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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Mar 26. 2024

세상에 쉬운 건 없다

(2024.3.26.)

열 두명 밖에 안 되는 아이들과 사는 게 2년 전 6학년 19명보다 스펙타클하다.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공사 끝이라 공간이 생기면서 아이들에게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을 더 마련해 주고 있는데, 잠시라도 이런 시공간을 주면 무척이나 열정적이다. 열정만 있나 무아지경이다. 통제에 거의 따르지 않는 아이가 절반이다. 그나마 조용해 보였던 아이조차 적어도 이 시간은 전혀 다른 아이로 변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놀이는 '한 발 술래잡기'놀이다. 교육과정에도 새롭게 등장한 놀이인데, 별 것 아닌데도 아이들은 난리도 아니다. 요즘 아이들이 틈만 나면 나한테 와서 말하는 게 이걸 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오늘 5교시는 아이들과 어차피 몸을 움직여 노는 시간이라 기꺼이 응해주었다. 오늘은 다목적실로 가서 조금 너른 공간에서 해 보았다. 이것 말고도 훌라후프로 협동하여 놀이하기, 얼음땡 놀이. 끝으로는 의자 릴레이하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우와좌왕 하기도 전에 흥분을 해서 진정시키느라 목소리가 높아져 갔지만, 나중에 겨우 하는 방법을 익힌 뒤로는 나중에 또 하자고 난리다. 할 줄을 모르다 할 줄 알게 됐을 때, 집중력이란. 어린 아이들의 강점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하고 싶고 자신이 생겼을 때, 달려드는 힘은 어른이라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마지막 시간을 엄청난 에너지로 쏟아부은 아이들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다. 코에 송알송알 맺힌 땀을 의식하지도 못한채 헉헉거리며 다음 방과후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들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하지만 그렇게만 바라보기엔 불과 40분이 오늘은 네 시간은 된 것 같았다. 내 디지털 팔목 시계에서는 90 데시벨이 넘는다고 장시간 노출이 되면 청력에 문제가 생긴다고는 메시지가 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돌봄교실로 소리를 지르며 떠났다. 가만히 걷지 않는 아이들. 소리를 지르며 무언가 막혀 있던 걸 풀어내는듯한 모습들. 올해 난 이 아이들과 8개월을 더 살아야 한다.


"오늘은 무슨 차 마셔요?"

"야, 이제 뭘 마실지를 묻는구나. 다행이다. 뭘 마시고 싶어?"

"카카오 차요."

"그게 좋아?"

"네. 냄새가 좋아요. 맛도 좋고."


어느덧 아이들에게 하루의 루틴이 스며들기 시작한 모양이다. 대게는 맛없다는 차맛인데, 게중 카카오(코코아 알맹이가 들어간) 차를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선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작년에 선물 받은 차 중 하나여서 거의 끝이 보이기 때문인데, 어쨌든 아이들은 달라지고 있다. 단맛에 너무 길들여진 아이들이라 급식도 단맛이 나온 것에 집중을 한다. 맛집과 먹방에 단짠이 쏟아지면서 어느새 어른도 아이도 나도 단맛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다양한 맛을 느끼며 오늘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 오감을 느끼려면 자극적인 맛을 줄여나가야 한다. 어른들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일은 이렇게 쉽지 않는 게 많다. 그래서 교육이 양육이 쉽지 않는 것일 거다.


옛이야기로 시작해서 다음으로 이어진 오늘 첫 수업은 수학. 한국에서 인기 그림책 작가로 알려진 폴란드 출신의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생각하는 1,2,3>이라는 그림책을 보여주었다. 총 12까지의 수를 담은 이야기라 지나온 1-5까지의 수, 그리고 오늘 배울 6의 수까지 보며 수업을 했다. 우연히도 우리 반 아이들 수와 같아서 숫자에 아이들 번호를 연결시켜 의미를 담아주기도 하니 쑥스러워 하는 아이도 있다. 내용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아무래도 서양사람이고 교사가 아닌지라 내용이 어렵기도 하고 무척 낯설다. 차라리 우리나라 현직교사가 쓰는 게 낫다 싶었다. '6'을 익히고 6에 얽힌 낱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나중에 숫자와 점카드로 한번에 수를 파악하는 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물론 무척이나 즐거워 했다.


오늘 2블록 시간에는 국어. 오늘은 지난 시간에 배운 'ㅏ, ㅓ'를 복습하고 'ㅑ, ㅕ'로 들어갔다. 작년에 이미 만든 공책을 보여주니 놀랍기는 하다. 지난해에는 일찍부터 다양한 어휘들이 교실을 떠돌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 아이들도 제법 이야기를 꺼낸다. 선을 긋고 글자를 꾸미고 다듬는 과정에서 한 달 전보다 분명 나아지고 있다. 여전히 속도를 내며 빨리 해결하려는 욕구가 가득한 아이들이 많지만, 그것을 다독여가며 꾸역꾸역 앞으로 가고 있다. 나 또한 속도를 내지 않으려 한다. 이런 과정에서 확실하게 글자에 대한 감성을 높이고 읽는 법을 좀 더 터득하길 바랄 뿐이다. 이 시기에는 보는 것보다 듣는 게 더 중요하다. 듣는 힘이 약한 아이들이다 보니 자꾸 자기 말만 하려 든다. 1학년은 하면 할 수록 쉽지 않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23일째 되는 날. 새삼 1학년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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