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9.)
아침에 우리 반 한 아버님으로부터 컨디션이 안 좋아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할 것 같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바로 통화를 하고 웬만하면 학교에 올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지만, 결국 해결되지 못했다. 오늘이 마지막날이었는데... 또 다른 일도 있었다. 등교하며 버스에서 내린 한 아이가 길을 가다 숲풀 사이에 있던 줄 같은 것에 발이 걸려 넘어졌는데, 발등를 세게 치고 갔던 모양.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었고 보건실에서 살펴본 아이의 발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어 올라왔다.
아이는 못 견디겠다며 엄마에게 연락을 요청했다. 내가 보기에는 시간만 지나면 차츰 안정이 될 듯했는데, 서럽게 우는 아이 모습에 결국 어머니와 통화연결을 해주었다. 아이는 울고 어머니는 다독이는 상황이 됐다. 다행이었다. 그렇게라도 좀 더 버티고 참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이 상황에서는 가장 적절했던 것. 전화기를 돌려 받는 나는 아이 상황을 더 지켜보고 연락하고자 했다. 오늘은 더군다나 6학년 졸업식이 있는 날. 서둘러 급식실로 가야 했던 나는 발등이 다친 아이를 교실에 쉬게 하고 움직여야 했다. 돌아올 때는 좀 나아지길 바라며...
다모임 형식의 자리에서는 차기 학교대표임원에게 당선증을 수여하는 시간이 있었고 이후 졸업생들이 나와 간단한 인사를 했다. 인사 뒤에 1학년은 언니 오빠 형들에게 꽃다발을 전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6학년들은 식장으로 떠나고 우리는 교실로 돌아왔다. 돌아온 뒤에 발등이 당친 아이의 얼굴은 다시 밝아져 있었다. 훨씬 나아졌단다. 점심도 먹을 수 있을 것 같고 집에도 불편하지만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고 한다. 대견했다. 어머님의 적절한 대응이 아이가 참는 법을 알게 되고 스스로 상황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아이에게는 큰 경험이었다.
1년을 마무리 하는 오늘. 아침부터 이렇게 정신이 없었다. 다시 추스려 나는 아이들 각자에게 지난 일 년을 돌아보게 했다. 내가 평하는 아이들의 장단점을 이야기 해주었다. 2학년에 올라가서 어떻게 생활하면 더욱 멋진 학생이 될 거라 응원해주었다. 이 아이들에게는 아직 공염불이겠지만, 언젠가 이런 잔소리 같은 말들을 다시 떠올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오늘도 마지막까지 주절주절 거렸다. 조금 있으니 온채움도우미선생님이 특별한 수업을 준비했다고 2학년 교실에 오라는 연락을 주셨다. 마침 쉬는 시간이라 아이들을 안내했다. 드라이아이스로 재미있는 과학체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 아이들에게 생활통지표와 겨울방학계획서, 전인상 상장이 담긴 파일을 건넸다. 궁금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들이 건넨 파일을 받아들고는 곧바로 뒤적거리며 살펴본다. 하지만 전인상 문구를 살펴보는 것으로 금세 끝났다. 생활통지표에 잔뜩 담긴 말들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기 힘들었을 게다. 그렇게 마지막 정리를 하고 아이들과 나는 그동안 살면서 즐겼던 놀이를 해 보았다. 지난 추억을 떠올리면서. 아이들도 잠시나마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제 마지막 시간. 아이들 각자에게 지난 일 년을 추억하며 작별 인사를 하자 했다. 아직은 설익은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답은 소박하고 매우 작은 지점에 머물러 있다.
어쩌면 지난 일 년. 아이들의 기억에는 정말 소박하고 웃기고 재미나고 즐거웠던 작은 일들이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았을런지도 모른다. 작은 기억과 아름다운 추억. 꾸준하고 오랜 배움과 느린 깨달음. 어린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의 기록은 이런 과정 속에서 쌓이고 쌓여 몸에 스며 드는 과정을 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티 안나게 자라면서 전혀 다른 모습 혹은 갑자기 점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일 년, 내 학급운영과 수업의 방점은 바로 이 지점에 있었다. 한 학급을 운영한다는 차원에서 일 년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무지 짧은 기간이다. 일 년에 많은 지점에서 성장을 이끌어내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저 무사히 건강하게 일 년을 보낸 것만으로도. 생각할 줄 알고 책과 좀 가까워지고 자기 삶을 글에 담을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한 것만으로도 내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본다. 어떻게 좀 아름답게 오늘 하루를 마감하고 싶었지만, 공사와 졸업, 결석과 다침들이 섞여 경황없고 복잡하게 돌아간 시간들로 이어지고 말았다. 정말 세상사 뜻대로 되기 어려운 모양이다. 다 같이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한 자리가 빈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어쩌면 이런 게 또 세상사려니 하고 생각했다. 이삿짐이 잔뜩 쌓인 교실. 교실 컴퓨터마저 옮겨지고 홀로 노트북으로 오늘 하루를 정리하는 지금. 나는 무척이나 피곤하다. 빨리 퇴근하고 싶건만, 이삿짐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고 해서 일찍 나가지도 못한다. 정말 세상사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떠나며 배웅을 나갔던 내게 손을 흔들며 내 이름을 부르며 안녕이라고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으로 모든 것이 위안이 되었다. 뭐 이거면 됐지 않을까? 하~ 이제 곧 새해이다. 새해에는 다시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꿈꾸고자 한다. 올 한 해 하루도 빠짐없이 학급일기를 썼다. 오늘이 그 마지막. 2023년의 학급기록 마지막을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며 마치려 한다. 그동안 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준 우리 아이들과 보호자들. 그 이야기를 담기위해 고군분투한 나. 세상사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 틈 사이로 알차게 이야기를 만들어 간 서로에게 응원을 보내고자 한다. 2023년을 가득 채웠던 껍데기는 가고 2024년에는 좀 더 여유롭고 신나는 일만 가득하길. 2023년의 기록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