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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r 18. 2024

자로 잰 듯 반듯하지 않아도

(2024.3.18.)

"자, 이제 다시 제자리에 앉으세요~"

"네~"


몇몇 아이들 입에서 힘이 없는 대답은 아닌데, 갸날프다고 할까? 이제껏 만난 1학년아이들에게서는 들을 수 없었던 조금은 다른 톤의 대답소리. 사실 이 대답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냥 웃음이 나온다. 너무 어린 아이들 목소리이기 때문이어서 도무지 녀석들에게 잔소리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너 선생님한테 반말하는 거야?"

"맞아. 어른한테는 반말하는 거 아니야."


한 녀석이 말끝을 매듭짓지 않고 끝나길래 농담조로 반말하냐고 했더니 옆에 있던 한 녀석이 맞장구를 친다. 그러면 안 된다며 얼굴에 인상을 지어가며 친구를 향해 말을 한다. 지는 얼마나 나한테 예의 바르게 군다고 친구에게 훈수를 둔다. 그것도 볼라치면 웃음이 절로 나오면서 무장해제가 돼 버린다.


오늘 첫 시간에 <첫 배움책>에 나오는 굽은 선 그리기와 동그라미 시간이 있었다. 오늘도 선 그림에서는 아쉽게만 느껴졌는데, 특히 동그라미를 그리는 지점에서는 집중력도 잃어가며 대충 그리는 아이가 꽤 많았다. 천천히 숨 죽여가며 무언가를 완성해 내려는 마음보다 후딱 빨리 해치우겠다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완성도라고 해야 할까?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한 명 한 명 따라 곁에서 손도 잡아 지도를 해주었지만, 이내 돌아서면 자기 마음대로 해 버리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이 조그마한 녀석들이 뭐가 마음이 그렇게 급한 건지. 천천히 동그라미를 그려내며 성취감을 느끼는 것에는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을 좀 해 보았다. 지난해 아이들과 속도와 기질, 성격과 학습에 대한 반응 양상이 다른 이 아이들은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까?


이전에 만난 큰 학교 1학년들에서는 30% 정도가 이런 아이들이었지만, 옆에서 열심히 혹은 잘하는 아이들을 따라가며 속도는 느리지만 따라오는 맛이 있었는데, 지금 내가 맡은 아이들은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차피 학습진도에 구애받지 않는 환경인 거산이라면 굳이 다음 단계를 고민하지 말고 지금 부족한 부분을 챙겨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내일부터는 틈나는 대로 스케치북에 지금 부족한 부분을 더 연습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내 책상 옆에 있는 글자 꾸러미를 보았다. 예전이라면 뒷게시판에 붙어 있어야 할 글자판. '자로 잰 듯 반듯하지 않아도'가 보였다. 그랬지. 맞아. 내 학급철학이 저건데, 늘 문구를 가슴에 새긴다고 해 놓고 아직 1학년에 갓 들어온 아이들에게 뭔 큰 기대를 하는 거지? 다시 맘을 고쳐 먹고 자로 잰 듯 반듯하지 않아도 이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다짐을 다시 해 보았다. 안달한다고 닦달한닥고 아이들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나? 변화를 기대한다면 나 역시 그만큼의 공을 들여야 한다. 정신 차리자. 박진환!


오늘도 학습자세와 태도 때문에 잔소리를 해야만 했던 한 녀석을 대하면서 이 녀석의 변화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이 아이가 먼저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잔소리를 들어도 웃음으로 반격하는 이 녀석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꾸중이 아니라 잔로 잰 듯 반듯하지 않아도 우리 함께 이 시간을 즐기자는 마음을 전해야 하는 것.. 이제 1학년을 다섯 번쯤 하게 되면 이 정도는 진즉에 깨달았어야 하는데, 나 역시 욕심과 욕망을 거두어 내는데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중간놀이 시간 이후로는 다음주에는 심을 준비를 해야 할 감자에 대한 지식과 노래, 그림책으로 감자에 대한 친근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아이들 요구로 되박산에 살짝 올라서 주위 풍경도 바라보고 주위 환경이 거칠지만, 놀이터에도 갔다 오고 텃밭도 둘러 보면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 했다. 오늘은 둘 밖에 없는 여자 아이 중 한 아이가 가족행사로 학교를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한 아이의 손을 잡고 산으로 놀이터로 텃밭으로 다녔다. 남자 아이들은 왜 00만 챙기냐고 투덜대었다. 오늘은 또 한 아이도 아파서 오지 않아 10명으로 수업을 했다. 안 그래도 적은 아이들 수가 더 적어 보였던 하루였다. 내일은 모든 아이들과 새롭게 한 주를 시작했으면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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