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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Apr 04. 2024

아이들에게 잡아 먹힌 날

(2024.4.4.)

어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터라 아침부터 감기 기운이 있는 아이들 둘이 병원에 다녀오겠다는 소식이 들렸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어제 걸개그림 만들어 놓은 것에 다림질을 해야 하는데, 마침 예*이가 먼저 와 있어서 함께 먼저 작업을 시작했다. 나중에 들어오는 아이들도 한 번씩 다림질을 하며 오늘 거산 시농제 준비를 마무리 지었다. 9시 20분 정확히 6학년 아이들의 풍물소리가 들려오고 다들 교실에서 나온 아이들은 풍물장단에 맞춰 춤도 추고 박수도 치면서 시농제를 축하해 주었다.


"선생님, 저 노래 또 듣고 싶어요."

"아, 듣기 좋니? 저건 노래가 아니로 풍물소리야.'

"네, 저도 또 듣고 싶어요. 재밌어요."


의외로 풍물패 소리를 좋아하는 1학년 아이들이었다. 다행이었다. 길을 여는 풍물패를 따라 텃밭으로 내려간 거산 학생들은 돌아가며 텃밭 농사가 잘 지어지라고 기원을 했다. 우리 1학년들도 걸개그림을 펼치고서는 우리가 배운 대로 외쳤다.


"감자야, 약속을 지켜줘."


다시 움직이며 간 곳은 거산의 논농사를 책임져 줄 논이었다. 솟대가 우뚝 서 있는 곳에서 농사를 잘 되게 해달라는 기원들을 하면서 오늘 행사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교실로 돌아와서는 축하 시루떡을 나눠 먹고 잠시 쉰 다음에 중간놀이 시간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을 놀게 한 뒤로는 곧바로 2학년 선생님과 다음주에 있을 진달래 꽃전잔치를 위한 진달래 군락지(?)를 찾아 나섰다. 2주전만 해도 피지 않아서 큰 걱정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기온이 달리지면서 빠르게 핀 꽃들이 있어 내심 걱정을 하며 학교 뒷산을 찾았다. 다행히도 만개상태가 아니어서 다음주 행사에 지장은 없을 듯했다.


교실로 돌아오자 아이들은 또 다툰 흔적들이 있었고 이런 상황은 둘째 블록시간 내내 이어졌다. 서로 고자질하고 조금은 거친 말이 오가면서 몇몇 아이들은 오늘도 아직은 갈길이 멀다는 확인을 단단히 시켜주었다. 홀소리 글자 'ㅛ, ㅠ'를 배우는 내내 오늘 따라 유독 아이들은 말이 많고 서로를 헐뜯는 모습도 보이고 적지 않은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장난스럽게 학습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일일이 대응을 하자니 진이 빠졌다. 이 나이 또래 아이들이 학교에서 교실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기복이 심한데, 오늘은 그야말로 아이들에게 말린 날이었다.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며 혼을 내는 것은 내 쪽인데, 말린 쪽 또한 내 쪽이어서 겉으로야 교사가 승리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내가 다 진 하루였다.


이럴 때가 있다. 이러다 또 언제 그랬냐는듯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이 나이 또래 아이들이다. 물론 이번 아이들은 그 빈도수가 매우 잦은 편이어서 신경을 자주 쓰게 된다. 오늘 재*이가 오랜만에 내 옆에 와서 밥을 먹다가 내 어깨 위에 얼굴을 들이대더니 입을 쩍 벌린다. 뭐하는 거냐고 했더니 나를 잡아먹는 거란다. 어이가 없고 귀엽기도 하고 힘도 빠지면서 웃었다. 이 녀석들 언제 좀 1학년 티를 낼지 사뭇 걱정과 기대가 뒤섞였던 날이었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내가 잡아 먹힌 서른 두번째 날이었다. 내일은 또 새롭게 태어나야지.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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