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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r 11. 2024

그래서 방심은 금물이라 했던가

(2024.3.11.)

날씨가 오늘부터 풀린다고 하지 않았나? 아직도 주차장이 준비되기까지는 멀어 오늘도 500미터를 걷고 또 걸어 출근을 하는데, 왜 이렇게 추운지. 오늘 아이들 노는 시간에 던져 줄 블록 두 상자를 차에서 꺼내 맨 손으로 가지고 오니 손도 찹고 날씨까지 흐린 것이 오늘은 또 어쩔라나 싶었다. 역시나 하루를 지내고 난 뒤 돌아보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었다.


지난 한 주를 무사히(?) 마쳤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어리고 어린 우리 새싹이들이 자기 루틴을 가지고 유치원에서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던 틀에서 책상 앞 의자에 앉는 것부터 익숙해져서 1교시 2교시라는 낯선 시간들의 기호에도 적응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쉽게 설명할 수 있었던 용어와 시간이 이번 아이들에게는 두 세번 자세히 설명해주어야 하는 풍경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출발지점이 다르고 속도가 다르니 나 또한 이 아이들의 속도에 익숙해져야 하고 각자 다른 출발지점을 발견해 때때로 지도하고 때때로 도와야 한다.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큰 학교 학급 인원수의 절반 수준이니 좀 더 잘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오늘도 하루를 보냈다. 아침부터 차 한 잔씩 나눠주려는데, 옛이야기 들려달라며 성화를 부린다. 차 한 잔씩 따라주니 이건 또 무엇이냐며 경계 섞인 말들.


"무슨 냄새지? 냄새 좋다."

"그렇지 냄새 좋지. 과일향이야."

"무슨 과일요?"

"이것저것 섞여 있어요."

"아무 맛도 안 나는데."

"약하게 했어. 너희들이 좀 편하게 마시라고."


그렇게 시작한 하루. 오늘의 옛이야기는 '천년 묵은 지네' 이야기. 아이들은 이 이야기 또한 즐겼다. 천년 묵은 지렁이까지 등장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아직도 듣는 자세나 태도가 그렇게 원활하지는 않다. 듣기보다는 말을 더하고 싶은데, 그걸 자제시키고 때에 맞춰 질문을 하게 하는 일을 하는 것도 또 하나의 과정이다. 이후로는 지난주에 배운 <봄은 언제 오나요>를 부르고 오늘의 첫 수업으로 들어갔다. 첫 수업은 자기 짐 정리하기.


지난주에 들어온 책장과 책은 모두 꽂았는데, 이제는 사물함에 한동안 가방에 넣어 두었던 물건을 꺼내 넣어야 하는 시간. 아직은 선반 위치를 또 바꾸어야 해서 다른 건 못 넣었지만, 자기가 가져온 물건들을 넣을 수는 있었다. 아직은 사물함 사용이 서툰 모습이지만, 이것도 조만간 익숙해질 것이다. 다음으로는 아이들에게 스케치북을 나누어 주었다. 표지가 맘에 들지 않아 조만간 다른 것으로 덧씌워야 할 것 같은데, 오늘 첫 수업은 '선 그림'으로 정했다.


지난 주 사각크래용 사용법을 어느 정도 익혔다고 하지만, 아직도 해야 할 과정들이 너무도 많다. 특히 이번 아이들은 소근육 발달에 더 힘을 써야 할 것 같아 하나 하나 손을 잡아 같이 그려주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그림책 <작은 배의 여행>. 선을 매게로 이야기로 만든 그림책. 이 그림책으로 작은 배 형상도 그리고 이 작은배가 뾰족섬과 둥근섬을 지나친다는 이야기. 거기에 어울리는 뾰족선과 둥근선을 그리는 과정을 거쳤다. 이것에 앞서 손으로 허공에 그리게도 하고 뒤로 나가 몸을 움직이며 선의 변화를 몸으로 체득하게 했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실제로 그렸을 때는 아이들의 소근육상태와 크래용을 쥐는 자세, 집중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쉽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이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기대를 심어주면서 수업을 마무리 했다. 그렇게 쉬는 시간을 보내고 다음시간에도 좀 더 선을 그린 다음. 오늘의 두 번째 블록의 주제는 학교 앞 횡단보도 건너고 학교 앞 논과 밭을 거쳐 개울가 산책하기. 날이 잔뜩 흐리기는 했지만, 공사현장이 만만치 않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 방법을 확인시키고 이내 우리 학교 논으로 가서 풍경을 보게 했다. 아직은 논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를 아이들이지만, 여기서 쌀을 거둔다는 것과 이 논을 지켜주는 솟대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이후로는 아랭이골 개울로 내려가 여름에 신나게 놀 그날을 기대하게 했다. 그렇게 바람을 쐬고 다시 돌아와 점심을 먹여 오늘 시작하는 방과후 시간까지. 안내하니 겨우겨우 오늘 하루가 마감이 되었다. 우연히 만보기 체크를 했더니 7천보가 훨씬 넘었다.


교실 자리에 앉자마자 날아오는 학교메시지들. 숨이 턱 막힌다. 학교 공사에 이런저런 학기 초 업무들이 쏟아지며 각 학년과 교사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가득하다. 보기도 싫어 교실 청소를 하고 잠시 쉬다가 이렇게 밴드에 글을 올린다. 1학년을 하면 늘 경계하는 요일이 있다. 바로 오늘 같은 '월요일'. 한 주 잘 지도했다 싶어 안정감을 찾을만하면 금요일이 되고 다시 월요일에 오면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오늘도 서너명의 아이들이 그랬다. 이 비율을 줄여 나가는 게 앞으로의 과제이기도 하다. 오늘 다시 되새긴다. 방심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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