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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r 27. 2024

개구리가 준 밥그릇

(2024.3.27.)

잘 될 듯하면서도 삐걱 거리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 일상이 바로 1학년들의 학교 삶이다. 만 7년이 짧을 지는 몰라도 태어났을 때 유전적으로 가진 기질과 이후 가정환경에 따라 틀이 잡혀 온 각기 다른 열 두 명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교실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다. 다섯 번째 1학년을 맡아서 살아오지만,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도 매우 느리게 나타날 수도 있어 자칫 오해나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무던히도 교사와 보호자가 확실한 소신을 가지지 않으면 아쉽거나 후회의 지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 지점을 새삼 깨닫는 지난 3월을 돌아보며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오늘의 첫 옛이야기는 '개구리가 준 밥그릇'. 가난한 부부가 착한 일을 한 끝에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 으레 이런 지점을 듣게 되면 어른들은 착한 아이가 복을 받는 것으로 아이들이 어떤 교훈을 받아들이길 바라겠지만, 당장 아이들은 대게 재미있는 이야기 한 편 들었다는 것에 더 만족한다. 그래서 교훈적인 이야기가 오히려 효과가 없다는 것이 맞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 또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아이들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기에 만족하고 차 한 잔을 마시게 했다. 오늘 차는 아침 일찍 오는 준*의 선택으로 이뤄졌다. 차 이름은 '페퍼민트'. 호불호가 갈리는 차였지만, 이제는 익숙한 듯 한 잔씩 마시고 바로 씻어러 간다.


첫 번째 수업은 '수학'이었다. 시작하기 전, 손가락을 펴는 연습을 먼저 시켰다. 의외로 많은 아이들이 1학년 단계에서 손을 써서 수와 숫자를 표시하시거나 계산을 하곤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많은 아이들이 손을 자유롭게 펴지 못한다. 3을 표시하는 방법도 다르고 5가 넘는 수와 숫자를 두 손으로 나타내는 것에 매우 어려워 하고 힘들어 한다. 그래서 수와 숫자를 배울 때, 올해부터는 수를 나타내는 손가락을 연습시키기로 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해 보았다. 역시나 각기 다른 손가락으로 7까지의 수를 나타내고 있었다. 날마다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오늘의 수 '7'을 익혔다. 그동안 그날의 숫자와 수를 보면 떠오르는 것를 말하게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말장난으로 흐르게 하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하나하나 쳐내고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게 하니, 한 명씩 말을 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무지개'를 꺼내기도 했다. 힌트를 주었지만, '북두칠성'까지는 못했지만, 이제 조금씩 생각하는 법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공책으로 오늘 학습한 부분을 마무리 하고 카드로 묶어 한 번에 읽는 법을 놀이로 즐겼다. 중간놀이 시간 뒤로는 일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색종이로 학교 접기' 시간으로 이어갔다.


하지만 교과서에 실린 '색종이로 학교 접기'는 아무래도 너무 쉽고 간단히 끝나는 것이라 지도서에 담겨 있는 학교 만들기 학습으로 바꾸어 보았다. 그냥 종이로 하기에는 너무도 약하여 라벨지에 인쇄를 해서 A4 크기의 도화지에 붙여 학교의 각 공간이 드러나는 부분에 색을 칠하고 오리고  풀로 붙이고 접는 활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손으로 하는 작업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확실히 발견할 수 있었다. 수업만으로는 해결될 지점이 아니어서 다음 보호자 상담 때 함께 노력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함께 작업하여 완성한 '종이로 거산 학교 만들기'는 서툴지만 1학년 아이들에 어울리는 완성도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 수업을 한창 하던 때 몇몇 아이들이 질문을 했다.


"선생님, 언제 집에 가져가요?"

"왜? 집에 가져 가고 싶어?"

"네."

"미안한데, 교실에 전시도 하고 차곡차곡 모아서 아주 나중에 집에 가겨갈 거야. 기다려야 해."

"에이, 집에 가져가고 싶은데."


자기가 색칠하고 서툴지만 나름 완성해 낸 첫 작품이어서 그럴까? 애착을 보이는 아이들이 귀여웠다. 수업 막바지에 투정부리고 앙탈을 부리는 아이들때문에 또 실랑이를 벌이며 땀을 뺐지만, 돌이켜 보면 경칩에 갓 나온 개구리 같은 아이들과 하루를 보낸 것이라 여기고 있다. 오늘 아이들에게 들려준 옛이야기처럼, 내가 아이들에게 좋은 무엇인가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헤어지기 전에 우리아이들이 내 노고에 고마움을 전해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마도 그렇게만 된다면 그것은 오늘 아이들에게 들려 준 옛이야기 속에 나오는 화수분 밥그릇 같은 게 아닐까? 하하. 오늘은 아이들과 24번째 만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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