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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r 28. 2024

그렇게 한 식구가 된다

(2024.3.28.)

교실로 들어서는 아이들 얼굴은 언제나 밝다. 그 전 날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웃으며 등장하는 녀석들을 보면 언젠가 이제는 다 큰 녀석이 들려 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고양이들을 연구한 바에 따르면 고양이는 날마다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듯 살아가는 습성이 있다는. 우리 아이들이 딱 그런 것 같다. 어제 그렇게 다툰 녀석들이 오늘은 화해조차 없이 같이 잘 놀기도 하고 방금 같이 놀던 녀석들이 서로 잘못했다고 내게 이르는 모습을 반복해서 볼라치면 어찌 보면 이 또래아이들은 마치 고양이의 세계관을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러니 딱히 이 아이들이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고만 볼 수 없는 것이고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오늘도 가져온 물병에 물을 흘려 사물함과 가방 전체를 물에 적신 아이, 매번 수업시간에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 수업시간에 멍 때리며 딴 곳을 바라곤 하는 아이, 손을 어쩔 줄을 모르고 발을 어쩔 줄을 몰르는 아이, 그 아이들 모습을 일러바치는 아이. 그러면서 서로 다투기 시작하고 누가 먼저 시작하고 다퉜는지에 이르면 그야말로 혼돈의 하루가 된다. 이러니 1학년 담임이 6학년과 비슷하게 기피학년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도 말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아이들은 제각기 나름의 이유로 각자 그런 행동을 한다. 오늘도 한 달 내내 수업시간에 노래를 흥얼거리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의 말을 들어보면 그럴만 하다고 이해해줄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00아, 그런데 왜 수업시간에 자꾸 노래를 부르고 소리를 치는 거야? 너도 모르게 그러는 거야? 아님 다른 이유가 있어?"

"그냥,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싶은 건데요. 사실 4월 6일인가 저 에버랜드에 가요. 그래서 신나요."

"음, 그렇구나. 아직도 멀었는데, 그게 기뻐서 지난 한 달 내내 그러는 거야?"


쉽게 이해가 갈 상황이 아닐 수도 있지만, 1학년과 살아보면 이해를 해주어야 하는, 혹은 이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그때 그때 신경이 쓰이고 귀찮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1학년을 맡은 담임교사라면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때때로 잔소리로 때때로 꾸중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이를 이해하고 안아주는 일이 1학년 담임이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오늘도 여전히 아이들을 툭툭치고 기분 상하게 하는 말들로 아이들의 원성을 받는 아이도 나는  지적하고 꾸중은 했지만, 그럼에도 감싸주며 그러지 않기를 부탁했다. 그렇게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언젠가는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첫 수업은 어른들이 마시는 술이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재미난 옛이야기로 시작을 했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동화를 읽어주기로 했다. 지난해에도 1학년 아이들에게 잘 먹힌 김성진 작가의 <엄마 사용법>. 생명 장난감이라는 소재 자체가 아이들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고 도대체 엄마가 없는 여덟살짜리에게 다가오는 생명 장난감 엄마의 실체에 대한 궁금함이 가득해지는 이 이야기에 아이들은 쉽게 빠져든다. 오늘은 첫 편만 읽어주었는데, 아쉬움을 나타내는 아이들이 꽤 많다. 일단 성공이다. 책이 재밌다는 걸, 정말 재밌다는 걸 알아야 그나마 책으로 다가갈 수 있다 이번 한 학기 내내 내가 신경 써야 할 지점이다. 읽기의 시작은 듣기와 말하기이고 쓰기의 본격적인 시작은 읽기이기 때문이다.


오늘 첫 수업은 지난번에 미처 다 하지 못한 'ㅑ와 ㅕ'를 익히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낱자를 낱자로만 다루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침을 섞어 익히면서 홀소리와 닿소리의 결합인 한글의 특징을 익히며 음과 의미를 모두 익혀가는 방법을 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직은 잘 적응해주고 있다. 두번째 시간은 내일 감자를 심기에 앞서 감자에 대한 그림책 한 권을 더 보여주었다. 책 제목은 <감자는 약속을 지켰을까?>(백미숙 글, 느림보)였다. 쥐들이 수레에서 도망친 감자를 먹으려 하다 그만 감자의 꾀에 넘어간다는 이야기. 당장 먹힐 감자가 자신을 땅에 심으면 더 많은 감자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그 약속을 지킬지를 살펴보며 기여코 감자를 수확해 내는데, 수많은 감자들은 다시 자신들을 심어달라고 한다는 이야기.


당장 내일 감자를 심을 아이들에게 3개월 뒤 감자가 정말 우리들에게도 약속을 지킬지를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흔쾌히 그럴 거라 말한다. 그리고는 '감자꽃' 노래와 '씨감자'노래를 부르면서 내일 감자를 심을 기대를 품어 보았다.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오기까지도 우리 아이들은 우당탕탕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이해하게 되는 건, 지난 한 달 어쩔 수 없이 이 아이들과 내가 한 식구가 되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너무도 빠르게 지나온 한 달. 내일은 그 아이들의 보호자 분들이 저녁 늦게 학교에 오셔 담임이랑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 25번째 된 날. 그렇게 우리는 한 식구가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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