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과 배움의 끝에서

(2023.12.27.) _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 D-2

by 박진환

어제 쓰지 못한 일기를 오늘 저녁에야 쓴다. 오늘은 학교를 가지 못하고 연가를 냈다. 아들녀석 군 입대 훈련 수료식이 있었던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논산으로 아침 일찍 달려가 반나절을 감기가 잔뜩 들린 아들 녀석과 시간을 보내고 왔다. 내일 자대(수방사)로 배치 받아 본격적인 군생활을 하게 된다. 서울이라 가깝지만 만만치 않다는 소식을 들은 군대에서 모쪼록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들 녀석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온 지금. 나는 어제를 돌아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차려 입을 옷을 골랐다.몇 벌 되지도 않은 옷 중에서 내가 고른 건 입학식 때 입었던 가디건이었다. 지난 2월 나는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1학년을 만나러 새 옷을 사 입었더랬다. 어제 나는 그 옷을 다시 입고 아이들과 보호자들 앞에 섰다. 아마 그 시절 내 옷을 기억하는 이는 없었을 테지만, 난 그 시절을 추억하고팠다. 그렇게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아침부터 바빴다. 내 몸이 예전 같이 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한 탓이다. 요즘에는 집에 가서도 일을 하지 못한다. 학교에서 진을 다 빼고 들어와도 책 읽고 공부하고 일도 하며 지냈던 예전의 내 몸과 정신이 아니다. 올해는 불과 작년까지만도 했던 힘의 절반을 조금 넘겼을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 어린 아이들이랑 그럭저럭 잘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학년 말 몰아치는 일과 학교 공사 덕분에 더 만들어지는 일에 치여 예전 같이 알차게 마무리 잔치를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제 마무리 잔치하기 직전까지도 나는 헉헉대며 준비를 해야만 했다. 물론 아이들이 잘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빈틈을 채워나가는 일을 혼자 하기에는 내 몸과 정신은 진정 에전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어제 마무리 잔치는 보호자 분들의 성원과 응원, 도움과 애정,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 덕분에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끝자락에 우리 반 대표님의 기획으로 제작된 담임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응원 영상이 틀어졌다.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이제 불과 이틀이 남았다. 따지고 보면 어제 마무리 잔치가 가르침과 배움의 끝자락이었다. 지난 일 년동안 배웠던 모든 것을 두 시간에 걸쳐 압축해 공연으로 표현하는 시간. 듣고 말하고 읽고 쓰고 몸으로 표현하고 배움의 즐거움을 몸으로 스며 들게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공연 내용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 담았다. 철마다 배운 노래를 배치하여 그 시절을 떠올려 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 사이 사이로 10월부터 12월까지 겪은 일을 썼던 아이들의 일기를 부모님과 낭독하는 꼭지를 넣었다. 어쩌면 가장 의미가 깊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자기가 쓴 글을 부모님이 함께 읽는 풍경은 아이들이 자신의 글에 대해 갖는 가치와 글이 주는 힘을 느끼게 하는 또 하나의 배움시간이라 나는 보았다. 이런 경험은 아이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자세와 태도에 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이번 공연에 중요한 꼭지로 넣어 두었다. 아울러 듣고 말하고 표현하는 배움을 경험했던 이야기를 낭독극과 연극에 담아 드러내게 했다. 워낙 표현하려는 에너지가 넘치는 우리 반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그 어떤 학년이 보여주는 작품보다 나은 모습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일상에서 배웠던 노래를 철마다 배치하고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눠 살아온 사진을 담은 영상을 담아 지난 일 년을 우리 모두가 함께 추억하는 시간으로 기획했다. 이 모든 과정의 연습도 일상 수업에서 했던 것을 그대로 무대에 올렸고 나름 기대를 했다. 훌륭한 마무리를 잘 해줄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1, 2부에서 우리 어린 새싹들은 부모님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흥분과 격정을 감추지 못했다. 교실 안을 휘 젓고 다니거나 맡은 역할에 과잉행동으로 배움을 전달하는데 실패(?)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연습한 과정을 잊거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친구들이 할 때, 발표에 집중하지 못하고 때때로 방해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보호자 분들이야 아이들이 원래 그렇고 마지막 시간이라 모든 과정을 애정어리게 볼 수 있었겠지만, 지난 일 년을 가르쳐 왔던 담임인 나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한 마무리 잔치는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과 결과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저 흥분과 격정의 감정으로 보내 버리는 지점에서 배움이 들어갈 자리가 있을 수 없다.



이런 과정 모두를 배움으로 여기는 태도와 자세는 아이들의 성장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가르친 것일 수도 있고 아이들의 기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뭔가 정리와 조정이 필요했다. 따라서 나는 입학한 지 300일이었던 마무리 잔치의 중간 쉬는 시간 마치고 3,4부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우리 새싹이들을 불러 모았다. 1, 2부처럼 3, 4부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 1, 2부는 너희들이 배운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고 어떤 건 망치게 된 결과였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 분위기를 잡는데 어렵게 한 아이들에게는 다시 다짐하고 신신당부를 했다.



마무리 잔치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보호자들 앞이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줘야 했다. 다행히도 고맙게도 1, 2부와 사뭇 다른 모습을 우리 아이들은 보여주었고 3, 4부를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배워야 할 지점에서 배우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몸에 익혀 나가면 다음에도 똑같은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은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 할 것이다. 그런 모습을 어른들이 귀엽다고 그 정도는 된다고 허용하는 순간. 아이들에게서 배움은 다 사라져 버린다. 배움은 쉽게 몸으로 스며 들지 않는다. 오랫동안 몸에 익혀 스며 들어 단단해지지 않으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배움은 쉽지 않은 것이다. 어제 나는 그것을 아이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가르침과 배움의 끝자락에서 있었던 이 기억을 우리 아이들이 오랫동안 기억해 주길 바라고 함께 해주신 보호자분들도 나의 뜻을 이해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어제 나는 오늘의 일기를 마무리 하면서 아제 찍었던 단체 사진을 다시 보았다. 아이들과 부모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지난 일 년을 잘 지내왔다는 표정들이었다. 우리 모두 배우고 가르쳐 왔던 시간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보였다. 아이들과 살아온 지난 300일.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가르침과 배움이 함께 했던 모든 시간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제 끝이 보인다. 아쉽지만 또 다른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곳으로 나는 우리 아이들을 떠나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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