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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Apr 01. 2024

선생님, 저 엄청 부럽죠

(2024.4.1.)

4월 첫 날이다. 이쯤되니 우리 아이들도 이제 학교와 담임, 그리고 1학년 수업에 적응하는 모습이다. 자잘한 다툼과 부주의는 이 아이들 나이 또래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다만 하루 하루를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가 중요할 뿐. 오늘은 또 월요일이다. 지난주부터였나 월요증후근은 조금씩 사라지는 모습니다. 월요 중후근을 아이들이 자주 겪은 경우는 어른들의 탓도 크다. 주말 늦게까지 휴일을 즐기는 가정의 아이들이 대게 월요일 아침을 힘들게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오늘은 특히 지난 주 금요일에 하지 못한 감자를 심으러 가는 날. 아침부터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 중 몇몇은 감자를 심는 기대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지난 주 다모임때 주간학습안내를 아이들과 함께 보는 루틴을 만들어 보시라는 말씀이 몇몇 가정에서는 통했던 것 같다. 어떤 아이들은 오늘 하루 무엇을 공부할지를 안다며 너스레를 떤다. 아이들을 다 모아 놓고는 우선 씨감자 노래를 부르고는 감자심는 법을 영상을 보며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어떻게 심는지를 확인시킨 뒤에 아이들을 데리고 텃밭으로 갔다. 텃밭에는 이미 멀칭이 드리워져 있고 우리 학년만 아직 심지 않은 상태였다. 호미를 찾고 지난 주에 자른 감자 말고도 추가로 심을 감자를 찾아 1학년 텃밭에 갔다. 그러자 때마침 텃밭지기 반장님이 오시어 아이들 감자 심는 것을 도와주셨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반장님이 때로는 없이 우리끼리만 했을 때가 많다. 실컷 공부시켜 데려갔는데, 자신의 방식만으로 감자 심기를 원하시니 조금씩 틀어지는 일이 벌어진다. 어쨌거나 감자는 심었고 아이들은 호미를 서툴게 들어 흙을 파가며 북주기(심은 감자 위에 흙을 덮는 일)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입에 익은 '씨감자'노래를 신나게 부른다. 아이들은 우리가 심은 감자가 꼭 약속을 지켜주길 바라며 교실로 돌아왔다. 교실에 돌아와 따듯한 차 한 잔을 마시게 하고는 아이들이 원하는 동화 <엄마 사용법>을 들려주었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멈추자 아이들은 아쉬워 한다.


이런 것을 북토크라고 하는데, 지난해 아이들 몇몇은 이걸 참지 못하고 책을 사달라고 부모님을 졸라서 끝내 집에서 읽기도 했다. 이번에는 딱히 그런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는데, 중간놀이 시간에 지난 주에 보여 준 그림책 <나는 오, 너는 아!>를 여자 아이들 둘이 와서 봐도 되냐길래 빌려줬다. 그랬더니 신나게 읽는다. 이렇게 천천히 한걸음씩 내 걷는다. 한 달 뒤에는 또 아이들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오늘은 어머님 한 분이 보내주신 오렌지 차를 아이들과 마시고는 옛이야기 한 편을 더 들려주었다. 그리고나서 뒤늦은 첫 수업을 들어갔다. 오늘은 '선 그림'을 하는 시간.  


지난 3월 아이들 상태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다른 지점에서 연습하고 지금에야 다시 시작하는 선 그림. <작은 배의 여행>을 다시 시작해 보았다. 지난 주 뽀족섬에 이은 오늘은 둥근섬과 희미해지는 빛의 이야기. 아쉬운 점은 여전하지만, 분명 3월보다는 나아지는 모습이다. 이렇게 4월을 보내면서 또 달라지는 지점을 봐야 할 것 같다. 이런 맘도 모르고 아이들은 저마다 소리 높여 외친다. "선생님, 천천히 예쁘게 했어요~" 이어지는 두 번째 시간은 수학. 오늘은 숫자 '8을 배우는 시간. 8 하면 떠오르는 것을 당장 문어 다리라고 거미 다리라고 말하는 아이들. 거기다 8층, 8각형, 8시까지 이어지면서 오늘은 수와 숫자로 할 수 있는 놀이를 곁들였다.


수학공책에도 담겨 있고 놀이수학 조성실선생님의 실천 사례인 '나는 몇 개를 얻었을까?'를 해 보았다. 우선 실물화상기로 공책 화면을 비추며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수에 해당하는 그림에 동그라미를 치게 했다.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멈춘 뒤 칠한 수만큼 숫자를 쓰게 하는 활동인데, 아이들은 별 거 아닌데도 재밌어 한다. 서너명의 아이들이 헷갈려 해서 다시 설명하고 지도해서 바로 따라잡게 했다. 어김없이 주사위로 장난치고 빨리 다 한 뒤에 딴죽을 부리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무리 없이 수를 세고 숫자를 쓰는 활동을 했다. 몇몇 아이들이 숫자를 거꾸로 써서 웃었다. 해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몇명이 안 되는 이번 아이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마침내 점심시간. 내 곁에서 밥을 먹겠다는 아이들. 그 중 한 녀석은 내 옆에서 와서는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조잘대는지. 그러다 뜬금없이 자기 엄마 임신한 소식을 전한다.


"선생님!"

"왜?"

"우리 엄마 뱃속에 아이가 있어요."

"그래? 엄마 임신하셨구나."

"아기가 여자라는 것도 알아요?"

"야, 그래? 언제 애를 낳으신데?"

"그거 모르겠어요. 나는 동생이 또 생기는 거예요."

"그렇겠네."

"선생님, 엄청 부럽죠?"


하하하. 이거 너무 귀엽고 사랑스런 말 아닌가? 내가 부러워 하길 바라는 이 아이의 마음. 하지만, 내가 그걸 들어줄리가 있나.


"하나도 안 부럽거든!"아 하하. 부러우면서."


애고... 내가 졌다. 졌어. 사실 부러운 건, 이 아이들처럼 사는 거다. 세상 걱정없이 천진난만하게 거산이라는 너무도 좋은 공간에서 행복하게 살아보는 것. 어쩌면 멀리 우리 학교에 어린 아이를 보내는 보호자들의 마음은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한 행복을 자녀에게 전해주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난 그게 정말 부럽다. 물론 내 아이도 그랬다. 지금은 군대에 가 있지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청년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까지 벌며 사는 우리 아들. 난 우리 아들이 참 부럽다.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이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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