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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r 13. 2024

딱히 정답은 없지만, 그럼에도

(2024.03.13.)

어제보다는 안정이 됐고 지난 이틀보다는 나아진 하루. 또 한 주의 루틴이 완성이 돼 가는 수요일. 다음주 월요일이 다시 불안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오늘은 지난해 보호자 한 분이 주셨던 레몬 말린 것이 있어서 그것으로 차를 대신했다. 역시나 호불호가 강하다. 올해처럼 차 한 잔 대접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때가 있었나 싶다. 무슨 투정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하하. 갈수록 편식을 하는 아이들도 늘어나는 것이 사회환경변화와 그에 따른 양육방식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이것도 우리 아이들이 6년을 거치면서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가정도 학교도 아이도 함께 성장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오늘의 첫 시간은 어제에 이어 수와 숫자를 공부하는 시간. 수학공책에 '2'를 표시하고 둘, 둘째라는 표현을 함께 익혀 나갔다. 그리고는 어제 미처 읽어주지 못한 '하나'에 대한 공부로 들려주려 했던 페리던 오늘의 그림책 <빨간 사과 하나>를 보여주었다. 토끼 한 마리가 추운 겨울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린 사과 하나를 먹겠다고 애를 쓰다 쥐, 여우, 곰까지 동원해서 겨우 따먹고는 한데 모여 남은 겨울잠을 잔다는 이야기. 수로 보면 1에서 5까지 나오는 이야기여서 두고 두고 다둘 그림책이기도 했다. 


여기다 오늘은 김성화 권수진의 그림책 <2주세요!>를 보여주었다. 세상에 없던 '숫자 2'가 어떤 원리로 근거로 만들어진 것인지, 단지 숫자 2가 아닌 숫자 발생 근원에 대한 이야기라 오늘 배우는 '2'숫자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두고 두고 이야기 할 거리의 그림책이라 나름 괜찮은 책이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듯한데, 앞으로도 지켜 봐야 할 듯했다. 그러면서 한 아이가 자기는 숫자를 다 안다는 표현을 또 했다. 그래서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학원에 다닌단다. 안 드래도 학원에 다니면서 수힉을 미리 공부한다는 몇몇 아이들의 소식을 들었다. 


지난 달 겨울연수 때, 교육과정 설명회가 아직은 보호자들에게 그다지 와 닿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달 다모임 때 설명을 드리고 거산에서 1학년 아이들의 학습은 가정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그것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다시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았다. 거산을 체험학습하는 학교로만 여기고 보냈을 때의 문제와 페단, 한계를 다시금 설명 드리지 않으면 앞으로 보호자 입장에서는 오류와 후회가 가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 아이들 위한 교육이 무엇인지를 거산의 교육과정을 통해 함께 깨달으시길 바랄 뿐이다. 


남은 시간은 통합교과 '학교' 교육과정에 있는 짝활동 중에서 짝체조가 있어서 응용해서 해 보았다. 아직은 서로를 잡고 무엇을 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기도 하고 자세도 엉성하지만, 나름 즐기며 하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별 것 아닌 것에도 웃고 별 것 아닌 것에 재미있어 햘 나이의 아이들. 30분 넘게 짝제조와 짝과 하는 공놀이를 다양하게 시켰더니 힘들어 하는 아이도 보이고 땀이 난다는 아이도 있어서 잠시 쉬게 했다. 교실 바닥이 장판인데다 난방이 되고 있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드러누웠다. 그래서 나는 그냥 자보는게 어떠냐고 했다. 그랬더니 쿨쿨 자는 척을 한다. 바스락 소리도 내고 웃기도 해서 절대 소리를 내지 않기로 했더니 10여분간 누워서 쌕쌕 거린다. 그리고는 깨워 명상 자세를 취해 보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남은 시간에 선그림 활동을 했더니 그래서 그런지 훨씬 차분해진 모습들이었다. 앞으로 이 방식을 자주 이용할까도 싶었다. 선 그림은 박지희샘의 <첫 배움책>을 이용했다. 꽃을 찾아 날아가는 나비의 곡선, 개미의 꾸불꾸불 각선, 개구리의 폴짝폴짝 뛰는 선들을 소리를 내며 예시로 보여주니 재밌어 한다. 하지만 역시나 실제 따라 그리는 일은 쉽지 않다. 연습 또 연습이 필요할 듯했다. 그래도 맨 종이에 하는 <작은 배의 여행>보다는 이런 방식을 거치는 게 훨씬 나을 듯했다. 아이들도 덜 부담스러워 하는 눈빛이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 다시 곧은 선을 그려보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 이렇게 일기를 마무리 지을 무렵, 첫 날에 이어 또 다른 민원(?)이 들어왔다. 지난 해 내가 맡았던 아이가 저지른 일 때문이었다. 많이 안타깝고 아쉽기도 하고 해당 아버님께 전화를 하는 내내 맘이 편치 않았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어릴 적 자기가 저지른 일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고 저지르는 일이 잦다. 모든 것이 만찬가지지만 깨닫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우리 반 아이들도 그렇다. 딱히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럼에도 가야하지 않겠나 하는 길이 있다. 그 길로  가서 증명해 보이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런데 그것이 무너지는데까지는 너무도 가볍고도 빠르다. 


그럼에도 나는 또 오늘 이 길을 간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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