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돌릴 틈도 없는 하루

(2023.12.21.)_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9

by 박진환

날짜: 2023년 12월 20일 수요일

날씨: 엄청 추운데 나는 괜찮다.

제목: 박진환쌤의 책


오늘 책을 읽었다. 박진환쌤이 쓴 책이었다. 그 책에 내용은.... 없고 일기만 나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기가 재밌었다. 박진환쌤은 도사라서 일기도 재밌나 보다. 그리고 몇 분을 읽었을는지 모르겠지만(하여튼 많~~이 읽었다.) 일기는 재밌었다. 재밌거나 웃긴 일만 있었다. 그리고 나도 일기를 쓰고 있다. 나도 박진환쌤처럼 일기를 재밌게 쓰고 싶다.(거산초 1학년 이**)


5년 전에 펴낸 책, 이 아이들이 3살 때 펴낸 책. 그 책을 읽고 내 생각을 하는 아이, 그걸 소재로 일기를 쓰는 아이. 5년 전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1학년을 맡으면서 날마다 쓰던 일기는 오늘까지 이어졌다. 2016년, 2017년, 2020년 코로나 시절, 그리고 올해 2023년. 날마다 수업을 마치고 그날을 돌아보며 글을 쓴다는 것이 사실은 쉽지 않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몸에 배여 있고 이제는 쓰지 않으면 뭔가 이상한 느낌, 뭔가 하루를 망친 느낌이 들기에 이렇게 또 글을 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눈발이 날리는 출근길. 어김없이 500미터를 걸어야 하는 오늘도 찬바람과 눈을 맞으며 교실로 들어섰다. 아, 들어서기도 전에 멀치감치서 들려오는 말. "선생님, 어서 오세요." 마치 내가 들어오는 걸 미리 안 다는 듯. 씩 웃으면서 나를 맞는 아이들은 눈으로 외투가 젖어 있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끌어 안고 앵긴다. 애고, 애고. 오늘도 또 하루가 이렇게 시작하구나 샆었다. 가볍게 책을 읽게 하고는 오늘은 <맨 처음 글쓰기> 그림씨 여섯번째 주제 '같다'로 시작을 했다. '같다'는 아이들이 글을 쓸 때 가장 자주 틀리는 글자, 아니 이제는 자주 틀렸던 그림씨였다.


받아쓰기를 하지 않고 말을 하고 글을 쓰고 그것을 살펴주고 아이들은 그것을 돌아보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낱말과 문장, 겪은 일쓰기까지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성장한 아이들. 대단히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가능한 거라는 걸 나는 지난 4년 간 늘 해내었다. 경쟁적 글쓰기로 쓰기에 스트레스를 받던 상당수의 아이들을 지켜 봤던 터라 더 이상 낡은 받아쓰기의 세계로 아이들을 인도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놀이식 받아쓰기는 나름 효용이 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게 하고 평소에 말을 하던 것을 자연스럽게 글로 쓰게 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지도한 것만으로 받아쓰기가 요구하는 이상의 결과를 늘 얻곤 했다. 이제 더 이상 낡은 받아쓰기 지도법, 아이들을 경쟁으로 유도하고 통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받아쓰기 지도법은 사라져야 한다. 충분히 우리 아이들은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과정에서 글말을 익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쓰기의 세계로 쉽게 안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시간은 문집에 들어갈 그림 그리기 시간. 나는 해마다 문집을 만들 때, 디지털 삽화보다 아이들이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을 넣는다. 그것이 훨씬 살아있는 문집으로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많은 글을 문집에 넣다보니 타이핑된 딱딱한 글이 대부분인데 군데군데 아이들 그림이 섞여 있으면 그나마 구색이 갖춰지면서 문집의 질이 훨씬 높아진다. 손글씨, 손그림이 주는 힘이 꽤나 크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를 위해 문집 도우미 어머님들이 수고해주신 1차 원고를 인쇄해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이 쓴 그림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


자신이 쓴 글이 인쇄돼 나온 것도 신기해 했지만, 거기다 내가 그린 그림이 어우러진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무척이나 신나게 그림을 그려주었다. 우리 반에서 아직 글을 원활하게 쓰지 못하는 두 아이는 따로 불러 입말을 글말로 바꿔주어 한 편이라도 문집에 들어가도록 하는 작업을 했다. 문집을 만들 때면 이렇게 글을 쓰지 못하거나 힘든 아이들이 소외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늘 안타깝다. 그럼에도 두 아이 모두 따라쓰기는 가능하기에 나중에 타이핑된 글을 손글로 바꾸는 작업도 하면서 문집에 모든 아이들의 글이 들어가게끔 하려 한다.


아산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는데 날은 무척이나 맑고 해까지 떠 있다. 정말로 알 수 없는 날씨다. 다행히 다음주부터는 날이 풀린다고 한다. 아이들과 조금은 따듯하게 헤어질 수 있으려나. 하~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지는 날에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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