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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r 08. 2024

공부는 언제 해요?

(2024.3.8.)

2016년 첫 1학년 담임을 한 뒤로...가장 힘든 한 주였다. 일요일부터 금요일 6일간 근무에 어제는 야근에...오늘은 사물함이 들어오고 책장이 들어오는 바람에 오후에 아무 일도 못했다. 첫주에 아이들과 호흡하며 지내야 하는데, 학교 공사와 조금은 무리다 싶은 개학 강행(?)으로 이래저래 힘든 한 주였다. 지난 한 주를 돌아보니 뭔가 정리가 안 된 느낌이다. 다행히 1학년 아이들은 악조건 속에서 입학 이후 한 주를 즐긴 듯한 느낌이다.


오늘도 교실로 들어서는데 준*가 멍하니 교실 앞을 바라보고 있다. 책이라도 보라고 했더니 봤단다. 그래서 무슨 책을 봤냐니 <텅빈 냉장고>라는 그림책을 봤단다. 그래서 어땠냐 물었더니 반응이 없다. 하긴 그 책은 준*에게 맞지 않는 책이었다. 오늘의 차는 애플시나몬. 차를 준비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막 들어온다. 인사를 하지 않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세워 놓고 인사를 하게 했더니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허리 굽혀 인사를 한다.


애플시나몬 차를 타 주는데, 역시나 녀석들 냄새가 이상하단다. 오늘은 과일향이 나서 괜찮으려나 했는데 이렇게 민감하고 예민한 고객의 입맛을 맞추기가 참 어렵다. 나중에 누룽지차나 작년에 성공한 작두콩 차를 준비하면 어떨까 싶기도 한데, 당분간 이것저것 다 실험(?)해 볼 작정이다. 그렇게 차를 마시고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늘은 '네 장사의 모험'이었다. '바위손이'이를 비롯한 네 장사의 기괴한 재주에 한 번 웃고 이웃나라를 물리치는 활약에 또 한 번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이제야 점점 옛이야기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다음으로는 어제 미처 다 배우지 못한 '봄은 언제 오나요'를 마저 불렀다. 2절을 부르는데, 한 아이가 묻는다. "2절이 뭐예요?" 하하. 앞으로 정말 갈길이 멀다. 다행히도 어제 1절을 제대로 연습한 탓에 그나마 쉬워 보였다. 몇몇 아이들이 여전히 입을 열지 않거나 몸을 움직이지 않아 주의를 주고 때로는 달래도 보면서 겨우겨우 참여를 시켜 나갔다. 그런대로 1, 2절을 모두 부르고 율동을 마무리 했다. 이제 자주 부르면 달라질 거다. 옛이야기나 노래 부르기나 듣기와 이어 있다. 듣기와 말하기가 되지 않은 채 읽기와 쓰기로 넘어가는 건 쉽지 않은데, 꽤 많은 어른들이 거꾸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아이들은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한 채 강요된 읽기와 쓰기로 일찍부터 글과 책의 세계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아직도 이런 문제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오늘은 살짝 학교 뒷산 되박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주변 풍경을 보게 했다. 아직은 앙상한 나뭇가지만 가득하지만 2주만 지나도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나중에 이곳을 자주 찾게 될 것이라는 말을 전하면서 되박산을 향해 외치게 했다. "되박산아~ 다음에 다시 올게~ 잘 있어~" 두 번 외치고 돌아서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이어 산책로를 따라 은행나무동으로 갔다. 급식실 2층에 있는 음악실, 불과 나흘 전 입학식을 했던 곳을 방문해서 지난 추억을 되새기고는 곧장 다목적실에 가서 공으로 이어달리기를 했다. 어찌나 경쟁과 투쟁심이 강하던지, 넘어지고 부딪히고 그러면서도 결국은 경승선으로 들어오고. 누가 이기고 지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다행이다 싶었다.


곧바로 교실로 돌아와 중간놀이 시간을 누린 뒤로 오늘의 마지막 시간인 '선 그림' 그리기를 했다. 선 자체로 그림을 그리는 활동. 오늘은 입학식 선물로 나눠준 밀납 사각크래용으로 종이에 테두리를 그려보는 연습을 했다. 앞으로 닿소리 홀소리 글자를 공부하면서 공책에 테두리 그릴 일이 많아 미리 연습을 한 것. 작년에는 그러지 않고 들어가서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2명 밖에 되지 않으니 가능한 건, 한 명 한 명 손을 쥐고 굵은 선을 긋게 하는 시도를 해 보게 할 수 있다는 것. 다행히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꽤 괜찮은 작품도 보였다. 아이들도 어느덧 자신감을 찾는 모습이었다. 뒤에 이름을 쓰게 하고 간단히 전시해 보았다.


이렇게 금요일 하루. 3월 입학주간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5일을 함께 보낸 아이들은 너무도 어리다. 아직 유치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중 아주 조금, 그 무엇을 거두어 낸 느낌이 든 한 주였다.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으로 학습으로 들어간다. 마침 오늘 아침 준*가 내게  공부는 언제하냐고 물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공부는 연필 들고 공책에 무언가를 하는 것일 게다. 빨리 내가 아는 것을 확인하고 자랑하고 싶은 것일 게다. 이 아이들의 욕구를 들어줄 수 있는 다음주에는 우리 아이들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잔뜩 기대가 된다. 하~ 오늘 오후에 사물함과 책장이 들어온 바람에 정리하는라 온 몸이 쑤신다. 주말에 잘 쉬어야 할 듯.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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