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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환 Apr 05. 2024

모처럼 맑아진 하늘을 보며

(2024.4.5.)


모처럼 하늘이 맑다. 마치 런던의 날씨처럼 비와 구름이 가득했던 지난 한 달이었던 것 같다. 어제 아이들에게 먹혔던 하루였다면 오늘은 아이들을 살리는 하루가 되길 바랐지만, 여전히 여기저기 전투 중이다. 각기 다른 기질과 성향, 가정배경을 지닌 아이들이 함께 사는 게 쉽지 않지만 12명 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주장을 펼 때면 감당하기가 나로서도 쉽지 않다.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도 한 보호자와 상담이 있다. 부지런히 아이들의 상황을 공유하고 공감하여 진솔한 대화와 진지한 협력으로 아이들을 도울 때 비로소 진정 아이들을 위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게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하려 한다.


오늘 첫 시간은 역시나 아이들이 기다리는 <엄마 사용법> 을 읽어주었다. 어찌나 진지하게 듣던지, 생명 장난감 엄마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까닭을 할아버지에게서 듣기 직전에 읽기를 그만 두었다. 아이들은 난리통인데, 어떤 아이는 엄마에게 저 책 책을 사달라고 했다는 아이, 날마다 집에 가서 이야기를 전해 준다는 아이 등 책에 대한 진심들이 조금씩 살아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4교시 끝무렵에는 'ㅛ, ㅠ' 공부를 마무리 짓는 지점에 'ㅛ'자가 들어가는 그림책 중 요시타케 신스케의 <이유가 있어요>를 보여주고 읽어주었다. 저마다 이유가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딱 맞는 그림책이기도 했다.


그림책을 보여주는 과정에 어찌나 웃어대던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주인공 아이가 엄마를 막무가내로 설득시키려 하는 장면에서 어이없다는 얼굴을 보이는 아이들이 더 우스웠다. 지네들이 평상시에 얼마나 억지를 부리는지, 그리고 그림책에 나오는 행동과 비슷한 걸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웃고 있으니 더 그랬다. 그림책을 다 읽어주고 보여주니 그 책 빌려주면 안 되냐 해서 쉬는 시간에 보라고 칠판 앞에 세워두었다. 다음주에 몇이나 보려나 모르겠지만, 이렇게 그림책과 동화과 재밌는 것이라는 걸 자주 경험시켜 주는 일이 내 역할이니 꾸준히 하려 한다.


오늘 첫 시간은 통합교과 두 번째 꼭지 '사람들'에 관한 수업이었다. 지난 번 우리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오늘은 신문과 잡지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그 가운데 골라서 가위질로 사람을 오려 통합교과 공책에 붙이는 활동을 하게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독특하고 이쁜 사람들을 오려 붙이려 했다. 한창 선구 중이라 선거 관련 인물들도 보이고 자기 또래 아이들의 사진도 붙인다. 여느 가게집 아줌마도 보이고 그림속 역사 인물도 보인다. 어쨌거나 우리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틈나는 대로 묻고 아이들은 그것을 오려 붙이며 주어진 시간을 즐겼고 두 번째 블록 시간에 'ㅛ, ㅠ'를 학습하며 마무리 지었다.


이 글을 마무리 하며 밖을 내다보니 창밖으로 벗나무의 꽃이 보인다. 거산은 이제야 봄이다. 이러다 한 달만 지나면 여름이지 싶다.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 허투루 쓰이지 않고 모두 아이들에게 살이 되고 뼈가 되길 바란다. 이번 한 주 몸과 마음이 좀 힘들었지만, 다음주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기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아이들과 만난지 서른 세번쩨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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