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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r 14. 2024

아이들과 좀 더 친해진 날

(2024. 3. 14.)

학기 초인데, 학교 공사까지 끼어 있어 정신 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다 오늘 일기를 쓰려니 뭘 써야 하나 싶다.


음...이제 민원(?)은 아침에 2학년 녀석을 만나 이야기 했다. 장난이 좀 있어서 그렇지 모가 심해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아이까지는 아닌데, 후배들을 대하는 법을 모르고 친구 사귀는 법을 모르고 몸으로 먼저 해결하려는 습성이 그대로 나와 스스로를 곤욕에 빠뜨리는 아이다. 잘 타일렀다. 앞으로 잘 해주길 그저 바랄 뿐. 이렇게 작은 학교에서 지내는 일은 아이들에게나 부모들에게나 모두 낯설다. 한 가족처럼 지낸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살아봐야, 학교 속으로 들어와 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일반 큰학교처럼 시시비비를 가리고 아이들 관계에 깊게 개입하다보면 오히려 안 하니 못한 결과들이 나오곤 한다. 시절이 달라지고 부모와 아이들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교육관도 많이 달라진 상태라 이런 문제를 어떻게 이해시키고 갈 것인지가 앞으로 우리 학교에 남은 과제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학생이나 부모나 모두 거산이 어떤 곳인가를 좀 더 알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어디 부모와 학생 뿐일까. 새로 들어온 교사들과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학교와 다른 문화와 풍토, 관계들에 낯설어 한다.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 공립학교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일은 이렇게 힘든 일이다.


오늘 아침 차는 카카오에 포토와 또 무엇이 섞인 차였다. 향부터가 코코아라서 아이들에게 오늘은 무난히 다가가겠다 싶었다. 짐작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그래도 이것조차 못 받아들이겠다며 딴죽(?)을 부리는 아이들 몇몇이 있었다. 어차피 피 그 아이들은 무얼 줘도 저러겠다 싶어서 웃어 넘겼다. 한 해가 지나면 나아지려나. 차를 마시고는 노래 한 자락 부르고 아이들이 아침마다 기다리는 옛이야기 한 편을 들려주었다. 어느덧 2주에 걸쳐 생활리듬을 잡아가고 있다. 일정한 루틴이 만들어지면 아이들은 훨씬 안정감을 가질 텐데, 안정감이 자칫 맘대로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담임은 계속 이를 주시하고 긴장상태에 있어야 한다.


오늘 첫 수업은 '선 그림' 그리기. <첫배움책>으로 시작한 선그림. 오늘도 그나마 앉안정된 모습을 보이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선을 일관된 굵기와 간격으로 어린 아이들이 긋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지난 해 아이들은 조금 앞선 경우였다면, 이 아이들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출발이 늦어 보이지만, 아주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인다. 생각 같아서는 과제도 내 주고 싶은데...생각을 더 해 봐야 할 것 같다. 당장 다음주부터는 한글의 홀소리부터 들어가기 시작해야 하는데, 일단 시작해 봐야겠다. 아이들을 믿어야지 어쩌겠나 싶다.


아이들이 선을 긋는 모습을 보면서 선 긋는 교재도 따로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지희샘이 이 글을 보실 수도 있겠는데, 나중에 제안을 해보려 한다. 좀 더 다양한 선 그림을 좀 더 집에서도 학습할 수 있게 하는 교재까지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구상을 해 보았는데, 발도르프 공부를 많이 한 현민샘과 의논해 볼까도 싶다. 빠르게만 그어 버리고 서둘러 확인 해달라는 아이들이 이제는 제법 천천히 숨을 고르며 긋는 모습이 대견하다. 다 그어 놓고 나를 부르는 아이들. 아직 섬세함과 꼼꼼함이 부족해 보이지만, 이렇게 다 시작하는 거 아닌가 싶다.


그렇게 1블록 수업을 마치고 중간놀이에 이어 2블록 시간. 첫 시간은 친구를 만나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노래를 부르며 확인을 해보았다. 누구나 다 아는 노래라고 했던 노래를 우리 아이들은 몰랐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나는 000. 그 이름 아름답구나..' 교과서에 있길래 한 번 해 보았는데, 쑥스러워 하면서 잘 따라한다. 이후로는 친구얼굴그리기. 새삼 10년 전까지만 해도 6학년을 했을 때 자세히 보고 그림 그리기 활동 첫 시간으로 친구얼굴 그리기라는 걸 했었는데, 잠시 그때가 떠올랐다. 교과서에도 실려 있길래 해 보려 했으나 걱정이 앞서 방법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맨 도화지 A4지에 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형태 잡는 것이 연습이 되지 않았고 간격과 구도를 잡는데, 어려운 아이들에게 맨 종이에 그림을 그리라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무리라 싶었다. 그래서 내가 별로 하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교과서 뒤쪽 찢어 쓰는 학습지를 활용하기로 했다. 거기에는 얼굴 형태는 이미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종이를 받자마자 색연필을 잡고 막 그리려 했다. 지난 2주간 걸쳐 아이들을 보면서 너무 급하다는 생각만 했다. 뭐든지 대충 빨리 해 버리고 봐달란다. 그게 아니라 뭐든지 천천히 자세히 보고 정성을 들이자 했다.


아이들은 정성을 들여 천천히 하는 걸 매우 어려워 했다. 지난해 몇몇 아이도 그랬는데, 이번에 아이들은 그런 경향의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늘 외치는 말. "천천히 예쁘게!". 두 명 정도 아이는 오히려 너무 느려 조금 서둘러 달라고는 했는데, 하여간 그러자 비슷하게 속도의 균형을 이루면서 오류도 줄어들었다. 이제 얼굴을 그리려면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해야 한다. 그래서 책상도 마주보게 했다. 그런데 서로 마주 보게 하니 어찌나 웃어대던지. 그렇게 웃긴가 보다. 서로의 얼굴이 하하하. 얼굴을 그리려면, 잘 그리려면 친구 얼굴의 눈, 코, 입과 머리카락 등을 자세히 보고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을 끊임없이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앞에 친구를 놔두고도 상상으로 그려버리곤 한다. 어김없이 우리 아이들이 그랬다.


겨우 겨우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했는데, 형태가 그려진 얼굴 안을 채워 넣다보니 그나마 볼만 했다. 나중에 그림 주인공의 이름을 써 놓으라 했더니 친구 책상 위의 이름을 보이는대로 거꾸로 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순서를 뒤바꿔 놓는 경우도 있어 어이도 없고 어찌나 웃기던지. 그래, 이게 1학년이지 싶었다. 다 안다던 아이들의 민낯(?)을 확실하게 보는 순간이었고 그걸 확인해 주니 어찌나 내게 달려들던지. 곧 죽어도 자기는 다 안단다. 하하하. 어디서 오는 이 자신감. 크크. 아무튼 이 아이들이 겸손해지려면 아직 멀었다. 좀 더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서로의 얼굴에 견주어 보게 했더니 비슷하다 안 하다 웃기나 이상하다 난리도 아니다. 친구랑 친해지는 시간이 너무도 웃는 시간이 돼 버렸다.


이렇게 또 오늘 하루를 보냈다. 웃어서 좋았고 아이들과 좀 더 친해져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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