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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r 19. 2024

매일과 하루에 한 번의 차이

(2024.3.19.)

아침 일찍 일어나서 움직여야 할 일이 생기다 보니 학교에 일찍 도착하고야 말았다. 오전 7시 50분. 그러고 보니 아침에 8시에 들어섰던 지도 어언 8년 전이다. 아침 일찍 교실로 들어가 아이들을 맞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시절. 지금은 조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내 삶의 리듬도 매우 중요하다는 걸. 체력도 문제이기도 하고. 일단 집에서 학교가 멀다. 아침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는 일도 이제 갈수록 힘이 든다. 아무튼 그렇게 교실로 들어서 아이들을 맞이를 준비하는데 우리 반 일등 출근 준*가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들어온다. 나는 반갑게 맞이하며 안아주었다. 어제 열이 좀 심해 결석까지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제 준*, 열이 많았다며? 이제는 괜찮아?"

"네. 어제는 목도 많이 아팠어요."

"지금은 괜찮고?"

"네."

"선생님은 준*가 보고 싶었는데, 준*는 선생님 안 보고 싶었니?"

"보고 싶었어요."


착한 녀석. 나를사실 생각하지 못할 만큼 아팠을 텐데, 물으니까 또 대답을 해준다. 어쨌든 다행이었다. 그렇게 다시 내 일을 보는데 준*는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다. 그래서 어제 그림책을 찾지 못해 유튜브로 급하게 보여줬던 <감자에 싹이 나서>를 뒤늦게 찾아 건네주며 읽어보라 했다. 그랬더니 2분도 안 돼 다 읽었다며 딴 곳을 멍하니 또 보고 있다.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곁에서 보여주고 읽어주었다. 그러자 집중을 하며 재미나게 책을 본다. 감자에 대한 자기 경험까지 이야기 하며 한동안 즐겁게 책을 같이 봤다. 그러면서 준*우의 얼굴을 보니 참 사랑스럽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도 몇년이 지나면 6학년이 돼 졸업을 앞두겠지 싶으니 내가 지금 이 아이한테 무엇을 어떻게 잘 해주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그 답을 하나 찾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이어 들어온 아이들과 나는 차를 한 잔 마시고는 옛이야기 한 편을 들려주고 곧바로 첫 수업으로 들어갔다. 오늘 첫 수업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셨을 때, 소리글자의 바탕이자 철학을 구체화시켰던 천지인 세 글자였다. 위계호의 <소리 씨앗을 심은 아이>도 들려주면서 한글 소리의 씨앗이었던 세 글자의 뜻과 소리를 하나씩 만나 보았다. 그것을 공책에도 그리고 표현하면서 우리 글자에는 뜻이 있고 소리도 함께 있음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도록 했다. 여전히 이런 지점에는 흥미가 없는 서너 분의 귀한 손님들이 계셨지만, 묵묵히 이야기를 전하고 글을 익히게 했다. 이제 다음부터는 천천히 홀소리를 알아가며 우리 글자에 대해 깊이 또 깊이 들어가 볼 작정이다.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들이 보이길 바라면서...


중간놀이시간에는 사건도 하나 벌어졌다. 아이들이 마시는 찻잔을 바구니에 담아 아이들 눈높이 이상에 두고자 아직 짐이 정리가 되지 않은 뒤편상자 틈바구니에 올려두었는데, 그게 그만...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상자를 치면서 흔들리던 찻잔들이 쏟아져 내려 우수수 깨져 버린 것. 아이들 탓만 할 수도 없었다. 단지 난 아이들 손이 안 타는 높은 쪽으로 얹었던 것인데, 그게 화근이 된 것이다. 다행히도 다친ㅇ 아이들은 없었다. 아이들이 없는 쪽에서 벌어진 일이라. 다 쓸고 치워 보니 여섯 잔만 살아남아 있었다. 오늘 중으로 보호자들께 다시 연락드려야 하게 생겼다. 애고 애고 좀 더 내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예전과 다른 상황과 아이들이었는데...


어쨌든 그 사건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수학의 세계로 아이들을 안내했다. 오늘 우리 아이들과 다둘 수는 '4'. 4하면 생각나는 것들을 이야기 하자  했다. 역시나  아이들 입에서는 장난 섞인 말들이 가득하고 내용에 집중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답이 나온다. 아직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3까지의 수를 공부하며 생각하는 방향으로 유도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사각형과 네모 모양, 건물의 4층, 시계 4시 정도로 꾸역꾸역 내용을 채워 나가야 했다. 오늘부터는 구체물 조작이 필요해 보여 교구 중에서 수저울로 아이들을 안내했다. 아이들은 신기해 하며 수저울 바라보았다.


아이들에게 수 저울을 나눠주고 나를 따라서 숫자 일과 균형을 이루는 개수 하나, 숫자2와 균형을 이루는 개수 두 개, 숫자 3과 숫자 4까지 같이 살펴보았다. 그러다 각자 변화된 형태로 저울을 4이하의 수로 가지고 놀게 했다. 역시나 그 중 세 명은 이 교구에서 수학적 사고와 접근을 하기 보다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기 바빴다. 잔소리로 시간을 보내기 싫은데, 자꾸 이렇게 일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또 앞으로 가고 가야겠다 싶은 생각 뿐이다. 오늘 학습을 정리한 뒤에는 뒤로 나가 몸으로 수를 익히는 놀이를 했다. 둥굴게 둥굴게 모여 노래를 부르다 멈출 때 나의 안내로 셋이 모이고 넷이 모이는 놀이. 즐겁게 아이들은 이 순간을 즐겼다.


점심시간에는 줄 서는 거 가지고 다투는 아이들이 보였다. 서로 앞에 서겠다고 난리다. 딱히 앞에 서서 유익(?)한 건 밥을 먼저 받는 거 밖에는 없느데도 우리 아이들은 이것마저 경쟁을 한다. 유독 이번 아이들이 심하다. 그 중 한 녀석. 계속 내 관심을 끄는 녀석이 다툼이 심해 뒤로 가라 했더니 앙탈을 부리며 가지 않는다. 이 녀석은 얼마 전 내가 맘에 든다고 했던 녀석이다. 나도 녀석하고 지내는게 쉽지는 않지만, 나쁘지는 않아서 장난으로 응답하고는 했는데, 오늘은 하도 응석을 피우고 말을 듣지 않아서 인상을 쓰고 경계를 지었는데, 이것도 무시하고 헤헤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밥 먹을 때 내가 앉던 자리에 가서 날 부른다.


"선생님,!"

"왜?"

"나하고 이렇게 같이 밥 먹으면 데이트 하는 건가?"

"너 또 반말이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 우리 맨날 맨말 데이트 할까?"

"싫어요."

"그럼?"

"하루에 한 번만."

"뭐? 그게 그거지. 맨날 맨날과 하루에 한 번이 뭐가 달라. 하하하."

"달라요."


앞에 있던 녀석도 원래 나하고 안 먹던 녀석이 오늘은 내 앞에 와서 깐족을 떤다. 그리고는 내 식판에 있는 닭날개를 가지고 가려 한다. 근데 이 녀석 장난이 아니고 진짜 가져 가려 했다. 그래서 조리사님들에게 달라고 하면 준다고 가라니까 한사코 내 것을 뺐으려 해서 나도 재밌어서 내 닭날개에 침을 다 발랐다. 근데 그래도 가져갔겠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부끄러워서 그랬던 것. 하여간 이 녀석들 나한테만 용기를 내고 나한테만 대든다. 녀석이 친구와 함께 잔뜩 닭날개를 가져왔길래 내가 하나 뺐어 먹었다. 그랬더니 난리다. 하여간 나도 가만히는 안 있을 거다. 녀석들 하고 지내니 나도 딱 1학년 수준이 된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곧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목적실로 가서 오늘 주된 활동인 훌라후프와 다른 교구로 신나게 놀아 보았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 옷을 하나씩 벗어던지고 다목적실을 종횡무진 누볐다. 아쉬운 점은 다들 짜증이 많다는 거다. 서로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틀리면 뭐라고 하고 실수하면 화를 낸다. 협력이 잘 안 된다. 협동하는 놀이를 하면서 서로의 작은 배려와 도움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깨닫기 보다 빨리 이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재촉을 한다. 이것도 앞으로 일 년 내내 아이들과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고 가르치고 다듬어야 할 지점이다. 나중에는 이런 지점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해 보고 다르게 접근할 방법을 찾는 시도도 해봐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16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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