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환 Apr 03. 2024

겹처가며 쌓아가는 나날이 주는 희망

(2024.4.3.)

1년만이다. 학교공사장이 정리가 어느 정도 되면서 마침내 주차장도 마련되어 쓸 수 있게 됐다. 날마다 출근길 왕복 1키로미터를 걸어야 했던 시절이 끝이 났다. 모두 낯선 공간들이다. 거산 4년째지만, 거산 같지 않은 거산초. 분동으로 지어 대학 같다는 말도 들리고 교회건물 같다는 말도 그보다 심한 말도 있었는데, 운영비도 만만치 앟게 들어 분동 결정에 따른 비용상승이 학생수 감소와 결합이 돼 앞으로 내내 학교 교육력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일단 더 지켜봐야 할 일이겠고 남은 교사들과 보호자들이 더 힘을 써야 할 상황은 분명하다. 거산공동체가 다시금 힘을 모을 시간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늘도 아침 들어서기가 무섭게 다툼소식을 전한다. 매번 등장하는 인물들이어서 아침부터 단단히 주의를 주고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기에 분위기를 다잡지 않으면 매번 이런 상황이 반복되리라는 걸 지난해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침은 동화 <엄마 사용법>이었다. 장난감 엄마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지만, 아침에 주인공 현수를 깨워주지도 못한 일과 그런 엄마가 불량품일 거라는 친구의 말에 불안을 느끼게 되는 일까지만 읽어주었다. 감질나게 읽어주는 통에 아이들 원성은 커 가지만, 그만큼 책의 매력은 더욱 커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카카오 차도 대접을 했다. 코코아가 들어간 일명 카카오 차에 아이들은 반색을 하며 좋아한다. 유일하게 상당수의 아이들이 반기는데, 이제 그 차도 바닥이 났다. 과일향이 나는 차를 주로 반기는 아이들 특성상 앞으로 다른 맛을 만나게 해주는 일도 생각해 보고 있다. 작두콩차는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다. 유독 작년 아이들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첫 시간은 선그림을 그렸다 오늘은 아침 해가 뜨는 느낌의 선과 기러기가 날아가고 날아간 기러기들에게서 깃털이 떨어지는 선까지. 역시나 쉽지 않은 선들이다. 유연하게 떨어지고 발산하고 균형감을 가지게 그리는 일이 이 아이들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워 보인다. 일단 가보기로 했다.


중간놀이 시간에는 산책을 나섰다. 경기도에서 교사를 하는 지인이 며칠 전 봄산책을 자신이 더 하고 싶은 마음에 즐겼다는 글을 보며 오늘은 내가 그런 느낌이 들었던 날이었다. 일기예보상 어쩌면 당분간 내리지 않을 봄비를 보며 문득 아이들과 교실 밖을 나가고 싶었다. 아이들도 신나라 따라 나섰고 뒷산 산책로를 지나 아이들이 원하는 바로 텅빈 도서관도 들렀다가 운동장 주차장을 가로 질러 우산 스며 돌아오는 길은 너무도 평온했다. 신나게 노래부르고 소리 지르며 따라오는 아이들 목소리도 더욱 정겨웠던 산책시간이었다. 


이후 교실로 돌아오 나는 사포에 감자 그림을 크레파스로 해서 광목천에 다림질을 해서 묻어나게 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을 했다. 보는 아이들마다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는다. 아이들에게 사포 두 장을 나눠주고 씨감자를 그리는 방법도 안내하고 작년 아이들이 어떻게 했는지 사진을 보여주고 결과물도 안내했다. 아이들은 참 멋지다고 놀라워 한다. 그런데 적어도 감자 그림은 이 아이들이 훨씬 나을 것 같다. 오늘 한 아이가 연 이틀 아파 나오지 못해 다림질은 내일로 미뤘는데, 내일 다림질 결과가 잘 나와 멋진 작품이 나오길 바란다. 내일은 거산 시농제가 있는 날이가 이 광목천을 들고 나가 감자가 약속을 지켜주기 바라는 외침을 할 것이라 기대가 크다.


잠시 뒤 광목천 작업이 한창일 무렵, 전학년의 광목천 작업 결과가 1학년에게도 왔다. 내일 시농제의 배경 천막으로 쓰일 작품인데, 이곳에 우리 아이들의 흔적도 담아야 했다. 정말 크고 멋지다는 작품에 자기 나름의 흔적을 남기려 애를 쓰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답다. 몇몇 아이들이 그 와중에도 장난을 치고 자기 맘대로 하려는 모습이 아쉽기는 하지만... 잔소리는 연이어 넘치고 말았지만, 애고 어쩔 수 있나 싶었다. 점심을 먹고 돌어와 오늘 미처 다루지 못한 통합교과 '사람들'에 관한 주제로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이라는 말에 가족과 친척만을 생각했던 아이들이 다시 안내를 하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 마트사장님, 편의점 아저씨, 미용실 아줌마, 용품점의 안내하는 분, 아쿠라리움에서 일하는 사람, 횡단보도에 있던 경찰아저씨 등 아이들은 주변에서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손을 들고 너나할 것 없이 자기 경험들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고 딴짓을 하거나 주제와 상관없는 말로 집중도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대체로 이런 분위기의 흐름은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아이들이 소화할 만한 어떤 주제로 뭔가 토의도 할 수 있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런 저런 가능성을 보이면서도 때때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일이 다반사지만, 어쩌면 1학년은 이런 가능성과 좌절, 기대와 실망을 겹쳐가며 쌓아가는 시간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오늘도 딱 그런 날이었다. 아이들과 만난 31번째 날, 오늘은 여기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내적 동기, 외적 동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