덧셈과 뺄셈 마지막단원의 평가. 아이들이 풀어오는 학습결과에서 나름 과정들이 잘 진행이 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연습이 더 필요해 보이는 아이들도 보였다. 이번 방학에 보충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흥미로운 아이들 모습도 보였다. 덧셈구구와 뺄셈구구를 학습하고 회상하기 위한 전략으로 어제 배운 방법 이를테면, 15-7=( ), 7+( )=15 / 7+8=15, 15-7=8과 비슷한 문제가 수학시간에 나왔는데 이것을 기억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풀었내었다는 것. 아이들이 어려울 것 같아 피해 가기도 그냥 대충 가르쳐 주었던 지난 시절.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가르쳤다는 반성이 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덧셈과 뺄셈의 관계를 알게 되면 할 수 있는 보드게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트라이 펙터. 아이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며 모둠을 짜서 놀게 했는데, 생각보다 재밌다고 점심시간이 됐는데도 더 하자고 난리였다. 아이들이 다음에도 하자고 하니 뺄셈구구를 위한 사고전략으로 이 보드게임이 한 몫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 지난 주 오후 내내 회의였는데, 그래서 수업준비도 일도 제대로 못했는데, 학년 말 업무가 쌓여 넘친다. 어제 오늘 난 계속 야근이다. 생기부기록 마무리, 통지표 작성, 전인상 작성, 부서별 평가, 학년교육과정평가, 공사관련하여 이사준비... 작은 학교에서 닥치는 업무가 당연하지만, 이제는 당연한 시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다음 달이면 교사와 학교, 우리네 교육의 현재로 포럼에 참석한다. 벌써부터 일부 답이 보여 기분이 영 좋지 않다. 학교의 문제를 교사와 학부모, 교사와 학생 간의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분노한 교사들은 단지 법 개정와 학부모와의 단절된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학교의 문제가 곧 사회의 반영이라는 일반적인 사실을 직지하지 못하면 이런 문제는 언제든 재발할 수밖에 없다.


뜬금없이 이런 쓸데 없는 생각도 하게 되는 오늘. 곧바로 오후 3시부터 내년 예산과 기타 다른 안건으로 회의를 또 한단다. 회의, 또 회의...근무시간에 수업준비도 업무도 할 수 없으니 결국 야근을 선택하게 된다. 혁신학교가 이렇다면 일반학교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불가피하다 싶다가도 지속 가능하지 못한 구조를 얼마나 지탱할지도 걱정이 든다. 책상 저편으로 아이들이 보인다. 내가 녀석들을 보자 무슨 귀엽고 사랑스런 좀비처럼 내게 달려온다. 그리고 앵긴다. 에고에고....내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나를 알아채는 아이들. .. 난 저 아이들과 당장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별 게 없다는 생각만 든다.... 갑자기 힘이 빠진다. 그냥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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