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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r 29. 2024

벌써 한 달이 지나고

(2024.3.29)

늘 생각하는 거지만, 날마다 글을 올리는 게 쉽지 않다. 쓸 시간을 사실 확보하기도 어렵고 작정하고 이 시간을 마련하지 않으면 가능하지도 않다. 바쁘게 하루를 보내다보니 요즘엔 나이도 들어서인지 아이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을때가 많다. 아이들이 들려주는 말들이 참 예쁠 때가 있는데, 그걸 담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다. 오늘은 방과후에 금요일이기도 하고 저녁에 보호자분과 다모임을 해야 해서 청소를 간단히 했다.


그런데 2학년 옆교실 선생님이 수학교구 하나를 찾고자 와서 결국  이삿짐 남아 있는 걸 모두 뒤져야 했다. 안 그래도 하려고는 했지만, 이참에 해야겠다 싶어 움직이니 그것도 한 시간이 훌쩍 간다. 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반팔 티 하나로 움직이기까지 했는데, 그렇게 일을 끝내니 지난해 보호자 중 한 분이 인사를 건네러 교실로 들어오신다. 그러다 또 10여분이 날아가고, 전남 지역 교사 한 분과 통화할 일이 있어 전화를 하고 그러다 또 도교육청 파견나간 교사 한 분에게 부탁 전화가 오고 그러다 보니 벌써 오후 4시 반이 넘어섰다.


이제 일기를 쓰려니 진이 빠진다. 오늘도 우리 반 두 녀석이 잔뜩 내 힘을 빼 놓았는데, 긍정적으로 살 좀 뺄 수 있으려나 하는 맘으로 이렇게 타이핑을 시작해 보았다. 제목을 뭐로 할까 하다보니 어느새 오늘이 3월의 마지막 근무일이다. 아이들과 만난지 26일째 되는 날. 오늘은 감자를 심는 날이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황사주의보가 내리고 바깥에 나가야 할지 고민하던 터에 한 아이가 결석을 하게 되면서 오늘은 감자를 관찰하고 자르고 난 뒤 재를 묻히며 감자를 심을 준비를 하는 시간으로 보내기로 했다.


하우스에 가서 씨감자를 가지고 왔는데, 아직은 씨가 제대로 나온 감자가 없었다. 그래도 나올만한 구석에 있는 것을 보게 하여 텃밭공책에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흙 묻은 씨감자를 눈 앞에 보는 것만으로 신기해 하던 녀석들은 칼로 자르면서 잘린 면을 보며 신기해 한다. 잘려 아픈 감자에게 재를 묻히는데까지 아이들은 매우 진지하고도 차분하게 기다려주었다. 나중에는 씨감자 노래도 부르면서 마무리를 했는다. 얼마나 집중을 했던지, 시계를 볼 줄 아는 한 녀석이 한 마디 한다.


"어, 벌써 이렇게 시간이 됐네?"

"그럼, 시간 금방 가지?"

"네, 별로 한 게 없는 거 같은데? 시간이 금방 갔어요."

"별로 한 게 없기는 그림 그리고 감자 관찰하고 칼로 자르고 재 묻히고 얼마나 많이 했는데."


중간놀이를 충분히 즐긴 아이들과 나는 지난번 마무리 못한 'ㅑ, ㅕ' 쓰기를 마무리 하고 새로 배울 글자 'ㅗ,ㅜ'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오늘은 존 케인의 그림책 <나는 오, 너는 아!>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그림책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소리를 내게 하고 엉뚱한 답을 하게 하여 재미를 선사하는 그림책인데,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오와 아를 만나고 자기 이름과 펜티와 같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도 다루어서 흥미진진하게 끝까지 함께 볼 수 있어 좋다. 역시나 아이들은 재미있어 하며 막 웃는다. 그러면서 우리가 배웠던 '아'와 새로 배울 글자 '오'를 다시 확인하며 익혔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마무리가 됐다. 3월은 일종의 적응기간이었다. 4월은 학교공사의 마무리가 되는 달이기도 하여서 새롭게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고 아이들도 확 적응을 해서 부쩍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무사한 4월을 보내기 위해 부지런히 또 준비할 수밖에. 지난 한 달 낯선 초등학교를 다닌 아이들에게 격려를 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보낸 보호자분들을 위로하며 나 스스로에게 잘 견뎌냈음에 만족하는 것으로 오늘의 일기는 여기서 마무리 한다. 4월 첫날에 어떤 이야기가 또 쓰여질지가 궁금하다. 아무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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